컴퓨터처럼 살아가는 인생
일주일 전, 손에 바르는 연고를 잃어버렸다. 하루에 두 번씩 아침저녁에 발라야 하는데……. 서랍 위에 있거나 가방 안에 있거나 둘 중 하나인데, 아무리 찾아봐도 눈에 띄질 않았다. 한참 동안 방 이곳저곳을 구석구석 살펴봤지만 헛수고였고, 결국 ‘피부과에서 새로 하나 받아와야겠다’라고 생각하며 포기하게 됐다. 그리고 문제의 그 연고는 그로부터 며칠 후 커튼 뒤에서 발견됐다. 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를 잊어버려서 한참이나 찾았던 기억,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잊어버린 물건이 핸드폰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잃어버린 핸드폰에 전화를 건 후 벨소리가 나는 쪽을 찾아보면 되니까(만약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놨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하지만 그 물건이 책이나 지갑 같은 물건이라면 정말 난감해진다. 아무리 구석구석 뒤져봐도 나타나지 않고……. 그러다 한참 뒤에 정말 의외의 장소에서 찾게 되면 정말이지 허탈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게 여기에 있었단 말야?’, ‘이게 왜 여기에 있지?’ 하면서…….
이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나는 ‘인생이 컴퓨터 같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컴퓨터에는 검색 기능이 있다. 찾고 싶은 파일이 있고 그 이름도 알고 있는데 저장 위치를 모를 때, Ctrl과 F를 누르면 검색창이 뜨고, 거기에 찾고 싶은 단어를 입력해서 Enter를 누르면 파일의 제목과 저장 위치가 나타난다. 한글 문서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다가 갑자기 찾고 싶은 부분이 떠오르면 이 기능을 이용해서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만약 인생이 컴퓨터라면, 잃어버린 물건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하자. 이때 검색창에 ‘지갑’을 검색하고 Enter를 누르면 현재 지갑이 어디에 있는지 나타난다. ‘내 방 이불 아래’나 ‘거실 소파 위’라는 식으로. 집안을 이곳저곳 뒤지지 않고 편하게 물건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상황 말고도 ‘인생이 컴퓨터 같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때가 더 있다. 바로 중요한 선택을 앞두었을 때다.
컴퓨터 게임을 하다 보면 ‘세로신공’을 쓸 때가 있다. 이 단어는 저장을 의미하는 ‘세이브’와 불러오기는 뜻하는 ‘로드’의 합성어인데, 중요한 시점에서 일단 게임을 저장한 후 진행을 해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게임을 이어나가고 그렇지 못하면 저장했던 부분을 불러와서 다시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박스를 열면 아이템이 무작위로 나온다고 하자. 그러면 박스를 열기 전에 게임을 저장한 후 박스를 열어서 내가 원하는 아이템이 나오면 게임을 그대로 진행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아이템이 나오면 저장했던 부분을 불러와서 다시 박스를 여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내가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세이브와 로드를 반복하는 것을 세로신공이라고 부른다.
만약 인생이 컴퓨터라면, 그래서 세로신공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때 별다른 고민이나 갈등을 하지 않을 것이다. 선택을 하기 전 일단 저장을 한 후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그대로 살아가고, 그렇지 않으면 저장 시점으로 되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에 지원할까, 어느 회사에 취직할까, 누구와 결혼할까 등등…….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마다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선택한 후 결과가 마음에 안 들면 되돌아가면 그만이다! 중요한 선택 앞에서 피땀 흘리며 갈등할 일도, 잘못된 선택을 눈물 흘리며 후회할 일도 사라질 것이다.
물론 인생은 컴퓨터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특정 시점을 저장할 수도 없고, 내가 원하는 인생이 나올 때까지 불러오기를 누를 수도 없다. 선택을 앞두고는 갈등을 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가 나올 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를 기쁘게 하기도 하고, 반대로 슬프게 하기도 한다.
만약 인생이 컴퓨터라면, 그래서 세로신공이 가능하다면 우리가 내리는 어떤 선택도 의미 있는 선택이 되진 못할 것이다. 그 선택에는 어떤 고민도, 어떤 갈등도, 어떤 후회도 없기 때문이다. 고민이 없기에 성찰도 없을 것이고, 갈등이 없기에 깨달음도 없을 것이며, 후회가 없기에 반성도 없을 것이다. 그런 삶을 ‘인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기억을 더듬어보자.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든 선택은 무엇인가? 그리고 가장 많이 후회하는 선택은 무엇인가? 그 깊은 고민과 후회가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중요한 선택을 목전에 둔 고민과 갈등을 통해 우리는 점점 더 지혜로운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되며, 선택으로 인한 후회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부족한 부분을 메꿀 수 있게 된다. ‘저장’과 ‘불러오기’라는 버튼에 의존하기만 하는 무력하고 무책임한 존재가 아니라 지혜로운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성숙하게 책임지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이 컴퓨터가 아니라는 사실은 참 다행이다. 내가 내리는 모든 선택과 결정을 통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