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의식으로 힘들어하는 당신을 위해
언제부턴가 지인들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나 자신의 모습이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과 비교됐기 때문이었다. 분명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던 친구인데 지금 내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다. 마치 내가 갖지 못한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머릿속은 곧 부정적인 생각들로 넘쳐나기 시작한다.
“난 왜 이러고 살지?”
난 비교의식이 심해서 나와 다른 사람을 쉽게 비교하는 편이다. 이런 성향이 삶을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면서 더욱더 절망과 비관의 구덩이로 빠지는 모습은 내 인생에서 무척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삶의 일부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사람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게 타당하기나 할까?’
살면서 자주 볼 수 있는 육상 경기를 살펴보자. 100m 달리기 경주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동일’ 해야 한다. 같은 재질로 된 트랙을 뛰어야 하고,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여 같은 거리를 뛰어야 한다. 선수들은 모두 샌들이나 슬리퍼가 아닌 운동화를 신어야 하며(비록 운동화의 구체적인 종류는 다르지만), 순풍이든 역풍이든 같은 바람이 부는 상황에서 달려야 한다. 선수들의 성별이 같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남자 선수와 여자 선수가 같은 100m를 뛰며 기록을 다툰다면 그건 공정하지 못한 경기다. 당연히 남자 쪽이 유리하므로.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이처럼 동일한 조건이 아니다. 누군가는 경제 선진국에서 태어나지만 다른 누군가는 개발 도상국에서 태어난다. 누군가는 부잣집에서 태어나지만 다른 누군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다. 누군가는 건강하게 태어나지만 다른 누군가는 질병을 가진 채 태어나며, 누군가는 음악에 재능을 가진 채 태어나지만 누군가는 운동에 재능을 가진 채 태어난다. 이처럼 조건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타당한 비교가 가능할까?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을 앞서 말한 육상 경기로 비유하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누군가는 경기장에 놓인 트랙을 뛰지만 누군가는 모래사장을 뛴다. 누군가는 출발선에서 출발하지만 누군가는 그보다 10m 앞에서 출발한다. 누군가는 명품 운동화를 신은 채 뛰지만 누군가는 샌들을 신고 뛰며, 누군가는 등 뒤에서 불어오는 순풍을 받으며 뛰지만 누군가는 앞에서 불어오는 역풍을 뚫으며 뛴다. 그리고 심지어 누군가는 남자지만 누군가는 여자다! 이런 상황에서 기록을 비교하는 것이 타당할까? 이런 상황에서 ‘가장 빠른 선수’를 가려낼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골인 지점에 도착한 것이 의미가 있을까?
‘비교’하는 행위가 인간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스스로의 부족함과 결점을 돌아보고 더 노력하게 하는 동기부여로 작용할 때이다. 그러나 그 비교잣대가 자기 파괴적인 모습으로 이어질 때도 많다.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내가 이뤄놓은 것은 너무 초라해 보이고,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내 갈 길은 아직도 한참 멀고,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내 모습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모든 포커스가 ‘다른 사람’으로 고정되었을 때 발전은 정체되고 성장은 둔화된다.
하지만 명심하자.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른 조건에서 달리고 있다. 서로 다른 트랙에서 서로 다른 신발을 신은 채 서로 다른 거리를 뛰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록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따라서 우리가 비교해야 할 대상은 다른 조건에서 뛰는 다른 사람이 아닌, 같은 조건에서 뛰었던 어제의 자신이다.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빠른 기록이 아닌, 어제의 자신보다 빠른 기록인 것이다.
이제 그만 비교의식에서 벗어나자! 자기 파괴적인 생각들을 멈추고 비교의 잣대를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으로 옮기자. 어제의 나보다 더 빠른 기록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하루하루 그 기록을 경신해 나가자. 어제보다 오늘 더, 오늘보다 내일 더 빨리 달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인생이라는 경주는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아닌 나와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남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고결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고결함은 그 전의 자신보다 뛰어난 데에 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