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법

엄마와 딸이 함께 쓰는 육아서

by 송혜교
'엄마와 딸이 함께 쓰는 육아서'는 두 딸을 키우며 수십 권의 육아서를 탐독한 50대 엄마와 심리학을 전공하고 교육계에서 일하고 있는 20대 딸이 함께 쓰는 시리즈입니다. 양육자로서 부모의 시선만으로 쓰인 육아서를 넘어, 그 육아의 대상자였던 자녀의 후기까지 담아보려 합니다.

필자가 두 명인 만큼, 헷갈리지 않도록 엄마는 ♣, 딸은 ♬로 표기합니다.


: 아이를 키울 때 무언가를 강요한다거나 아이의 발달 상태에 초조해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하면 글을 일찍 깨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많이 했다. 글을 알게 되면 책을 통한 간접경험의 양이 방대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까지 흡수해서 더 근사한 상상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책이 주는 재미와 기쁨, 위로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지 못하니까.


하지만 아이가 원하지 않는데 억지로 글을 가르치려 하면 오히려 글에 대한 반감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가 책을 읽고 싶어서 스스로 글을 알기 원할 때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것이 '책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나만의 방법 중 가장 기본이었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큰 힘을 모른다는 것은 살아가며 의지할 수 있는 가장 큰 멘토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환경을 조성하면서 준비했다.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 과정을 공개한다.




책은 장난감 같은 거야

: 어린아이를 키우는 집에 가보면, 아이의 오감 발달을 위해 여기저기 장난감이 늘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아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부터는 아이가 장난감을 어지르며 가지고 놀아도 그냥 두었다. 단, 널려있는 장난감들 사이에 아이들용으로 나온 하드북, 즉 재질이 단단한 종이로 되어 있는 책들을 함께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책도 장난감과 같이 즐거운 것이라는 걸 알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장난감 집어 들고 입에 넣어보며 놀듯, 기어 다니다가도 앞에 놓인 책을 장난감처럼 집었다 놨다 하며 놀았다. 아직 어린 아이다 보니 책을 물거나 빨 수도 있고 던질 수도 있지만 책이 상하는 걸 걱정하지는 않았다. 책이 책장에만 꽂혀있어 깨끗하게 보존된다면, 책으로서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에게 있어 '책'이라는 것의 첫인상이 만지면 즐거운 장난감과 같은 것이길 바랐다.


: 어릴 적 학교에서 친구들이 "나는 책 싫어해!"라고 말할 때면, 나는 언제나 심각한 표정으로 "아직 진짜 재미있는 책을 안 읽어서 그런 거 아닐까... 이거 읽어봤어?"라며 내가 재밌게 읽은 책들을 권유하곤 했다. 책을 싫어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생각해 본 적 없기 때문이었다. 흔히들 책이란 중요한 정보를 주는 선생님이자,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길잡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고루한 표현이 책을 향한 흥미를 더 떨어지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씩 친구들이 "이런 걸 읽는다고?"라고 되물을 정도의 어이없는 책을 읽을 때도 있고, 뜬금없이 동화나 그림책을 살 때도 있다. 내게 책이란 좋은 장난감이나 소장품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엄청난 교훈을 얻거나 감동을 받는 일도 물론 좋지만, '세상을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 여길 때 비로소 책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




전집의 멋스러움을 포기하다


: 아이가 걸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바닥에 늘어놨던 책들의 위치를 조금 상향조정했다. 아이의 눈길이 닿는 곳이나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 즉, 소파 위나 TV 장식장 위, 식탁의자 위나 아이의 침대 위에 아이를 위해 산 책들을 한 두 권씩 올려두었다. 책과 눈맞춤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도록!


그리고 이때부터는 책장을 디테일하게 구성하기 시작했다. 보통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전집을 많이 구매한다. 하지만 전집을 번호 순서대로 꽂아놓고 한 발자국 떨어져 살펴보면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보기 전엔 무슨 책이 있는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특히 아이들은 성인보다 집중력이 짧기 때문에 이것저것 뽑아보기보다는 매번 읽던 것만 뽑아서 읽곤 한다.


전집을 순서대로 쭉 꽂아두는 것은 아이의 흥미를 높이기보다는 어른의 만족도를 높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눈높이와 같은 칸에 아이가 읽어주었으면 하는 책들을 알록달록하게 꽂아주었다. 전집이라고 해도 한 칸에 쭉 꽂아두지 않았고 아이가 흥미를 가질 것 같거나 읽었으면 좋겠는 책들을 섞어서 꽂았다.


이게 처음엔 참 힘들었다. 전집이 한두푼하는 것도 아니고, 일렬로 쫙 배열해 줘야 남이 봤을 때 내가 돈 쓴 티도 나고 깔끔한데. 전집의 개념을 허물어서 책의 높이도 안 맞게 뒤죽박죽 꽂아놓으면 인테리어상으로 아주 산만해지니까.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아이의 눈이 닿는 칸까지는 모두 그 방식을 고수했다. 나머지 책장 부분은 원래대로 차분하게 정리해 심적 안정을 찾았다.


아이가 자라는 내내 부지런히 책의 위치를 조정해 주었다. 이 책은 꼭 읽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면 뜬금없이 소파 등 쪽 벽면에 세워놓거나 식탁 한편에 쌓아놓기도 했다. 어린아이일 적에 장난감처럼 친숙하게 받아들인 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았으면 했다. 학생이 된 뒤에도 책이란 TV처럼 재미있기도,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처럼 맛있기도, 소파처럼 편안하기도 한 존재라는 걸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 한창 전집이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학교 도서관에도, 서점에도 같은 디자인의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있던 그런 시기. 전집은 순서대로 다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묘한 중압감을 준다. 전집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집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거였다. 그렇게 되면 시리즈별로 한두 권 정도는 흥미롭게 펼쳐보게 되고, 재미있으면 다른 책도 읽는 식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갈 수 있다.


집에 있던 삼국유사 시리즈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동양 철학 전집에는 영 손이 가지 않던 기억이 난다. 아마 열 권이 넘는 시리즈 중에 두세 권 읽은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연히 <논어>를 읽은 뒤 그 깊이에 푹 빠져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고, 그 이후 어려운 한자어가 나오는 책이나 철학서적에 대한 부담감이 확연히 줄어들었던 기억이 있다. 전집의 진정한 의미는 스치듯 빠짐없이 읽을 때가 아니라, 그중에서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 꼭꼭 소화시킬 때 배가 된다.




엄마도 너처럼 책을 좋아해


: 어린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부모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어주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엄마의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하는 모든 것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아이가 혼자 글을 읽게 된 다음부터는 몇 권의 책을 읽어준 다음 "엄마도 책 볼 거니까 너도 혼자 책 봐"하면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었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엄마가 보는 책은 글자도 작고 그림도 적고 두께도 많이 두껍다. 하지만 엄마가 너무 재미있게 읽는 모습을 보면, 글씨가 작고 두꺼운 책에도 흥미와 호감을 갖게 되고 점차 익숙해진다.


그래서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뒤부터는 가족 간의 독서 시간을 만들어서 '엄마도 책 읽고, 너희도 책 읽고'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엄마가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느낌이 아이가 책 읽는 것에 대해 아주 좋은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 어린이 시절에는 책을 많이 읽었는데,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서 한 달에 한 권도 제대로 펼쳐보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다. 생생한 그림책을 읽다가 글씨가 빼곡한 책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지루한 법이니까. 그래서 '나이에 맞는 책'만 고집하지 않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어제는 짧은 동화책을 읽었더라도, 오늘은 엄마가 읽어보고 재밌다고 말했던 두꺼운 역사책을 집어드는 것과 같이 자유로운 선택지가 독서의 재미를 더더욱 확장시킨다. "이제 너도 컸으니 조금 더 글이 많은 책을 읽어야지." 하며 책장을 갈아치우는 건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슷한 맥락에서, 내가 청소년이 된 후에도 엄마는 동화책들을 버리지 않았다. 책은 나이를 기준으로 골라 읽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니까. 그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고, 종종 펼쳐서 읽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 좋아하던 동화책을 간직하는 건 책에 대한 사랑을 키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독서를 택하면서 포기한 것들


: 처음에 소파나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 책을 보다가도, 아이들의 자세는 점점 흐트러진다. 결국 엎드리거나 누워서 책을 읽는 모습도 자주 보게 된다. 앉아있긴 힘든데 책을 계속 보고 싶을 때 나타나는 행동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그런 상황에서 "눈 나빠지니까 똑바로 앉아서 읽어"라고 제동을 건다. 나도 어려서 그런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독서를 방해받으면, 보통의 아이들은 책 읽는 걸 포기하고 그냥 누워있는 걸 택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어떤 자세로 책을 읽건 터치하지 않고 그냥 뒀다.


밤늦은 시간까지 재미있게 책을 읽고 있는데 엄마가 '잘 시간이다'하면서 방 불을 끄고 가셨던 경험도 많다. 그럴 때면 이불속에서 손전등을 켜고 몰래 끝까지 읽던 기억이 있다. 엄마한테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도 책을 읽다 보면 금세 잊곤 했다. 책을 읽는 재미가 무엇보다 컸던 것이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난 아이들의 '책 읽는 재미'를 그 무엇보다도 우선으로 두었다. 어차피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안경을 착용하는 게 디폴트인 세상이라며 아이들의 시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욕심을 쿨하게 포기했다. 어떤 자세로, 어디에서 책을 읽든 아이가 한창 독서중일 때는 책의 재미에 푹 빠지도록 방해하지 않고 두었다.


주위에서 아이의 자세와 시력 따지며 독서교육을 진행한 집들을 보면, 결국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는 사례는 많지 않다는 점을 일찍이 발견했기 때문이다. 시력은 추후 어른이 되어서 의학의 힘으로 다시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다양한 책을 읽고 경험하는 것만큼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귀한 자원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두 아이 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안경을 썼지만, 지금도 그때의 내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 어린 시절 나는 온갖 기상천외한 자세로 책을 읽었다. 엎드리거나 누워서 읽는 것은 물론, 소파 등받이에 다리를 얹고 머리에 피가 쏠리도록 바닥을 향해 누워서 책을 뒤집어 놓고 읽기도 했다. 꼭 소파나 책상뿐만 아니라 욕실에서도 물에 젖지 않는 책을 읽거나 계단을 올라가다가도 털썩 주저앉아 읽기도 했다. 만일 엄마가 내 자세에 관해 잔소리를 했더라면, 나는 "독서는 바른 자세로 앉아서 하는 거구나."라는 선입견을 가졌을 게 분명하다.


자기 전에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서 책을 읽거나 방안이 어두컴컴해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던 시간들 덕분에 내 시력은 빠르게 나빠졌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안경을 써야 했으니까. 덕분에 성인이 된 후에 돈을 벌어서 라섹 수술도 하고, 자세교정에 좋은 의자도 샀다. 하지만 다시 돌이켜봐도, 어린 시절부터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게 된 것이 그 무엇보다 값지다.


책에 적힌 많은 단어와 문장이 어린 시절 내내 재미있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모르는 단어가 있을 때면 직접 사전을 찾아보거나, 세계지도를 보며 책의 배경이 되는 여행지를 찾아내곤 했으니까. 이런 시간들을 거쳐 나는 결국 글을 써서 먹고살고 있다. 모두 엄마의 피나는, 하지만 티 나지는 않았던 노력 덕분이다.



이 글은 2편, '아이를 도서관에 데려가지 않은 이유'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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