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같은 엄마가 되는 법

엄마와 딸이 함께 쓰는 육아서

by 송혜교



'엄마와 딸이 함께 쓰는 육아서'는 두 딸을 키우며 수십 권의 육아서를 탐독한 50대 엄마와 심리학을 전공하고 교육계에서 일하고 있는 20대 딸이 함께 쓰는 시리즈입니다. 양육자로서 부모의 시선만으로 쓰인 육아서를 넘어, 그 육아의 대상자였던 자녀의 후기까지 담아보려 합니다.

필자가 두 명인 만큼, 헷갈리지 않도록 엄마는 ♣, 딸은 ♬로 표기합니다.


: 좋은 부모란 무엇일까?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부모일 수도, 아이를 위한 정보를 꿰고 있는 부모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 최고의 부모는 '친구 같은 부모'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기댈 수 있고 고민이나 조언이 필요할 때 언제든 털어놓을 수 있는, 함께 보내는 시간에 별다른 용건이나 이유가 필요하지 않은 그런 사이. 언제나 붙어지내는 가족인 만큼 이러한 친밀감이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친구 같은 부모는 생각보다 드물다. 어떻게 하면 아이와 가장 친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지금부터 나의 엄마이자 절친, sunny의 비결을 공개한다.





질문엔 꼭 대답을 들려주자


: 모든 아이에게는 한 번쯤 '왜?' 시기가 온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반복적인 "왜?"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 적이 있을 것이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대답을 찾으려고 애써 고민하고 답을 내놓았는데, 애초에 궁금한 건 다른 것이었다는 듯 다음 질문을 던지는 아이를 보며 허탈해 본 경험도 있을지 모른다.


'왜?' 시기를 현명하게 이겨내기 위해, 나는 '아이니까 아이에 맞춰 대답을 해줘야지' 하는 생각을 버렸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바로바로 대답했다.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할 때면 "확실치 않지만 이런 것 같아."라고 대답하거나 "책을 찾아볼까?" 하는 식으로 함께 알아보았다. 정말 줄 수 있는 답이 없을 때에도 "아빠에게 전화해서 여쭤보자."라는 식으로 어떻게든 답을 주었다.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엄마가 답을 아는지 모르는지의 여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은 정답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엄마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질문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정말 어렵고 심오한 질문이더라도, 선뜻 답변하기 어려울 때에도 어떻게든 대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이들이 가끔 뜬금없는 질문을 할 때가 있다. 가끔 아이가 신기한 이야기를 하면 적어놓곤 했는데, 그중 하나를 공개해 보려 한다. 둘째가 유치원에서 생일파티를 하는 날 아침이었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의 등교를 위해 머리를 묶어주고 있었는데, 옆에 앉아있던 여섯 살 둘째가 말을 걸었다.


둘째(6세): 100일 밤 지나면 언제야?

나: 네가 초등학생 되는 때지.

둘째(6세): 1000일 밤 지나면?

나: 아직 멀었으니까 초등학생 되면 생각해 볼까?


아이는 생일을 맞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중인 듯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멀티를 못한다는 사실이다. 첫째의 머리를 묶어주면서 심오한 질문에 대답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대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둘째(6세): 1000일 밤 지나면 나 할머니 되나?

나: 아니, 그건 아니야.


내 대답을 듣더니, 둘째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100일이나 1000일에 대한 시간관념이 아직 부족한 나이였다. 아이는 한참을 앉아있다가 이렇게 물었다. "나도 할머니가 될까?" 그랬더니 첫째가 나 대신 답해주었다.


첫째(9세): 너도 할머니 되지. 나이 먹으면

둘째(6세): 정말 나도 할머니가 되나? 채연이(당시 다섯 살이던 사촌동생)도?

첫째(9세): 그래. 종선이(2세, 사촌동생)도 승표(3세, 사촌동생)도 할아버지 될 거야.

둘째(6세): 진짜?


둘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날 내가 친구와 통화한 내용도 함께 기록해 두었다. 아이가 한 질문을 들려주자, 친구는 "벌써 늙는 걸 걱정하다니 무슨 애가 그래?"라고 물었다. 나는 "글쎄, 옆에서 봤을 땐 늙는 걸 걱정한다기보다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모르겠다는, 이해불가라는 그런 표정이었어."라고 답했다. 아이가 어릴 때 했던 말을 기록해 두었다가 아이가 성장한 다음에 읽어보면 가슴이 참 따뜻해진다. 아이의 질문은 종잡을 수 없이 엉뚱하지만 그 질문들 속에서 아이의 성장을 볼 수 있다.



: 어릴 적 나는 '왜?' 기계에 가까웠는데,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는 일화가 있다. 유치원에 다닐 시절의 일이다. 엄마 손을 잡고 등원하던 중, 하늘에 해와 달이 동시에 떠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엄마, 낮인데 왜 달이 떴지?" 하늘을 가리키는 내 손끝을 본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글쎄? 달님도 늦잠을 잤나?" 나는 그 명쾌한 답에 충격을 받았다. 마침 나도 늦잠을 자서 유치원에 지각하던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아빠로부터 훨씬 더 과학적인 설명을 듣긴 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낮에 뜬 달을 볼 때마다 '늦잠을 잤나'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린 시절 문득 던진 질문에 대답을 받는 건 정말 따뜻한 경험이다. 생각보다 훨씬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서, 남은 생에 영향을 준다.


물론 아이가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는 것도 좋은 방향이다. 요즘에는 챗GPT 같은 AI를 통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지만, 정보를 찾는 능력을 기를 수 없다는 점에서 어린아이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나의 경우 단어의 뜻을 자주 궁금해했는데, 혼자 사전을 찾는 방법을 배운 뒤로 어휘량이 눈에 띄게 늘었던 기억이 있다. 이때의 경험이 내가 작가가 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궁금해하는 분야의 책을 사주거나 관련된 장소에 함께 가는 등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면, 궁금증을 해소하는 걸 넘어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들


: 가끔 아이들이 부모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언제나 교육적인, 철학적인 답을 기대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들은 그저 자신의 현재 상태를 말하고 싶어 한다. 아이들이 저마다의 고민을 들고 찾아오면, 난 주로 들어주는 역할만 한다. 가끔씩 '엄마는 이렇게 생각해'라며 내 생각을 얘기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응". "그래서?", "그렇구나.", "정말?", "와~" 이런 정도의 리액션만 해 주면 말을 하면서도 아이가 스스로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기가 되면 가족보다 친구 관계가 더 중요해지고, 친구와의 대화를 더 즐길 것 같지만 사실 아이들에게도 친구는 친구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얘기할 거리가 있다. 누가 얼마만큼 잘 들어주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주느냐가 대화의 양과 질을 결정할 뿐이다.



잘 들어주는 부모가 있다면, 아이들은 언제까지고 얘기하길 원한다. 그 재잘거림 탓에 내 일이 방해받을 때도 있었지만, 일을 잠깐 나중으로 미루는 한이 있어도 아이의 얘기를 먼저 들어주려 노력해야 한다.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도 그게 자꾸 막히면 결국은 얘기하지 않는 아이로 변하게 된다는 걸 내가 경험했었기에, 내 아이는 그런 아이가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 자라면서 한 번도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식의 말을 들은 적은 없었지만, "결정은 네가 하는 거야."라는 말은 정말 많이 들었다. 선택에 따라오는 부산물은 모두 내 몫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세상의 이치를 일찍이 깨우치게 된 것이다.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굉장히 특이한 경제관념을 갖고 있었는데, 돈을 엄청나게 아껴 쓰다가도 이상한 곳에 모은 돈을 다 써버리곤 했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2000원씩 받은 용돈을 한 달 넘게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으다가도 갑자기 만 원을 들여 불이 들어오는 탁상시계 같은 걸 사 오는 식이었다. 하지만 내가 모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든지, 한 번도 혼난 적은 없었다. 이 장난감을 사기 위해 5주 동안 분식집에 한 번도 들르지 않고 꾹 참은 건 나니까.


성인이 된 지금은 모든 게 내 손에 달려있지만, 여전히 부모님에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조언을 구하곤 한다. 자초지종을 털어놓다 보면 내 마음이 가는 방향이 어디인지 깨우치게 되어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대신 "이렇게 하는 게 좋겠지?"라는 식으로 말을 마무리 지을 때가 훨씬 많다. 사실 모든 게 내 마음대로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괜히 한 번씩은 털어놓아야 마음이 편한 것을. 집에서는 굳이 숨길 이야기가 없다.





아이는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정말로 주의했던 것은, 무의식 중에라도 딸들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었다. 특히 자매간이라도 비교하는 말을 하게 될까 항상 조심했다. 물론 자신이 기대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스스로 속상해할 수는 있겠지만, 성적이 세상의 전부인양 점수 때문에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 사람이 되지 않길 바랐다. 노력해서 실력이 향상되는 기쁨을 맛보길 원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언제나 "전교 1등 하지 마, 그런 건 욕심내지 마."라고 이야기했다. 더 이상 올라갈 곳 없이 떨어질 것에 대한 불안감을 배우게 되는 전교 1등이 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성적의 결과보다는 노력하는 모습에 칭찬을 했다. 성적이 떨어지면 제일 속상한 사람은 본인이어야 함을 아는 아이로, 성적표 때문에 엄마 아빠에게 혼날 것을 걱정해 본 적 없는 아이로 자라길 바랐다. 좋은 성적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시각을 가진 아이로 자라길 바랐고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과 대화했다. 무엇보다도, '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스스로 찾길 바는 아이가 되길 바랐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자신의 바람대로 잘 살길 바랐기에 어려서부터 우등생과 열등생으로 구분 짓는 시스템에 순응하지 않기로 했다.


존재만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세상이 만들어놓은 잣대 위에 놓고 평가하게 되면, 각각의 빛나는 부분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 내 아이를 타인의 잣대대로 평가하지 않고 가장 빛나는 부분이 가장 잘 보일 때까지 도와주고 믿어주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비교하지 않은 덕분에, 딸들은 마음의 여유를 갖고 스스로 여러 가지 능력을 키워나갔다.



: 능력을 발견할 때까지 기다려 주신 부모님 덕분인지, 언니와 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독학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언니는 영어와 사격, 춤추기와 디자인을 잘한다. 이외에도 코딩이나 역사, 중국어 같은 것을 독학했다. 나는 글쓰기와 기획, 디자인과 수영을 잘한다. 프랑스어, 속독, 영상 편집도 독학했다. 이 능력들에는 공통점도 일관성도 없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익힌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 중에서 취업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배운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는 점이다. 그저 재미와 활력을 위해 시작한 것들이다. 그러나 시간이 꽤 흐른 지금은 이렇게 쌓은 능력들이 모여 삶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일찍이 배움의 즐거움을 깨달은 덕분에, 지금도 나는 그림을 배워보면 어떨지, 다른 언어를 더 배우는 게 좋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친구에게는 나의 쓸모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친구 같은 부모에게도 마찬가지다. 만약 성장기 내내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나의 도전 정신은 씨가 말라버렸을 것이다. 모든 배움의 시작에는 서툶이 있는 법인데, 늘 잘해야 한다는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며 지낸 아이에게는 '무언가를 못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고통일 수밖에 없다. 배움을 주저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아이의 역량과 방향에 우열을 두지 않아야 한다. 아이들의 능력은 어디에서 튀어나오고 자랄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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