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주도적인 아이로 키우는 법

엄마와 딸이 함께 쓰는 육아서

by 송혜교
'엄마와 딸이 함께 쓰는 육아서'는 두 딸을 키우며 수십 권의 육아서를 탐독한 50대 엄마와 심리학을 전공하고 교육계에서 일하고 있는 20대 딸이 함께 쓰는 시리즈입니다. 양육자로서 부모의 시선만으로 쓰인 육아서를 넘어, 그 육아의 대상자였던 자녀의 후기까지 담아보려 합니다.

필자가 두 명인 만큼, 헷갈리지 않도록 엄마는 ♣, 딸은 ♬로 표기합니다.


: 분야를 막론하고 '시켜서 하는 일'은 절대 '원해서 하는 일'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한때는 '자기주도 학습'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다. 알아서 공부하는 아이, 모든 부모의 꿈 아니겠는가. 하지만 자기 주도성이라는 것이 학습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주도성은 삶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끼친다.


지금의 역량과 지식만으로 다가올 세상에 잘 적응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부모가 정해주고 시키는 대로만 학습하는 아이가 아니라, 무엇이든 스스로 해보고자 하는 자기 주도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었다. 언젠가는 부모 없이도 스스로 벌어 먹이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하니까.


아이가 자기 주도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선택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삶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인데, 이 사실이 아이에게 좌절로 다가오지 않길 바랐다. 올바른 선택을 하는 능력은 저절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걸음마를 하다 수없이 넘어지듯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시간을 들여 연습해야만 얻을 수 있는 능력이다.




알아서 옷 고르는 아이들


: 어린 나이부터 선택력을 기를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는 바로 '옷 고르기'다. 유치원에 다닐 무렵이 되면, 아이들은 스스로 옷을 선택하려 하기 시작한다. 우리 아이가 예쁘고 멋지게 보이길 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긴 하지만, 이런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선택하고 책임지는 연습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가 있다면, 아이들은 계절이나 TPO에 맞는 옷을 고르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계속 입으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한 겨울에 여름옷을 입겠다고 우기기도 하고 너무 화려한 옷을 입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그럴 땐 내 의견을 강요하기보다는 "그렇게 입으면 추울 텐데, (혹은 더울 텐데) 괜찮겠니?"라거나 "그 옷도 멋지지만 엄마는 이 옷도 예쁘고 멋진 것 같아"와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우선 아이의 선택에 긍정의 반응을 보여주고, 그 선택에 책임이 있음을 알려주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너무 덥거나 추운 날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아이가 일어나기 전 내가 여러 벌을 미리 코디해 두고, 그중에 하나를 직접 선택하게 했다.


: 나는 '날씨에 맞는 옷을 고르는 일'에 늘 약했다. 그래서 언제나 계절감에 맞지 않는 옷을 집어 들곤 했는데, 우리 부모님은 건강상의 큰 문제가 없는 이상은 항상 그냥 두곤 했다. 옷을 고르는 것도 이를 닦거나 신발을 벗는 것처럼, 살아가기 위해 자연스럽게 익혀야 하는 일이니까.


나는 옷차림에 너무 둔감한 나머지, 가끔씩은 너무 신나게 놀다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외투를 벗는 걸 까먹을 때가 있었다. 부모님은 그때조차도 "더우면 옷을 벗어야지!"라는 식으로 지시하기보다는 "너무 덥지 않아? 옷 들어줄까?"라는 식으로 내 의견을 물었다.


계절이나 상황에 맞지 않는 옷을 고른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었다. 오늘 입은 옷이 너무 더웠다면, 내일은 조금 더 얇은 옷을 고르면 되는 거였다. 심각한 수준만 아니라면, 선택에서 비롯된 불편함은 다음에 더 나은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공부보다 중요한 것들


: 유치원에서 생활하다가 처음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아이들은 설렘과 동시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유치원과 학교는 엄연히 다른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나름의 노력을 한다. 그러니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 1~2년 정도는 아이가 버거워할 수도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해 주어야 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부모에게 주어지는 중요한 과제는 '학교는 즐거운 곳이다'라는 인식을 주는 일이다. 학교는 억지로 가야만 하는 곳이라고 느끼게 되는 순간, 다가올 12년이 힘들어진다. 그러니 첫 3년 정도는 학교생활의 즐거움을 찾는 데 오롯이 투자할 가치가 있다. 그래서 각종 시험이 있어도 공부하라고 잔소리하지는 않았다. 둘째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때, 내 다이어리에 기록해 둔 일화에서 그 마음을 다시 엿볼 수 있었다.



내일이 3학년 첫 시험인데 오늘 오후까지도 친구집에서 놀고 온 둘째. 공부할 게 별로 없다는데 말릴 수도 없고. 쩝. 그래도 내일이 시험이니까 책을 조금은 봐야겠다며 교과서를 펼친다. 스스로 책 앞에 앉은 모습에서 근심은 찾기 힘들다.

"오, 열공하는 딸!" 하면서 사진 찍으니까 열공은 아니라며 웃는다. 밝고 맑고 건강하게 자라주면 커서 뭔들 못할까 싶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삶의 태도를 배운 것만으로도 다가올 세상에서 잘 살아나가리라 믿는다.


: 좋은 성적을 위해 학원에 가야 한다거나, 이 문제집을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없었다. 웬만해서는 교과서만으로도, 집에서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나도, 부모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교과서를 달달 외울 때까지 읽어보는 편이었다.


하지만 가끔씩 친구들이 풀고 있는 문제집이 탐날 때가 있다. 문제집은 교과서보다 그림도 예쁘고, 더 화려하기 때문에. 그럴 때면 엄마에게 가서 문제집을 사고 싶은 이유를 말했고, 함께 서점에 가서 문제집을 고르고, 사 왔다. 꽤 많은 부모가 '이런 문제집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직접 사와 아이에게 내민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집을 풀어보고 싶다면, 그건 아이가 부모에게 요청할 일이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준비물은 스스로 챙기기


: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부터는 항상 스스로 준비물을 챙기도록 했다. 물론 아이가 잠든 다음 제대로 챙겼는지 한 번씩 확인하기는 했지만, 그걸 티 내지는 않았다. 다행히 두 아이 모두 야무지게 가방들을 잘 챙기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둘째는 학교 가기 전까지 몇 번이나 준비물을 다시 확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알고 보니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한 분이 2학년 담임 선생님이 됐단다. 그때부터는 둘째가 준비물을 챙길 때 옆에서 함께 확인하고 숙제도 점검해 주었다. "네가 할 일은 다 했으니 혼날 일 없을 거야."라며 긴장감을 풀어주고, 엄마 말을 믿고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여주었다. 그 이후부터는 다시 자기만의 루틴을 찾고 혼자 곧잘 챙겨가곤 했다.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모든 아이가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있다. 그 설렘과 기대감을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은 항상 밝고 맑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해야 한다. 처음으로 책임감을 배워가고, 혼자 생활하는 법을 익히는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 준비물을 혼자서 챙기는 게 얼핏 아주 사소한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 준비성과 책임감을 기르는 데 이만한 훈련이 없다. 준비물을 가져가는 건 학교 그리고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그리고 준비물을 제대로 파악하고, 준비하고, 확인하는 과정은 삶의 모든 방향에 영향을 끼치는 '체계성'과도 맞닿아있다. 실제로 이러한 습관을 들이지 못해, 성인이 되어도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숙제도 이와 비슷하다. 모든 숙제가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아이가 '이런 걸 꼭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숙제를 받아올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숙제를 선택적으로 수행하도록 두어선 안 된다. 학습 이전에 선생님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교과를 넘어, 교육과 단체생활에 필요한 약속을 배우고 익히는 곳이다.


초등학교 2학년 당시, 나는 호랑이 선생님을 만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오죽했으면 원형탈모까지 생겼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준비물을 두세 번씩 확인하곤 했다. 나는 한 번도 선생님한테 혼난 적이 없었는데, 친구들이 혼나는 모습만 봐도 혹시 다음이 내가 될까 싶어 두려웠던 것이다.


물론 당시 선생님의 교육법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나라면 태어난 지 8년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을 그렇게까지 다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러한 일상 속 스트레스와 책임감도 언젠가는 혼자 넘어야 할 산이라는 점이다. 그 정도가 너무 심각하지만 않다면, 스트레스의 원인을 완벽하게 제거해 주는 것보다 아이가 스트레스를 잘 이겨내고 해결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것이 옳다.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는 아이


: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는 TV의 어린이 프로를 이용해서 깨웠다. 아침에 '딩동댕 어린이 유치원'이라든가 '뿡뿡이', '뽀로로' 같은 방송을 틀어두고 "곧 시작한다!"라고 속삭이면 부리나케 일어났다. 아침부터 TV를 보는 게 좋지 않다는 입장도 있겠지만, 아이들이 기분 좋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고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의 대화에 잘 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나쁜 방법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는 '스킨십 권법'을 썼다. 아이가 일어날 시간이 되면 침대로 가서 자는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포시 올려주면서 "아유, 자는 얼굴도 어쩜 이렇게 예뻐."라며 이마에 뽀뽀를 쪽 해주었다. 그러면 일단 깨긴 하지만 바로 일어나진 못하는데, 그때부터는 "우리 딸 키 커야지, 쭉쭉쭉 쭉쭉쭉~"하며 다리 마사지를 해주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이들은 언제나 기분 좋게 눈을 떴다.


큰 아이를 먼저 깨운 뒤 "자, 엄마는 동생한테 갈 거니까 가서 준비하자." 하고 일어서면 작은 아이는 그 소리를 다 듣고 이미 잠에서 거의 깨어있었다. 하지만 자기도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눈을 꾹 감고 자는 척하는 게 다 보였다. 그럼 더 더 오버해서 뽀뽀해 주고 주물러주었다. 간지럼을 잘 타는지라 킥킥거리면서 한쪽 눈만 떴다 두 눈을 감았다 장난을 치곤 했다.


: 나는 태생적으로 잠이 정말 많다. 누구든 쉬는 날의 나를 본다면 "그렇게 자고도 또 잠이 오나?" 같은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12시간은 물론, 14시간도 거뜬히 잔다. 심지어 잠귀도 어두워서 웬만한 소란 속에서도 숙면이 가능하다. 그러니 내게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공부보다 배로 힘든 일이었다.


이른 아침 눈을 뜨는 건 나이를 불문하고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다. 아침에 울리는 알람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나 본 기억이 모두에게 있을 것이다. 특히나 야행성 인간에게 '기분 좋은 아침'이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만큼이나 성립하기 힘든 말이다.


그러나 어린이 시절만큼은 부모님의 노력 하에 늘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 특히 "쭉쭉쭉, 쭉쭉쭉!" 하는 구령과 함께 받는 다리 마사지 덕분에 가뿐하게 눈을 뜨던 날들이 여전히 기억에 선명하다.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을 보며 눈을 뜨는 것만큼 기쁜 일이 몇이나 될까! 그러니 아침이야말로 부모와 아이가 교류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자립심 강한 아이로 키우는 법'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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