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마음과 걸음
출판사와 계약서를 쓴 것은, 나에게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주었다. 통장에 구멍이 나든, 아무도 읽어주지 않든 어쨌거나 나는 '쓰는 사람'이라는 확신. 정확히 말하자면, 안 쓰면 안 되는 사람이다. 선인세를 받았으니까^^
책을 쓰는 2년은 내게 아주 애매한 시간이었다. 마치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취준생처럼, 독자와 작가 그 사이의 경계에 선 것이다. 누가 '요즘 뭐 하고 사냐'고 물으면 "음... 책 쓰고 있어요"라고 답할 수 있다. 나는 이 짓을 2년 동안 했다. 18개월이 넘어가자 주위에서도 슬슬 내가 거짓말을 치는 것 아닌가 의심하는 눈치였다. "네 책 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나는 속으로 그러게...라고 답했다. 나조차도 내 책이 출간되긴 할지 의심스러워질 무렵 드디어 책이 세상 나왔다.
그 2년의 시간 동안 나는 취준생이 아닌 '작준생'이었다. 아직 책이 나오지 않아서 작가라고 불릴 수는 없지만, 계약을 했으니 작가 지망생에서는 한 발짝 디딘 사람. 작가준비생이라는 정체성은 참 희미해서, 가끔은 그 사실이 너무 울적할 때도 있었다.
'작준'에 비하면 취준은 쉬운 듯했다. 토익이나 오픽 점수를 올리고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을 따고 자기소개서를 고쳐 쓰면 된다. 물론 그 결과는 마음대로 되지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굉장히 명확했다.
하지만 에세이를 쓰는 일은 그렇지 않았다. 무엇을 써야 할지 정해주는 이 없고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하니 다른 작가에게서 도움을 얻기도 힘들다. 소재를 찾는 건 오롯이 내 몫이었다. 내 일상을 맛있게 써보고 싶은데, 책상 앞에 앉으면 '탕수육 먹고 싶다... 바삭한 걸로.' 같은 쓸데없는 생각만 들었다.
여담이지만, 보통 작가가 책 한 권을 쓰기 위해서는 최소 10만 자 정도를 써야 한다고 한다. 취업을 준비할 때 700자씩 4문항을 요구하는 자기소개서에도 쩔쩔매는 지원자가 많은 것을 생각해 보면, 10만 자 쓰기는 거의 고행에 가깝다. 나는 20년 하고도 조금 더 되는 나의 짧은 생을 샅샅이 훑으며 이야깃거리를 찾아내야 했다.
동사형 꿈을 꿔야 한다는 자기계발서 속 조언이 떠올라서였을까. 나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작가준비생이기 이전에 나는 '쓰는 사람'이라고.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참 모호하기 그지없다. 쓰긴 뭘 쓴다는 건가. 얼마나 대단한 글을 쓴다는 건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정체성이 2년 동안 나를 지켜주었다.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 머리를 쥐어짜던 순간에도, 내 글의 구림에 구역질이 나던 순간에도 나는 쓰는 사람이었다.
브런치에서 이런 글을 종종 본다.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싶지만, 아직 출간도서가 없어서 부끄러워진다고. "브런치 작가예요."라고 이야기하기도 조금 쑥스럽다고. 하지만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모든 사람은 작가지망생, 작가준비생, 작가를 막론하고 모두 쓰는 사람이다. 글이 마음처럼 풀리지 않아 서러운 날이 있다면,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는 건 어떨까. 나는 그냥, 쓰는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