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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Feb 16. 2023

20대지만 깡시골에 삽니다

Z세대의 시골살이



나는 서울 한복판에서 태어났다. 대부분의 20대가 그렇듯 나 역시 오랜 시간 아파트에서 자랐고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편의성을 당연하게 여겼다. 집 앞에 편의점과 버스정류장이 있는 게 당연했고 도서관에 걸어갈 수 있는 것이 당연했다. 15살, 경기도 양평으로 이사오기 전까지는.


먼저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에 살면서 시골은 무슨 시골이야?'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우리 동네는 그냥 시골이 아니다. 깡시골이다. 버스는 3시간에 한 대 정도, 그것도 제시간에 오는 법이 없는 데다 정류장까지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한다. 배달음식? 꿈도 꿀 수 없다. PC방이나 노래방? 있을 리가 없다. 마트나 편의점에 가려면 무조건 차를 타야 한다. 24시간이라고 적혀있는 가게가 있다면 90%의 확률로 거짓말이다. 해가 지면 닫는다. 그리고 사장님들은 기분 내킬 때만 가게를 연다. 주 3일 영업, 들어는 봤는가. 한마디로, 편의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동네다. 이 정도 조건이라면, 아무리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라도 명백한 시골이다.





유행도 유흥도 없는 곳에서


나는 열다섯에 중학교를 자퇴했고 언니는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즉, 우리 가족은 더 이상 학교 근처에 살 필요가 없었다. 대부분 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지만, 부모님은 그 로망을 조금 더 일찍 실현하기로 했다. 40대의 나이에 전원주택에 살게 된 것이다. 그렇게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서 살던 우리 가족은 하루아침에 공기 좋고 물 맑은 산속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모든 삶의 방향이 달라졌다. 학업도, 진로도, 생활패턴도 다 180도 변했다. 모든 게 다 시골라이프에 맞춰진 것이다. 나는 이 조용한 동네에서 나만의 생활방식을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유행이나 유흥과는 조금 멀어진 채 자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삶이 너무나 마음에 든 나머지, 20대 중반인 지금은 더 이상 서울에 살 수 없는 사람이 됐다. 종종 서울에 놀러 나가서 공연도 보고 맛집도 탐방하며 도시를 즐기지만, 종종 놀러 가는 것과 빌딩숲 사이에서 365일을 보내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5도2촌(평일은 도시에서, 주말은 시골에서 지내는 것)을 실천한다지만, 주말에만 종종 서울에 가는 내 삶은 5촌2도 정도로 부를 수 있다.






양평에서 자연사하는 게 꿈이야


잠실역 8번 출구 앞에는 유명한 로또 명당이 있다. 한 번은 친구와 그 앞을 지나가다가, 재미 삼아 로또 천 원어치를 샀다. 친구는 물었다. "로또 당첨되면 뭐 할 거야? 난 저기 있는 아파트 사고 갤러리아로 달려간다." 그 말을 듣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엄청난 부자가 되면 나는 어디에 살며 무엇을 하고 싶은가? 잠깐의 망상 끝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 사서 수영장 만들 거야. 그리고 평생 양평에서 이대로 살다가 늙어 죽을 거야."


물론 스무 살이 되자마자 동네를 떠나 도시에 정착하는 청년들도 많다. 서울에는 없는 게 없고 여기는 있는 게 없는 동네니까. 하지만 나는 상황이 허락할 때까지 이 동네에 콕 박혀있기로 결심했다. 양평에서 좋은 공기와 맑은 물 그 이상의 행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Z세대의 시골살이



온라인상에는 다양한 전원생활기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은퇴 후나 자녀가 있는 부부의 이야기로, 중년의 필자가 적은 내용이 많다. 그래서인지 20대인 내가 양평 전원주택에 산다고 이야기하면 처음 만난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헉, 그럼 불편하지 않아요? 일자리는 어떻게 하고요?" 등의 궁금증을 털어놓기도 한다. 가장 궁금해하는 건 이 부분이다. '청춘을 시골에서 보내는 것이 괜찮은가? 답답하진 않은가?' 이건 성향 차이일 것이다. 실제로 내 삶을 보며 '나는 그렇게 못 살 것 같아.'라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Z세대에게도 분명히 '한적한 시골 생활'에 대한 니즈가 있다고 본다. 특히 서울 2호선이나 9호선을 타고 출퇴근하다 보면 인구밀도가 낮은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아질 수밖에 없다. 일찍이 '제주 한 달 살기', '양양 한 달 살기' 등이 유행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과도한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도시를 떠나 자연이 아름다운 지역에 오래 머물고 싶어 하는 청년층은 꾸준히 있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체코나 조지아처럼 풍경이 아름답고 물가가 저렴한 나라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에 비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도 말이다.


나의 경우, 한 달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살기로 결정한 것뿐이다. 그리고 이런 Z세대의 전원생활기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 안타까워, '젊은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아주 현실적인 시골살이'를 기록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나처럼 의외의 적성을 찾아 삶의 터전을 훌쩍 옮길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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