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은 가끔 내게 이렇게 묻는다. "걸어서는 아무 데도 못 가고 대중교통도 없고. 어딜 가든 차 타고 다녀야 하면 너무 불편하지 않아?" 그럼 나는 이렇게 답한다. "내가 미국인이다...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 그렇다. 나는 학교에 트럭을 몰고 가는 트와일라잇 벨라의 마음으로 하나로마트에 가는 것이다. 어디에나 차를 타고 가야 한다는 사실은 아주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시골살이의 아주 치명적인 단점들이 있다.
택배가 안 오는 집이 있어요
지금 살고 있는 이 시골집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의 일이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왔다. "00번지 주민이시죠? 저 담당 택배기사인데요... 택배를 너무 자주 시키시는 것 같아서..." 사연은 이러했다. 이사 직후 우리 가족은 열심히 인터넷 쇼핑을 했다. 생필품부터 마당용품, 거실 창에 꼭 맞는 커튼이나 방을 꾸밀 소품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우리 동네에는 집이 매우 적어서 택배 기사님들이 '건수'를 채우기 굉장히 힘들다. 특히 우리 집은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어 더더욱 오기가 번거롭다. 우리 동네 주민들은 애초에 인터넷 쇼핑을 아예 하지 않는 노년층이거나, 이 사실을 알고 기사님을 배려해 택배를 거의 시키지 않고 있었다. 새로 이사 온 우리 가족만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아니, 우리는 '택배가 오지 않는 집'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여기는 섬도 아니고 경기도니까.
하지만 우리 동네를 차근차근 생각해 보니, 사실 여기까지 택배가 오는 게 더 기적 같은 일이라는 걸 깨우칠 수 있었다. 배송천국 한국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기사님은 이렇게 덧붙였다. "새로 이사오셔서 필요하신 게 많죠? 당분간은 바쁘실 테니 매일 들어오는 대로 배송해 드릴게요. 그 이후에는 신선식품만 아니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모아서 가져다 드려도 될까요?" 나는 서둘러 알겠다고 답하고는 가족들에게 이 중대한 사실을 알렸다.
그날부터 우리 집은 택배가 오지 않는 집이 되었다. 기사님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인터넷 쇼핑을 할 때는 무조건 서울에 있는 사무실 주소를 입력하고 아빠가 퇴근길에 차에 실어 2차로 직접 배송한다. 신선식품도 사무실의 개인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한꺼번에 가져온다. 서울에 살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고지서가 왜 이렇게 안 오지?
이사 후 하얀 울타리에 어울리는 빨간 우편함을 달았다. 예쁜 우편함은 전원생활의 하이라이트 아닌가.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아무런 우편물이 오지 않았다. 요즘 세상에 편지 받을 일이 없다지만, 적어도 고지서는 와야 할 것 아닌가!
의문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마을 입구에서 우편함 여러 개가 덕지덕지 붙은 전봇대를 발견한 것이다. 그중에는 우리 집 주소가 적힌, 고지서로 꽉 찬 우편함도 있었다. 집과 집 사이의 거리가 먼 탓에 마을 입구에 한꺼번에 우편을 전달하는 거였다. 집 앞에서 받아볼 수 있는 건 오직 등기뿐이었다.
비록 제 역할은 전혀 하지 못하지만, 빨간 우편함은 여전히 우리 집 대문 옆을 지키고 있다. 마치 편지가 오는 집처럼, 예쁜 디자인만으로도 그 역할을 다했다고 칭찬받으면서.
우리는 단일민족국가라고 했잖아요
열여덟 무렵의 일이다. 당시 나는 서울의 친구집에 놀러 갔다. 친구는 익숙하다는 듯이 배달 앱을 켜고 물었다. "엽떡 먹을래?" 나는 이렇게 답했다. "...한 번도 안 먹어봤는데?" 그 순간 친구가 경악스러운 듯이 되물었다. "엽떡을 안 먹어봤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이지?" 이 사태에 대해 똑바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친구의 번뜩이는 두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보통의 여고생들은 비누 향기가 아니라 은은한 떡볶이와 순대 냄새를 풍긴다. 밥은 안 먹어도 떡볶이는 챙겨 먹는 게 룰이니까. 당시 엽떡은 프랜차이즈 떡볶이의 대표주자 격이었다. 그런 엽떡을 한 번도 안 먹어봤다니, 나는 '여성 청소년 떡볶이 연대'에서 탈퇴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 셈이었다.
오해를 푸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 화면 하나로 충분했으니까. 배민에서 우리 집 주소를 입력하면, 곧바로 이런 화면이 나온다. 나를 약올리듯 엎어진 그릇들과 '텅' 한 글자. 우리가 어떤 민족이냐고. 바로 배달의 민족이 아니냐고 당당하게 외치던 광고를 떠올려본다. '한국은 단일민족국가'라는 것도 이제는 옛말이 되었듯 나는 '배달의 민족'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요즘 시대 사람들에게는 필수라는 배민, 요기요 등등의 배달 어플을 다 지워버렸다. 저 입체적이고 생생한 질감의 텅을 자꾸 들여다보고 있어 봤자 내 마음만 텅 비어버리지 않겠는가. 이런 내 사정을 들은친구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떡볶이에 치즈를 추가해 주었다.
로켓배송, 샛별배송, 새벽배송, 오늘드림... 밤 12시에 배송을 시켜도 새벽 6시에 문을 열면 도착해 있는 서울과는 다르게, 시골에서의 삶은 정말 느리고 불편하다. 택배도 우편도 배달음식도 오지 않고 스타벅스도 올리브영도 피자헛도 없다. 원래 없다가 생기면 적응이 빠르지만 있다가 사라지면 쓰라림이 큰 법이다. 도시에 살다 뒤늦게 시골에 정착하길 꿈꾸는 젊은이들에게는 분명히 큰 진입장벽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시골 동네들도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비록 아주 느리지만 꾸준하게. 이를 증명하듯 우리 집 4km 거리에 편의점도 하나 생겼다. 이런 발전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걸 보면, 나도 시골 사람 다 됐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