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영화관은 걸어서 5시간 30분이 걸린다. 제일 가까운 백화점은 5시간, 도서관은 그나마 2시간 조금 넘게 걸린다. 즉, 걸어 다니며 즐길 수 있는 여가시설은 아무것도 없다는뜻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골에 사는 젊은이에게는 두 가지 옵션이 있다. 첫째는 면허를 따고 차를 사는 것이다. 우리 언니는 이 방법을 택했다. 실제로 하루가 멀다 하고 차를 몰고 서울로 향한다.둘째는, 집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칩거생활의 달인이 되었다. 시골집에 틀어박혀 살면서 뭐가 그리 재밌나 싶겠지만, 프로집순이인 내 삶의 만족도는 200%다.
콘텐츠 구독의 달인이 되다
바야흐로 '유잼'의 시대다.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운 시골살이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적어도 문화생활의 측면에서는 그렇다. 예전에는 시골이 곧 문화생활의 사각지대였지만, 이제는 영화관이 멀어도 OTT 서비스를 즐길 수 있고 도서관이 멀어도 e북을 읽을 수 있다.
실제로 나는 OTT 서비스를 애용한다. 넷플릭스, 왓챠, 디즈니플러스, 웨이브, 티빙까지 구독하고 나면 최신개봉영화를 제외하고선 못 볼 게 없다. 걱정해야 하는 건 희박한 놀거리가 아니라 OTT 구독료가 모두 빠져나간 뒤의 희박한 잔고뿐이다. 일에 치이다 보면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여유를 부릴 시간이 거의 없지만, 본래 OTT 서비스란 있으면 안 써도 없으면 불안한 Z세대의 실비보험 같은 존재 아니던가.
게다가 층간소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빵빵하게 스피커를 틀어놓고 영화를 즐길 수도 있다. 가끔 정말 기다리던 영화가 있으면 영화관에 가기도 하지만, 이제는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홈시어터를 더 선호하게 됐다.
접근성이 올라간 것은 독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데, 밀리의 서재를 구독해 두고 애용한다. 꼭 이런 유료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지역에서 운영하는 사이버도서관을 통해 언제든지 e북을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글씨가 빼곡한 화면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3주에 한 번 차를 타고 도서관에 나가서 해결한다. 종이책을 넘기는 맛이 그리울 때면 도서관에서 대출 한도를 꽉 채워 빌려온다. 로알드달 원작의 영화 마틸다의 한 장면처럼 산더미처럼 쌓인 책을 낑낑대며 빌려오면, 3주 내내 풍족하게 종이책을 읽을 수 있다.
소장하고 싶은 책은 서점에 갔을 때 사 오거나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그만이니 큰 불편함이 없다. '독서덕후'로서 걸어서 서점이나 도서관에 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었다면 더 좋겠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책을 어디서 구하는가'가 아니라 '어디에서 읽는가'다. 그런 의미에서 산꼭대기 시골 주택은 조용히 독서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슬기로운 마당생활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그네를 타는 아가씨는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소재다. 나는 백작가의 딸내미도 춘향이도 아니니 격렬하게 발을 구르며 타곤 한다. 나무 아래에 매달린 그네에 앉아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가르는 바람을 느낄때면, '이번생은 천국의 미리보기인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네 옆에 달린 해먹에 누워 책을 읽는 건 봄가을에만 허락되는 작은 사치다. 바람을 맞으며 누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시집 한 권 정도는 뚝딱 읽는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다 보면 잠이 솔솔 오는데, 밀짚모자를 얼굴에 덮고 낮잠을 청하면 딱이다.
장마철에는 노트북을 들고 마당에 나가 정자에 자리를 잡는다. 연못에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쓸 때면,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비 오는 여름날의 선선한 공기와 빗물에 젖은 나무들이 내뿜는 풀냄새,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까지. 이보다 완벽한 풍경이 또 있을까?
사람보다 식물이 많은 곳
집순이라면 한 번쯤은 해본다는 식물 키우기. 사람보다 식물이 훨씬 익숙한 산꼭대기 집의 특성 때문인지, 나도 뒤늦게 재미를 붙여서 이런저런 식물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는 플랜테리어를 위해 화분 몇 개를 사들인 게 전부였다. 그러나 식물을 키우면서 그 매력에 빠져 본격적으로 식덕의 길에 들어섰다. 지금은 과일 씨앗만 보면 "이거 심어볼까?"라며 눈을 번뜩이는 사람이 되었다.
스킨답서스처럼 키우기 쉬운 식물들부터 시작한 식집사 생활은 어느새 석송을 들이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식물이 초록별로 떠났고 지금은 나와 생활 패턴(?)이 잘 맞는 식물들만이 내 방 한편을 지키고 있다. 말도 못 하는 식물을 키우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까 싶었지만, 물을 줄 때마다 파릇파릇 잎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면 분명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마당에 있는 식물을 돌보는 것도 즐거운 일과다. 씨앗부터 키운 바질로 페스토를 만들고 작은 토마토나 호박을 따먹기도 한다. 매실이나 모과 같은 열매도 별미다. 속세의 음식을 향한 미련은 버리지 못했으나,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직접 봤던 탓에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도시는 재미있는 지옥이고 시골은 재미없는 천국'이라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이웃의 목소리보다 고라니의 비명소리가 더 익숙한 이 동네가 누군가에게는 분명 '재미없는 지옥'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양평은 재미있는 천국이다. 앞으로도 이 있는 게 없는 시골동네에서 나만의 재미를 착실히 찾아갈 생각이다. 어차피 이번 생은 집순이인데, 이왕이면 행복한 집순이로 살겠다고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