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시골에서 20대로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고령화된 시골마을의 특성상, 또래친구를 사귀기가 매우 어렵다. 그 단적인 예로, 우리 동네 청년회장은 65세다. 이 정도 나이면 이 동네에서는 청춘이다. 우리 아빠는 50세 무렵 마을회관에 갔다가, "어머~ 웬 젊은 총각이 왔네?" 소리를 들었다. 우리 동네에는 이렇게 젊은이가 아주 희귀하다. 하지만 시골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Z세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15km 거리에 사는 동네친구
이 동네로 이사 온 뒤, 동갑내기 친구를 찾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중장년층뿐이었다.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내는 극한의 집순이인데도, 우연히 동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 젊은 여성이 나와 동갑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진짜요옥~?" 하며 반가움의 비명을 질렀다.
또래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놀란 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는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3년 차였는데, 동네 친구를 사귀는 걸 포기해야 하나 싶은 찰나에 나를 만났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동갑이라는 이유만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동네친구가 되기로 했다. 비록 15km 거리에 살지만, 이만하면 한 동네라고 우겨대면서!
새로 사귄 친구와 처음으로 통화할 때의 일이다. "혜... 교야... 나 이... 따가..." 친구의 목소리가 뚝뚝 끊겼다. 몇 초가 흐르자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방금 안 들렸어? 우리 집 통신이 잘 안 터져서 그래." 닿지 않는 것은 택배기사님 뿐만이 아니었다.
눈이 와서 학교 하루 쉽니다
"너 길동이(가명) 알아? 우리 아빠 친구 아들인데. 너보다 두 살 많고." 어렵사리 사귄 동네 친구 2호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 친구는 이 동네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 나왔다. 길동이도 같은 학교에 다녔으니 나이는 달라도 아는 사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물었다. "한 학년에 반 하나씩밖에 없는데, 당연히 알지!" 어쩌면 당연한 대답이었다.
양평은 눈이 많이 오는 동네다. 한겨울에는 서울과 6도까지 차이나기도 하고, 4월에 함박눈이 내린 적도 있다. 겨울이면 이장님은 트랙터로 눈을 밀고 집집마다 도로의 눈을 치우기 바쁘다. 눈을 치우는 것도 어느 정도 멎어야만 의미 있는 일이라, 가끔 밤새 눈이 펑펑 내린 날에는 도로가 완전히 막혀 고립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우리 학교 눈 오는 날에는 그냥 쉬었어. 애들 위험할까 봐." 모든 학생들의 꿈이지만 거의 실현되지 않는, '오늘은 눈 많이 오니까 학교 쉬어!'가 이곳에서는 일상인 것이다. 등교는 고사하고 고립되거나 미끄러져 다치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시골 아이들은 학교 끝나고 뭐 할까
노래방도 PC방도 없는 동네에서,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뭘 하고 놀까? 하나로마트가 있는 동네의 번화가에 가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더운 여름 하교 시간이 되면 교복 입은 아이들이 하천에 모여있다. 학교에서 하천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가 발을 담그고 물수제비를 뜨면서 논다. 소나기의 한 장면이 따로 없다.
이렇게 평화로운 학교에도 가끔은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몇몇 학생이 담배를 피우다 걸린 것이다. 도시의 학교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이 작고 조용한 학교에서는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모두들 어찌나 놀랐는지, '담배 피우다 학교에 걸린 학생이 있다더라'는 이야기가 내 귀에까지 들어왔다. 하천에서 물수제비 뜨던 순박한 아이들이 담배를 피웠다니. 양평의 빅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이곳에서 성장기를 보냈지만, 성인이 되자마자 본가를 떠나 도시로 가는 사례도 많다. 수많은 배움의 기회와 새벽까지 여는 술집, 집 앞에 널린 편의시설을 찾아서. 화려한 네온사인이나 최신 유행곡이 흐르지는 않지만, 선명한 별자리와 풀벌레 소리가 있는 이 시골동네에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젊음을 성실히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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