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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Mar 17. 2023

시골집을 천국처럼 꾸몄습니다.

Z세대의 시골살이


시골살이의 장점을 하나 말해보자면, 자잘하게 돈 쓸 일이 없다는 것이다. 지나가다가 홀린 듯이 명랑핫도그에 들어가 감자핫도그를  주문한다거나, 길을 걷다 스타벅스를 보고 갑작스럽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땡겨서 4,100원을 쓸 일이 없다는 뜻이다. 이게 그렇게 큰 차이인가 싶겠지만, 20대에는 이렇게 쓰는 돈만 모여도 꽤 큰 지출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돈을 아예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칩거를 즐기는 만큼, 집안에 있는 동안은 삶의 질을 최고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렇게 나는 시골집을 완벽한 내 취향으로 만들기 결심했다. 일명 '소처럼 벌어서 집에다 쓰자' 프로젝트였다.





셀프 인테리어 도전기


시골집은 대체로 낡았다. 오래전 누군가 지어놓고 방치된 집도 많다. 요즘에는 신축 전원주택 단지도 많다지만, 우리 집은 지은 지 20년을 훌쩍 넘긴 전원주택이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그 모습은 경악스러웠다. 괴상한 벽지는 기본, 투박한 조명에는 여기저기 거미줄이 걸려있었다. 그야말로 시골집의 정석이었다.



뿌연 창문과 낡은 인테리어는 처참했지만, 산꼭대기에 위치한 만큼 뷰 하나는 끝내줬다. 이 멋진 뷰를 놓칠 수 없었던 우리 가족은 직접 고쳐가며 살기로 했다. 빨간 꽃무늬 벽지에 버터색 페인트를 바르고 거대하고 못생긴 조명을 바꿔 달면서 집을 꾸몄다. 집에 오랜 시간을 머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인테리어가 필수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비록 대대적인 리모델링은 할 수 없었지만, 벽지와 조명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가 생길 게 분명했다. 벽지를 직접 바를 자신은 없어서 페인트를 골랐다. 줄자로 벽의 길이를 재고 하나하나 면적을 계산했다. 사다리꼴의 넓이 구하기를 정말 오랜만에 해봤다.


빈집도 아니고 살고 있는 집에 페인트칠을 하는 게 너무 냄새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요즘에는 기술이 좋아져서 그런지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버터색 페인트로 깔끔하게 벽을 칠하고 나머지는 예쁜 가구로 채워 넣기로 했다. 거실과 방을 모두 칠하고 조명까지 바꾸는데 총비용이 30만 원도 들지 않았다. 모든 걸 셀프로 진행하고 조명도 당근마켓으로 구매해 비용을 절감했다.






줏대 있게 전원주택 꾸미기


내가 집을 꾸밀 당시 인테리어 트렌드는 '미드센추리 모던'이었다. 오늘의집에 접속해 보면 모두가 파란 러그에 모듈 가구, 흰 원형테이블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체리몰딩과 꽃무늬벽지가 가득한 이 집에 모던 가구를 둬봤자 어울리지 않을 게 뻔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오래된 집을 멋지게 꾸미는 최고의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오래된 가구로 채워 그 매력을 살리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엔틱한 가구가 내 취향에도 맞았다. '유럽의 오래된 시골집'이 내가 세운 컨셉이었다.


그 이후로 몇 달 동안 품을 들여서 엔틱 가구와 소품들을 모았다. 인스타그램에 있는 빈티지마켓을 제집처럼 들락거렸고 가끔은 당근마켓에서 좋은 매물을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에 구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 동네 당근에는 아무것도 올라오는 게 없어서, 서울에 가서 동네인증을 해야 했다. 7~10만 원을 주고 용달을 불러서 하나씩 실어 날랐다.



플랜테리어도 해보기로 했다. 마호가니색 원목 가구들과 가장 잘 어울리는 소품은 뭐니 뭐니 해도 푸른 식물이니까. 오래된 가구와 싱싱한 식물은 늘 최상의 시너지를 보여준다. 더군다나 화병 속 물을 갈거나 마른 흙에 물을 주다 보면 시간의 흐름을 읽을 수도 있었다. 소소한 소품을 들일 때마다 집에 대한 애정이 커져만 갔다.





집안에서 모든 걸 해결해 보겠습니다


나는 평소에 크게 소비하는 곳이 없다. 게임이나 덕질에도 취미가 없고 심지어는 커피를 즐겨마시는 편도 아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여행을 열심히 다녔지만, 하늘길이 막힌 이후로는 더더욱 돈 쓸 곳이 없었다. 그래서 버는 족족 집에다 돈을 쓸 수 있었다.


시골에 살다 보면 사회의 여러 가지 편의 서비스를 누릴 수 없다. 하지만 실용적으로 살기 위한 아이템을 들이면 아쉬운 대로 갈증을 해결할 수 있다. 즉, 집안에서 모든 걸 그럭저럭 해결할 수 있는 편리한 가전을 들여놓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 세탁소에 자주 가지 못하니 건조기와 스타일러를, 음식물 쓰레기 수거장이 없으니 미생물 음식물 처리기를, 피부관리숍에 갈 수 없으니 홈에스테틱 기기를 샀다.


시골에 산다고 해서 발전한 문명을 활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물론 이렇게 편리한 가전을 들인다고 해서 도시의 편의시설을 일절 빌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쉬움을 달래기에는 충분했다.  집안에 머무는 동안 편리함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면 옳은 소비라고 여겼다.





유행은 몰라도 취향은 아는 사람


유행도 유흥도 없는 시골에 살면서 느낀 점은, 유행을 아는 사람보다 취향을 아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나는 늘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이내, 내게 편리함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편안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유행하는 아이템은 모두 외면하고 내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예를 들어,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니 오로지 독서만을 위한 공간을 갖고 싶었다. 결국 당근마켓에서 이케아 암체어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해 방 한구석에 두었다. 바로 옆에는 밝은 스탠드와 함께 책이나 찻잔을 올려둘 수 있는 협탁을 배치했다. 비록 엄청난 공간을 차지해 그리 실용적이지 않은 가구 배치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다. 자기 전 언제나 이곳에 앉아 책을 읽는다. 주말에는 이 소파에서 반나절을 보내며 앉은자리에서 책 두 권을 읽어버리기도 한다.





나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포근한 집을 택했다. 멋지고 모던한 요즘 스타일로 집을 꾸며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주어진 조건을 잘 활용하면서 오래된 집의 매력을 살려가는 과정도 못지않게 즐거웠다. 못생긴 체리몰딩이 보기에 튄다면 비슷한 색의 가구를 배치해 중화하면 되고 실금이 간 낡은 창문이 아쉽게 느껴진다면 예쁜 커튼으로 가리면 되니까. 내게 시골에서의 삶이란 '아쉬움과 불편함을 취향으로 덧칠해 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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