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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Mar 22. 2023

반려동물 8마리와 전원생활 중입니다

Z세대의 시골살이


우리 집에는 인간 넷과 여덟 털뭉치가 산다. 50대 부부와 20대 딸 둘. 세 마리의 강아지와 다섯 마리의 고양이. 전원생활을 시작하며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사람보다 동물이 배로 많은 우리 집을 보면 다들 놀라곤 한다.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한 지 10년을 훌쩍 넘은 지금은 그런 반응도 익숙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사실상 반려동물의 천국이다. 산꼭대기에 있고 마당이 넓은 이 집을 선택하게 된 건 반려동물의 영향이 컸다. 강아지들이 맘껏 짖어도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이웃과 멀리 떨어진 이 집이 딱이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걸 좋아하는 고양이들에게도 최적의 집이었다. 그렇게 만장일치로 이 집에 이사 오게 되었다.






털 날릴 결심



당연히 처음부터 여덟 마리와 함께 살 결심을 한 것은 아니었다. 여러 사정을 가진 털뭉치들과 우연히 만났다. 유기묘가 낳은 새끼 고양이, 두 번이나 파양 되고 마음의 문을 닫았던 강아지, 어미를 잃고 비를 맞아 죽어가던 고양이. 우리 집에 오기까지 그리 평탄하지 않은 생활을 했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여덟 마리지만, 무지개다리를 건넌 생명들까지 포함하면 더 많다.


반려인들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뎌져야 하는 일이 많다. 예를 들어 밥알 위에 살포시 얹어진 털이라든지, 검은 옷에 위에 흰 털이 붙어 생긴 다채로운 무늬라든지, 소파 옆면에 장식처럼 생긴 발톱 자국 같은 것들. 5마리의 고양이를 위해서 6개의 화장실을 놓거나, 대형견을 위한 침대 몇 개를 놓고 나면 인간의 공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집이 '좁아질 결심'이나 '털 날릴 결심'은 필수다.


우리 집에도 소파가 있던 시절이 있지만, 강아지가 마킹을 하거나 고양이가 뜯어버려서 이제는 우드슬랩 테이블만 둔 깔끔한 거실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소파를 등받이 삼아 바닥에 주저앉거나 드러누워 TV를 볼 수 없는 건 아쉽지만, 큰 원목 테이블이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거실이 제법 스타벅스 같지 않냐며 위안을 얻는다.





더불어 사는 가족입니다


비록 다양한 불편함이 있지만, 반려동물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준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서자마자 함박웃음을 짓게 하는 건, 하루종일 붙어있는데도 마주칠 때마다 반겨주는 건 역시나 반려동물뿐이다. '아무리 그래도 여덟은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덟이라 행복도 여덟 배가 된다.


물론 우리 가족이 이렇게 여덟 마리의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는 것은 집에 사람이 상주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엄마가 늘 집에 계시고 나도 출장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늘 동물들과 함께 집에 머문다. 우리 집 털뭉치들은 24시간 365일 집사 없이 보낼 일 없는 행복한 존재들이다. 덕분에 가족 여행도 쿨하게 포기했다.



'강아지랑 고양이 안 싸워요?'도 단골 질문이다. 8명의 어린아이를 모아두면 절친도 생기고 서먹한 관계도 있는 것처럼, 우리 집의 생태계도 그렇다. 그러나 대체로 모두 아주 가깝게 지낸다. 특히 사진 속 고양이 제제와 조이, 강아지 다올이는 죽고 못 사는 껌딱지 같은 남매 사이다. 잠을 잘 때도 꼭 붙어 자려고 한다.


오랜 시간 함께 어울려 살면 고양이와 강아지가 서로의 말을 얼추 알아듣는다. 고양이가 손톱 깎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면 강아지가 와서 그만하라며 편을 들어준다. 강아지가 간식을 달라고 짖으면 고양이들도 간식 시간인 것을 알고 쪼르르 모여든다. 그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 없다.






털뭉치 전용 공간



10년을 넘게 함께 살다 보니, 얼추 마음이 읽히는 것도 같다. 바깥 구경을 좋아하는 고양이들을 위해 마당 덱 위에 캣티오(고양이정원) 만들어 줬는데, 아침만 되면 출입구를 열어달라고 졸라댄다. 창문이 고양이들을 위한 넷플릭스라면, 캣티오는 아이맥스인 셈이다.



강아지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당에서 뛰어논다. 일하는 집사 옆에 다가와 무턱대고 애교를 부린다는 건, 어서 문을 열으라는 소리다. 마당에서 뒹굴거리며 햇빛을 쬐거나 어디 주워 먹을 것 없나 어슬렁거리는 게 이 털뭉치들의 일과다.


사실 이 집에 처음 이사 왔을 때, 마당 가장 구석에 펜스로 둘러진 1평 남짓의 공간을 발견해 의아해했었다. 알고 보니 이전에 살던 사람은 그 좁은 공간에 강아지를 가둬두고 키웠다고 한다. 이 넓은 마당 중에서 강아지에게 허용된 공간은 딱 1평이었던 것이다.


우리 가족은 그 공간을 작은 텃밭으로 개조했다. 마당 곳곳을 들쑤시며 밟고 다니니, 강아지들로부터 안전한 곳에 텃밭을 둘 요량이었다. 덕분에 강아지들은 그 좁은 공간 빼고는 어디든지 뛰어놀 수 있게 되었다. 매일 신나게 마당을 뛰어논 다음, 집에 들어갈 때마다 척-하고 발을 내민다. 집에 들어가서 쉬고 싶으니 어서 발을 닦아달라는 의미다. 네 발 모두 고이 닦아드리면, 집사 침대에 가서 턱 하니 누워 낮잠을 잔다.


 





우리의 엔딩이 새드일지라도


이 집이 반려동물에게 천국이라고 적었지만, 사실은 이 집을 천국으로 만들어주는 게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이 신기한 생명체들은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이렇게 세상을 다 받은 것처럼 웃는다. 귀엽다고 말하면, 어떻게든 귀여움을 증폭하려고 애를 쓴다. 하루하루가 못 견디게 행복한 것은 모두 이 따뜻하고 소중한 털뭉치들 덕분일 것이다.


사랑하는 만큼 아픔도 커지는 법이다. 동물을 너무나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함께 살 수 없는 이유로 '이별'을 꼽는 사람도 많다. 가족과 헤어진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인간보다 수명이 턱없이 짧은 존재를 사랑한다는 건 예견된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일이다. 나 역시 매일이 행복하고 즐겁지만, 가끔은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드라마처럼 끝이 정해진 행복을 누리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반려동물을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낸 뒤 며칠이나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해진 이별이 사랑을 마다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사랑은 언제나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되는 법이니까. 나는 주어진 시간 동안 충분히 사랑하며 살기로 결정했다. 우리의 엔딩이 새드일지라도, 우리의 장르는 행복이었다는 걸 오래오래 기억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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