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시골에 살면 밤에 무섭지 않나요? 사람도 없고..." 그럼 나는 이렇게 답한다. "사람이 있는 게 무섭지, 오히려 사람이 없으면 무섭진 않아요." 사실 정말 무서운 것은 어둠이 아니라, 어둠 속에 숨은 사람이니까. 타인을 마주칠 일 없는 시골집의 마당에서는 서울의 골목에 서있을 때와 달리 어둠이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다.
인공위성 아니고 진짜 별
지붕 위에 뜬 북두칠성
별이 쏟아질 것처럼 검은 하늘보다는 눈이 절로 침침해지는 뿌연 하늘이 익숙한 요즘이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20대는 살면서 제대로 된 별자리 한번 볼 일이 드물다. 어쩌다 밤하늘에 유난히도 밝은 별이 보이면, 이렇게 말하게 된다. "저건... 인공위성 같은데?"
나 역시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선명한 별자리를 본 적이 없었다. 가끔 별 한두 개 뜨는 날은 있을지 몰라도, 꼼꼼히 연결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별을 볼 일은 없었다. 별자리를 잘 아는 아빠는 희미한 별을 보고도 별자리를 그리며 설명해 주곤 했지만, 내 눈에는 도저히 보이지 않아서 별자리 같은 건 정말 그리스로마신화 속에만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반면 시골의 밤은 정말 어둡다. 야근하는 직장인들이 머무는 등대 같은 빌딩도 없고 이웃집 거실에서 새어 나오는 TV의 빛도 없다. 간간히 도로를 비추는 가로등 정도가 전부다. 집안의 불을 모두 끄고 마당으로 나가면, 구름 낀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매일 별자리를 볼 수 있다. 이렇게 핸드폰 카메라에 북두칠성이 잡힐 정도로 별이 밝은 날은, 두 눈으로 봤을 때 별이 정말 쏟아질 것처럼 많은 날이다. 인공위성이 아니라 진짜 별. 지구를 둘러싼 진짜 우주를 실감할 수 있는 순간.
깊은 밤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도시에 살 때는 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밤은 어둡고 위험하니까. 그래서 겨울이면 해가 빨리 지는 게 싫었다. 하지만 시골로 이사 오고 난 뒤, 처음으로 깊은 밤을 좋아하게 되었다. 오히려 겨울에는 별이 더 선명하게 보여서 좋다.
가끔은 침대나 윈도시트 위에 누워 이렇게 창 밖의 별을 보곤 한다. 정말 운이 좋을 때는 별똥별도 볼 수 있는데, 너무 빨리 떨어져서 소원 빌기에 성공해 본 적은 없다.
계절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곳
시골에 살면 계절의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느낄 수 있다. 봄에는 사방이 꽃잎으로 뒤덮이고 가을에는 나무 위에 따뜻한 색감이 내려앉는다. 굳이 꽃놀이나 단풍놀이를 가지 않아도 좋다. 봄과 가을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가족 모두가 마당에 나가 한참을 앉아있곤 한다.
계절이 변한다는 게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일인지, 나는 이곳에 와서 처음 알았다.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도 가게마다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도 없는 이 시골 동네에서는 오롯이 자연의 풍경과 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나무에 앉은 새가 인사하듯 지저귀고 어느 날 밤부터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기념일을 챙기는 연인처럼, 계절의 흐름을 꼬박꼬박 챙기며 기뻐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봄이 오면 봄이 오는 대로, 가을이 가면 가을이 가는 대로.
날이 쌀쌀해지면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는 것도 하나의 기쁨이다. 지난겨울에는 처음으로 2m가 넘는 거대한 트리를 샀다. <나 홀로 집에>의 한 장면처럼 가족이 함께 모여 트리에 오너먼트를 걸고 소박한 점등식도 했다.
난로에 구운 군고구마, 흔들의자에 앉아 마시는 핫초콜릿, 멋진 크리스마스트리 옆에 흐르는 캐롤과 가족과 함께 즐기는 연말파티까지.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자꾸만 늘어난다.
어떤 순간은 영화가 된다
버스도 안 다니고 택배도 안 오고. 배달음식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는 데다 마땅한 일자리도 없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 동네에는 있는 게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며 이런 시골동네에 사는 이유는 딱 하나다. 이곳엔 언제나 낭만이 있다.
어쩌면 도시에서 조금 더 치열하고 편리하게 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만약 시골의 삶을 몰랐다면, 나 역시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빌딩에서 살기 위해 달리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름의 행복을 찾았겠지. 하지만 분명한 건, 그런 삶이 내게 최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햇살이 따뜻한 오후에 강아지들과 함께 잠시 잔디 위를 뒹굴던 날들. 지붕 위에 올라가 맞았던 시원한 여름 바람. 뒷산에 올라 산딸기를 따먹고 해먹에 누워 낮잠을 청하던 모든 순간. 삶의 어떤 장면은 마치 영화처럼 기억에 남아, 힘든 날을 버티게 하는 양분이 된다.
누군가는 낭만이 밥 먹여주냐고 비웃겠지만, 나는 이제 밥만 먹고사는 삶을 거부한다. 먼 훗날 돌이켜봤을 때, 나의 청춘은 그보다 행복할 순 없는 나날들이었다고 추억하길 바란다. 이곳에 와서 나는 내가 어떨 때 가장 행복한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정답을 찾았다. 느리지만 여유롭게, 불편하지만 낭만 있게. 앞으로도 그렇게 삶을 흘려보내겠다고 다짐해 본다.
<20대지만 깡시골에 삽니다> 시리즈의 기획 의도는 'Z세대의 관점에서 본 시골 생활의 장단점을 공유하자!'였다. 도시에 살 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다양한 불편함과 변화를 알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시골살이를 사랑하는 이유를 담아보자는 취지였다.
나의 아날로그적인 삶을 디지털 세상에 전하는 일이 이렇게까지 즐거울 줄은 미처 몰랐다. 약 한 달하고도 보름의 연재 기간 동안 무려 15만 뷰를 달성했고 많은 분이 공감의 댓글을 달아주셨다. 나 역시 글을 쓰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이 시골 마을에 대한 나의 사랑을 곱씹을 수 있어 행복했다.
이렇게 시리즈의 막을 내리지만, 2부에서는 <시골집에 살고 출근은 안 합니다>(가제)라는 제목으로 더 자세하고 현실적인, '시골집에서 재택근무하는 집순이 작가로서의 삶'을 담을 예정이다. 여전히 느리지만 여유롭게, 불편하지만 낭만 있게.
2부 <시골집에 살고 출근은 안 합니다> 바로가기↓
https://brunch.co.kr/brunchbook/i-love-my-room
지금까지 <20대지만 깡시골에 삽니다>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부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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