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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안 되는데 왜 자꾸 글을 쓸까?

작가의 마음과 걸음

by 송혜교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는 말을 들으면, 친구들은 이렇게 반응한다. "와~ 멋지다. 원고료 줘?" 땡전 한 푼 안 받으면서도 부지런히 쓰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친구들은 다시 이렇게 반응한다. "왜?!" 어찌 보면 당연한 궁금증인데,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돈도 안 될 걸 알면서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는가? 이 시간에 다른 일을 하면 돈을 배로 벌 걸 알면서도 왜 굳이 작가로 먹고살아보겠다며 아등바등하고 있는가.




목에 걸린 글감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다는 건 언제나 목에 생선가시가 걸린 사람처럼 사는 일이다. 글을 쓰는 행위에서 영영 동떨어지지 못한 채로, 목에 걸린 문장들을 토해낼 시기를 노리며 지내는 것이다. 책상에 앉아 잔뜩 컥컥거려 보다가, 따뜻한 물도 마셔보다가. 그러다 겨우겨우 글 한 편을 완성하고 나면 또다시 텅 빈 목이 공허하다고 느끼는 것.


'창작의 고통'이라는 말이 지닌 유명세 때문일까? 직업이 '작가'라고 말하면 대체로 이런 답이 돌아온다. "헉, 멋져요. 너무 힘드시겠다. 저는 두 줄 쓰는 것도 힘들던데요!"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이 글쓰기의 고통스러움을 매우 높이 쳐준다. 물론 실제로도, 창작의 고통은 다방면으로 나를 괴롭힌다. 휴일을 휴일이 아니게 만들어버리고 샤워 중에도 자려고 누웠을 때도 한결같이 나를 괴롭게 만든다. 특히 마감일이 다가올 때면 더더욱 그렇다.




책상 앞의 고난


그러나 이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내 직업만족도는 최상이다. 적어도 내게 있어 창작의 고통이란 출퇴근 직장인의 고통보다 가벼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책상 앞에 앉아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가볍게 이마를 통통 두드리며 조바심을 낼 때도 있다.


책상 앞의 고난은 가끔 세찬 파도 같지만, 글쓰기를 거듭하는 건 파도를 탈 줄 아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과 비슷하다. 글이 써지지 않아서 괴로우면, 그냥 쓰면 된다. 책상 앞에 앉는 게 힘이 들면, 그냥 앉아서 5분이라도 버티면 된다.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는 잠시 노트북을 닫고 음악을 들으면 된다. 모든 걸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여러모로 불안정하긴 해도, 이 모든 고통은 내게 달려있다는 게.




사랑을 전하는 사람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글만 보고 사랑에 빠질 수도 있을까? 이런 질문에 김영하 작가는 이런 명쾌한 답을 남겼다. "작가들도 팬 많아요!" 나 역시 글을 쓰며 소박하게나마 '작가를 향한 사랑'을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쓰며 얻을 수 있는 것 중 가장 값진 것은 단연 독자들의 댓글이나 메시지다. 특히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 언제나 살갑고 따스한 댓글이 달리는데, 그 몇 줄의 댓글이 정말 큰 힘이 된다. 글을 쓰다가 막힐 때면 댓글을 다시 돌려볼 정도로!



책을 낸 뒤 독자들로부터 애정 어린 메시지를 몇 차례 받았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책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내 책을 읽고 '내가 책을 좋아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던 메일이다. 이 청소년은 학교에서 '롤모델 인터뷰하기'라는 과제를 받았고 내 생각이 나서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당시 나는 한창 바쁜 시기를 지나고 있었지만,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좋은 책이라는 생각을 홀로 삼키지 않고 기꺼이 내게 전해줬다는 사실이 고마워서였다. 그는 며칠 뒤 과제를 잘 끝냈다며 내게 책 선물을 보내왔다. 참 따뜻하고 귀여운 마음이 아닐 수 없다!


청소년들은 신세대답게 인스타그램 DM으로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나는 사실 DM 요청을 거의 확인하지 않는데, 이 멋진 팬레터(?)도 몇 주나 지나서야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책을 읽고 많은 위안을 얻었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용기가 생겼다는 감사의 편지였다.


스크롤을 내리고 또 내려야 할 만큼 긴 메시지를 읽으며 그가 보내주는 사랑을 만끽할 수 있었다. 책을 내지 않았더라면,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감동적인 글을 받아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책에 연락처가 적혀있는 것도 아닌데 작가의 이름을 검색해서 찾아내는 일, 보낼까 말까 주저하다가 결국 몇 줄을 적어 내리는 일. 확인을 할까, 하지 않을까 마음 졸이는 일. 모두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독자가 보낸 글을 읽는다는 건, 어떤 형태로든 행복한 일이다.





자신이 글에서 찾아낸 사랑을 기어코 작가에게 돌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감상을 홀로 간직하는 것이 가장 쉬운 길인데도. 그 마음을 한번 받아본 사람은 무언가에 중독된 것처럼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어딘가 있을 독자에게 내 글이 위안이 되기를, 기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쓰는 사람'으로 남겠다고 결심한 것은 모두 독자들 덕분이다. 내 글이 참을 수 없이 구리다는 생각이 들 때도, 돈도 안 되는 일에 이렇게까지 열심인 나 자신이 우습게 여겨질 때도, 독자들의 따뜻한 시선은 늘 어둠 속의 등불 같았다. 이 자리를 빌려 모두에게 감사드리며, 시리즈의 막을 내린다. 앞으로도 열심히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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