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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Jul 03. 2021

마음을 달래는 포근한 구름: 자운침향

다향정


다향정(茶香停).


조계사 앞, 불교 용품점이 쭉 늘어서 있는 거리에서 간판들 사이에 보이는 이름입니다. 다향정은 한국의 향 전문점으로, 각종 향 원료와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선향, 이외에도 여러 향 관련 물품들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향은 홍차만큼 판매점이 많지도 않고 인터넷에서 알아볼 수 있는 정보도 적어서 입문이 상대적으로 쉽지 않다는 인상인데요, 이 다향정에 방문하면 인상 훤칠하신 사장님께서 젊은이들을 무척 반기시면서 이것저것 샘플들을 피우며 친절하게 향을 소개해 주시곤 합니다.


한국 향당들에서 나오는 향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대체로 기운이 강해서 탁 트인 야외나 널찍한 절 정도는 되어야 매캐하지 않고 진면모를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다향정의 향은 순한 편이라 가정집 실내에서 피우는 생활 향으로 무척 적합했습니다.




오늘 리뷰할 자운침향(慈雲沈香)은 다향정에서 판매하는 선향들 가운데 중간쯤 가는 가격으로, 저는 딱 부드럽게 침향의 뉘앙스가 필요할 때 편히 찾고 있는 제품입니다. 백단향과 침향을 배합한 향인데 백단의 가뜬함과 침향의 달콤 우아함이 어우러져 온 몸을 따스하게 덥혀 주는 기분이 들거든요.


자운(慈雲)이라 함은 자비로운 구름으로, 구름이 온 하늘을 덮듯이 부처님의 은혜가 널리 미치는 모양을 뜻한다고 합니다. 다향정의 향들은 기본적으로 불교 쪽 네이밍을 택하고 있는데, 꼭 종교가 일치하지 않아도 이렇게 뜻하는 바를 알아보고, '그러면 어떤 향일까' 를 떠올려 보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자운침향은 그러니까, 넘실넘실 세상을 감싸는 사랑과 자비의 향기인 것이겠네요.



불을 붙이면 탑탑하다고 해야 할까, 따스하고 달콤한 침향의 뉘앙스가, 너무 무겁지 않게 배합된 백단의 시원함을 타고 하늘 위로 높이 날아오릅니다. 향연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반갑게도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는데, 꼭 군불에서 나는 밤 익는 향, 녹진한 나무가 타면서 수지가 녹아내리는 향처럼 느껴져 아늑한 기분을 만들어 줍니다.


저는 밤에, 혼자서 잠옷을 갈아입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좋아하는 음악을 튼 뒤에 이 향을 조금 진할 정도로 빠듯하게 태우기를 좋아합니다. 꼭 달콤한 구름 속에 감싸인 느낌이 들어 푹 잘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가만히 손에 들거나 곁에 놓고 호흡하면 푸근하고 안정되는 이 향기가 피어올라, 절로 긴장이 풀리고 몸 속에 깃들어 있던 삶의 깊은 시름을 녹여내 줍니다.



침향은 단독으로 피우기에 묵직하고, 꼭 명상을 해야 할 것 같은 이른바 격조랄까 하는 것이 있는 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침향이 저 하늘 높이 날아오르도록 하는 시원하고 넓은 백단을 더하고, 온 세상에 깃털처럼 가볍게 내려앉도록 만드는 이 배합은 필요한 것이 필요한 곳에 쓰여 아름답습니다.


세상 어떤 것에도 적재(適在)와 적소(適所)가 있다면 자비로운 구름은 그 어디에든 내려앉아 세상을 포근히 감싸겠지요. 마음을 달래는 포근한 구름, 자운침향(慈雲沈香)의 향기입니다.





* 매거진의 모든 리뷰는 주관적 감상이며, 가게 연혁 등을 직접 인용하지 않는 이상 제가 즐기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옮깁니다. 따라서 현재 시점과 다르거나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류가 있을 시 알려 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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