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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Sep 11. 2021

물기 어린 아쟁 소리: 타카이쥬에몬1575

교토 코쥬

교토 코쥬 두 번째 리뷰입니다. 시리즈와 가게에 대한 소개는 첫 글을 참조해 주세요.


1. 북유럽 현대 소설 속 한 장면: 타카이쥬에몬 2019

2. 물기 어린 아쟁 소리: 타카이쥬에몬 1575




교토 코쥬타카이쥬에몬(高井十右衛門)1575. 전통을 이어받아 상품으로 구현해 내기로 이름지은 타카이쥬에몬 시리즈 가운데서도 가게의 역사가 시작한 시기를 모티브로 한, 코쥬에서 선보이는 전통의 향기입니다.


재료는 침향, 백단, 패향, 감송.


공식 홈페이지 설명을 보면 '침향의 중후함에 백단의 부드러움이 더해지고, 감송의 깊이와 신중하게 손으로 빚어낸 패향이 감미롭게 전통의 향기를 속삭입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좋은 향의 특징은 오묘하다는 것입니다. 타카이쥬에몬(高井十右衛門)1575는 그런 기준으로 따지면 참 오묘하고 아름다운 것이, 향연에서 주의를 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인상이었다가 금새 다른 것으로 변하고, 그러다가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나나 싶더니 저 깊은 속에서 새로운 향기가 흘러나옵니다. 우리가 간단하게 '전통', '역사', 라고 한 단어로 말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이야기가 깃들어 있어서일까요.


처음 불을 붙이면 깨끗한 물냄새가 납니다. 깊숙한 절간의 그림자에서 날 법한 청정하고 서늘한 향, 비어 있는 공간에 깃든 맑은 공기.


그러다가 매캐한 냄새. 콤콤하고, 오래 숙성한 노백차에서 날 법한 향이 있습니다. 물에 젖은 짚 냄새, 누룩이 발효되는 은근한 냄새라고 할까요. 다소 매콤하고 콤콤한 이 부분이 주향이 되는 것 같은데, 다른 면모들도 무럭무럭 고개를 내미니 참 재미있습니다.


또 먹 냄새. 먹을 벼루에 갈 때 피는 향긋한 송연향과 붓끝에 젖어들어가는 종이 냄새가 납니다.


공통점은 물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이 향을 피워 놓고 들어 보면 그 향조는 떠나가는 여름이 시원섭섭한 것도 같고, 곧 올 가을날의 서늘한 바람 같기도 합니다.



타카이쥬에몬(高井十右衛門)1575가 선보이는 전통의 향기. 그 옛날 사람들은 지금에 비하면 작은 나무 집에 앉아서,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때쯤 향을 피우고 이러한 향기를 맡았을까요.


감미롭기도 하고 애절하기도 하게 이어지는 침향 백단의 주고받음은 옛 시절 같고 어딘가 금을 타는 처연한 소리 같습니다. 아, 이 이어짐은 아쟁일까요. 현을 활로 그으면 명주실과 말총이 맞닿아 떨리며 울려 나가는 쨍하고 안타까운 소리. 그 울렁거림에 몸을 싣습니다.


밤에 초 한 자루와 같이 태우니 피어오르는 상념도 향연에 실려 다 사라지는 것만 같습니다. 오직 타는 동안만이지만, 그만큼만이라도 시름을 잊을 수 있다니 세상에 이런 놀이가 있을까요.



* 매거진의 모든 리뷰는 주관적 감상이며, 가게 연혁 등을 직접 인용하지 않는 이상 제가 즐기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옮깁니다. 따라서 현재 시점과 다르거나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류가 있을 시 알려 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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