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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Nov 04. 2021

1.너무도 당연하지만 너무도 어색한 그 이름 엄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아침, 익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한 그런 공간에서 깨어났다. 눈을 떴을 때 눈 앞에 펼쳐진 방안을 인식할 수 없었다. 더위가 더위 같지 않고, 시야를 통해 인식되는 방안의 모든 것들이 신기루 같았다. 고통 외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이상한 감각만이 얼마 동안 나를 지배했다.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속삭였다. 그 소리는 무척 짧고 단호했다.      


“죽어야만 해”      


소리에 대한 인식과 함께 곧, 몸의 감각들이 구체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하자, 너무 고통스러워 죽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끔찍한 고통이었다. 귓가에 속삭이는 죽음의 손짓만이 나를 구원해줄 해답처럼 느껴졌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을 때, 머릿속에는 온통 죽음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했다. 내가 죽으면 슬퍼할 가족들의 생각이 아득하게 떠올랐지만, 몸과 마음을 넘어 영혼을 짓누르고 있는 끔찍한 고통의 무게 저 밑바닥에서 희미할 뿐이었다.

      

“이제 더는 못하겠어…”     


그 소리를 입으로 뱉은 것인지, 생각으로 뱉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존재의 개입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렇게 선포된 직후 내 안의 모든 고통과 세상의 소리도 멈추는 것 같았다. 오로지 죽음만이 해답인 것처럼, 나는 죽기로 했다.     


“그래, 죽자…”     


그때, 방안 어딘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잉~ 이잉~ 끄륵 헛!”     


소리가 나는 곳으로 얼굴을 돌렸을 때, 그곳에는 7개월 정도 되는 아기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났는지 몸을 움직이며 이쪽으로 기어 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작은 몸짓에도 재빨리 자신을 바라봐 주던 누군가를 향해 짧디, 짧은 기다림을 다하고는 이윽고 울어대기 시작했다.      


“응애~~! 응애~~! 응애~~!!”     


그러자, 머리가 그 존재를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쿵' 하는 심장 소리와 함께 나의 몸이 벌떡 일어났다. 온몸에서 삐질 배어 나오는 땀을 그대로 둔 채 가스 불을 켜고, 빛의 속도로 분유를 계량하여 우유병에 담고, 먹기 좋게 온도를 맞춘 다음, 두 팔 벌려 안아달라고 아우성치는 아기를 안고 우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상황이 인식됐다.  정확히 1년 2개월 만에 내가 떠나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고, 이름 그대로 돌아온 싱글, 싱글 맘이 되어 있었다.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언젠가 교통사고를 경험했던 사람이 사고의 찰 라를 떠올리며 “그때, 정말 죽는 줄 알았어. 사고의 순간에 시간이 잠시 멈췄는데 그 순간, 살아왔던 삶이 다 보이더라.”라고 회상하던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이를 품에 안고 우유를 먹이는 그 짧은 순간, 1년 2개월 동안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눈 뜨고 보기 힘든 나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누군가 눈앞에 대형스크린을 켜놓고 엄청난 속도로 필름을 되감고 있는 것만 같았다.





결론은 죽을 수 없다는 사실 이었다. 나에게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다른 가족이, 나와 심장을 나눠 가진 작은 존재가, 내 품에서 맑은 눈으로 웃고 있었다. 머릿속 어두운 그림자가‘절망’이라고 속삭였다. 순간, 한 줄기 빛이 번쩍하고 반짝이는 것을 보고 말았다. 그것이 내가 살아야 할 단 하나의 이유가 되어 있었다. 나는 너무도 당연하지만, 너무도 어색한 그 이름 ‘엄마’였다.                         





이미지출처 :  미리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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