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진 Nov 04. 2021

2. 맑은 하늘 아래에서 소나기를 맞는 사람도 있다.


맑은 하늘에서 소나기를 맞았다고 해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 먹구름이 가득 한 날 손에 든 우산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맑은 하늘 아래서 소나기를 맞는 것도 자연스럽다. 인생에서 만나는 삶의 모습들이 때론 혼란에 빠뜨릴지라도 맑은 날에도 우산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 자연은 때론 맑은 하늘 아래 소나기를 내려준다. 삶 속에서 우리는, 맑은 날 퍼붓던 소나기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누구나 평범하게 살고 있을 때는 이혼녀가 된다거나, 배우자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운다거나, 셀 수도 없이 이직을 경험한다거나, 불치병 걸린다거나 하는 일들이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혼녀가 되었고, 아이 아빠는 아이의 양육과 모든 권리를 포기했다. 여전히 가난하고 꼬질꼬질한 친정에 다시 들어가,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고 느끼는 엄마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받으며 살아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출산 휴가 중 다니던 직장도 부도가 났다. 그냥저냥 평범하다고 느꼈던 삶은 방향을 잃은 채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아이 아빠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 혼전임신,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아이가 생겨 아무 준비가 없었던 나는, 그 나이 먹도록 결혼식을 올릴 비용도 한 푼도 모으지 못했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그렇다고 나 자신을 대단히 아끼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날그날의 즐거움 따위, 배고픔 따위, 외로움 따위의 허기를 채우느라 월급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소비하며 살았다. 교회에 다니는 것을 핑계로‘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이 족하니’라는 성경 구절로 개똥철학이나 늘어놓는 한심한 궤변론자였다.    


  

그래서 가끔 결혼이라는 것도, 아니 이혼이라는 말조차 내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결혼의 사전적인 의미는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관계를 맺음인데, 그런 의미에서 결혼한 것은 맞지만,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가 ‘이혼’이라는 단어를 쓸 때마다 열등감을 자극하는 것을 보면 결혼식이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좀 더 그럴싸한 이혼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런 내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것은 어리석음이 낳은 결과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얼마나 고된 노동인지… 추우면 춥다고 지랄하고, 더우면 덥다고 지랄하는 내가, 조금 참고 희생하며 간단히 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를 낳아서 키워보기 전까지, 하나의 존재가, 그 생명이 담고 있는 가치가, 어떤 의미인지 감히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그때 알았더라면, 혼전임신을 하지 않았을까…     



 생명을 잉태하고 신기하게도 배 속의 아기는 태교 교과서가 알려주는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장하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16시간의 진통 끝에 제왕절개로 아이를 출산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 환희와 기쁨보다 낯설고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처음 만났다. 그때까지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은 뱃속에서 내 몸과 하나로 연결되어 태동했던 존재의 육체적인 부재로써 인식되었을 뿐이었다. 반가움, 환희, 경이로움. 등등 아이가 태어날 때 엄마로서 가져야 할 것 같은 마음들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은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미지출처 : 미리캔버스





작가의 이전글 1.너무도 당연하지만 너무도 어색한 그 이름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