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과 웨딩드레스의 상관관계 그 거대한 서사
오랜만에 반가운 결혼식이 있었다. 예식장보다 장례식장에 가는 일이 많은 중년이다 보니, '잔치'라는 이름이 좋아진다. 젊다는 것 만으로 아름답다는 걸 느끼는 요즘, 젊은 남녀의 웅성거림 마저 활기로 느껴졌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천천히 등장했다. 드레스를 입기 위해 8킬로를 감량했다는 신부는 오늘따라 눈이 부실만큼 예뻤다. 가슴선이 우아하게 드러난 그녀의 드레스를 보면서, 잠시 상념에 잠겼다. 하얗고 아름다운 그녀의 뒤태가 마음을 흔들며, 나는 어느새 그녀의 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즉각적이고도 익숙하게 내 안의 특정한 감정을 헤집어 놓았다.
가끔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이 어떨지를 생각했다. 어쩌면 내 삶에서 한번도 입어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웨딩드레스, '어쩌면'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지나가는 말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직은 희망이 있을 수도 있죠' 라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마흔아홉, 중학생 딸아이를 둔 중년여성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까?
적어도 사촌 동생의 결혼식을 보며, 신부의 드레스를 상상 속에서 걸쳐 보는 일이라면?당사자가 웨딩드레스를 입어 본 적 없는 싱글맘이라면, 누군가에게는 들키고 싶지는 않은 일이다.
중학교 때 '건선'이라는 자가 면역질환이 생겼다. 사춘기에 찾아온 난치성 피부병은 두려울 만큼 내 몸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사라지기는커녕, 여전히 피부의 일부분이 제 지분인양 점령하고 있다.
당시는 병원에서도 스테로이드 부작용에 대한 경각심이 없었다. 병원 치료를 거듭할수록 부작용만 더 심해졌고, 몸무게가 10 킬로그램이 늘었다.
급격하게 부은 몸과 독한 연고로 인해 작은 소녀의 피부는 가뭄이 찾아온 논바닥처럼 쫙 쫙 갈라져 버렸다. 그때의 소녀는 한여름에도 춘추복(봄과 가을에 입는 교복)을 입고, 긴치마에 반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수업시간,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볼펜을 스타킹 속에 슬쩍 집어넣어 종아리를 긁적이던 모습이 떠오른다. 교실에 앉아서 칠판을 보고 있었었지만, 소녀가 수업을 듣고 있는지, 아닌지를 스스로도 잘 몰랐다.
방학 때 집으로 날아온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소녀를 좋아했던 남학생의 편지였다. 이름을 밝히고 보낸 편지가 아니었다.
"바람이 부는 어느 날, 한 아이가 펜을 든다."
아직도 그 필체가 또렷이 기억이 난다. 바람이 부는 날 써서 그런지, 소년의 글씨에도 바람이 다녀간 듯 글자의 획은 일제히 위로 솟구쳐 있었다. 바람도 필체를 속일 수 없었고, 소녀는 필체를 보고 누군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소녀를 좋아한다는 수줍은 고백과 함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계속 편지를 보내올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소녀도 소년을 좋아하고 있었으므로 소녀는 날아갈 것 같았다.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다.
하필 그 겨울 방학, 소녀의 오른쪽 허벅지에 좁쌀만 한 트러블이 생기지만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며칠이 지나자 트러블은 점점 커지면서 다리와 팔로 이윽고 몸전체로 번지기 시작했다. 소녀는 자신이 괴물처럼 변했다고 생각했다. 기다리던 개학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소년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 변해버린 모습에 실망하지 않을까? 소녀는 거울에 비친 자기가 싫어서 매일매일 눈물을 흘렸다. 면도칼로 환부를 도려내면 새살이 나올까 상상했다.
"그 아이가 진심으로 날 좋아한다면, 이해해 줄지도 몰라."
소녀는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 믿고 싶었다. 막연한 희망일까? 개학이 되어 교복을 입은 소녀는 깜짝 놀랐다. 교복 스커트가 작아져 훅을 겨우 잠갔다. 방학 전까지만 해도 허리가 커서 두 번이나 접어서 입었던 교복이었다.
교문에 들어섰을 때, 친구들의 시선이 달라진 것을 느꼈다. 친구들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얼굴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소녀는 그런 친구들이 피부병보다 불편했지만, 애써 외면해야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좋은 거라고, 내 모습이 생각만큼 달라진 게 아닌 거라고 여겼다.
밝고 수다스럽던 소녀였다. 흥미로운 화재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재주도 있어 인기도 있었다. 외모가 달라진 것 외에 아무 일도 없었으니, 소녀는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행동했다. 가방에 있는 소년의 편지를 생각하니 웃음이 났고, 소년을 의식했다.
쉬는 시간, 화장실을 다녀오던 길, 복도에서 친구들과 장난치며 걸어오는 소년이 보였다. 소년이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볼까? 내가 글씨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났다. 티를 내면 절대 안 되는데, 삐죽삐죽 웃음이 배어 나왔다.
웃음을 참다가 이상한 표정이 되어 버리면 어쩌지? 소녀는 점점 긴장이 됐다.
소년이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다가왔다. 소녀는 평소처럼 미소를 지었다. 소녀를 못 본 것일까?
분명, 멀지 않은 거리라서 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못 본 것 같았다. 소년의 고개가 친구들을 향해 웃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소년이 차갑게 얼굴을 돌렸다. 아이들이 깔깔 거리며 지나갔다. 등 뒤에서 누군가 들렸다.
" 야! 장혜진 봤어? 와! 쟤는 방학때 뭐했길래 완전 돼지가 됐냐? "
등줄기에서 땀이 났다. 온몸이 가려워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편지는 오지 않았다.
20대에 친구들은 결혼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신부를 볼 때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나를 떠올렸다.
어쩐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20대 초반 나는 건선인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다. 중학교 때 발병했으니, 온 세상에 나 혼자만 건선환자인 줄 알았던 시절이었다. 외로운 데다 비참한 기분까지 드는 것은 그 질환만의 특징 때문이다. 피부에 붉은 반점(홍반)이 생기고, 그 위로 은백색의 각질(인설)이 겹겹이 쌓인다. 전염성이 전혀 없지만, 각질로 인해 비듬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였나? 버스를 타려고 서 있는데 아주머니 한분이 오셔서는 '아이고 비듬 봐라'하며 등을 터셨다.
딴에는 딸 같아서 해준 행동이었을 텐데, 쥐구멍이라도 있음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처음 커뮤니티에서 만난 건선 환우들과의 공감대는 끈끈했다. '아이고 비듬 봐라' 아주머니를 만난 건 나뿐이 아니었고, 목욕탕에서 쫓겨나거나, 눈총을 받거나 하는 일들은 흔한 스토리였고, 목욕탕에 가보는 것이 공통된 소원이었다. 결혼을 앞둔 여성환우가 웨딩드레스를 입을 걱정을 하는 모습은 결혼적령기라면 더 큰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할 수 없이 부작용이 있는 걸 알면서도 결혼식을 앞두고 스테로이드를 사용하기도 한다. 결혼자체를 꺼리기도 하는데, 가족력이 있다는 불안이 가장 크다. 가족력이라는 불안을 가지고도 커뮤니티에서는 환우끼리 결혼한 부부도 있었다.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니 더없이 편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연애를 할 때면, 호감에서 사랑에 이르기까지의 기간까지, 언제 '건선'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나, 타이밍을 고민했다. '건선'을 안다고 해도 상대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민감해 수밖에 없다. 내 몸을 내가 보고, 쓰다듬어 보면서 살갗이 얼마나 매끄러운지 살피는 일에(상대가 만졌을 때도 그래야 하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
갑작스러운 스트레스나 몸살, 수술등의 이슈가 생기면, 건선은 순식간에 온몸을 점령하기도 한다. '건선'이 조금만 있을 때, 괜찮다고 말하던 남자가 온몸을 덥은 그녀의 끔찍한 피부병을 보고,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볼 때, 인생의 몇 번 안 되는 경험이지만 큰 상흔을 남긴다.
교복과 웨딩드레스의 상관관계, 그 거대한 서사가 거기에 있었다.
마흔아홉, '건선'과 함께 한 시간은 34년, 웨딩드레스를 입는다면 내 등은 하얗고 눈부실 리 없다는 걸 안다.
건선과 함께 살아온 시간의 흔적은 곳곳에 거뭇거뭇하게 남았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나를 떠올릴 때면, 나는 등에 컨실러를 발랐다. 아무리 두텁게 발라도 조금도 가려지지 않는 컨실러를.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었던 비좁고 처량해 보이던 나의 등,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의 등을
이제는 토닥여 줘야지.
너의 흔적을
네가 걸어온 길을
진심으로 사랑해야지.
그동안, 고생했다. 혜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