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삶, 어느 중년 여자의 주방에 대하여
내 삶은 느리다. 마흔아홉이 되어서야 나의 주방이 생겼으니 느려도 너무 느리다. 이 나이 먹도록 나만의 주방이 생긴 것이 처음이라고 할 수는 없다. '뜨거운 신혼' 보다 더 짧았던 결혼생활에서도 당연히 주방이 있었다. 그때는 그 주방에 관심이 없었다. 관심의 대상이 지극히 협소했던 시절, 늘 그 주방을 외로이 남겨 두었다. 늦은 홀로서기에서 생긴 이 작은 주방은 마치 일본의 작은 마을에 아담한 호텔 같은 느낌이 든다. 오래됐어도, 누군가의 손길이 항상 닿은 듯한 느낌, 아직도 이곳이 여행지에서의 일탈처럼 느껴지는 것은 느린 삶이 주는 유익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주방은 아담하다 못해 비좁았다. 2구짜리 쿡탑과 인덕션크기 두 배 정도의 개수대, 'ㄱ자'로 꺾인 작은 홈바 겸 조리대가 전부다. 양문형 냉장고 자리에, 작은 냉장고가 일정한 여백과 함께 놓여 있었다. 1,000만 원에 80만 원짜리 월세, 이곳이 느린 나의 홀로서기 앞에서 만난 곳이다. 전자레인지가 자리를 자지 해 버리면 오븐도 밥통도 넣을 수가 없어 난감했다.
음식은 어디서 할지, 밥은 어디서 먹을지, 생각하다가 하단에 수납이 가능한 홈바를 구입했다. 디긋자형으로 놓을 홈바였는데,막상 제품이 와 보니 벽에 딱 붙여 놓고 써야 무늬가 예쁜, 뒷면은 너무 평이한 스타일이었다. 반품을 할 수는 없고, 커다란 두 개의 깃털이 멋스러운 페브릭 포스터를 샀는데, 이번엔 웬걸 깃털이 세로형이었다. 하단에 작은 술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붙어 있었다. 느긋했던 감정이 들끓어 한시도 못 기다릴 것 같아 뒷면에 대보았다. 아쉽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기존에 설치되어 있는 쿡탑 1구는 화력이 약해서 친정에서 사용하던 쿡탑 1구 추가로 설치했다. 다가구의 작은 주방이 갑자기 30대의 아파트 주방처럼 변모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ㄱ자'의 홈바에는 화이트 톤의 깔끔한 바체어 두어 식탁이 되었다.
물론 거실도 아담하다. 내 방에서 자라던 몬스테라와 고무나무, 가지를 많이 거느린 스킨답서스도 빛이 잘 드는 남향집에서 더 행복해 보였다. 그간 소장했던 책들과 짙은 초록색 3인용 소파가 전부인 거실에 앉아서 이따금씩 주방을 바라본다. 싱크대 상판 아래, 그릇이 너무 가까이 보이는 것 같아, 짧은 레이스 커튼을 달았다. 화장실에서 나오면, 정면에 주방이 패브릭 깃털로 장식한 홈바가 보인다.
냉장고의 여백과 틈새장이 내내 거슬려 고민하다가 일전에 다이소에서 구입한, 쓰지 않던 커튼을 달았다. 어쩐지 건조한 느낌이 들었다. 조화로 된 담쟁이넝쿨을 샀다. 원래는 식탁 위 조명을 장식하면 좋을 것 같아서 샀는데, 틈새 장 위 커튼에 감고, 레이스 커튼 위에도 감았다. 생각 같아서는 여기저기 담쟁이넝쿨 숲을 만들고 싶었는데, 내가 넝쿨을 들고 설칠 때마다 딸아이가 웃어대는 통에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엄마, 그거 다 감을 거 아니지? "
" 언니, 이케아에서 파는 원숭이 인형이랑, 뱀인형 가져다 놓으면 정글에 온 것 같겠어 "
"엄마, 시인이가 미국으로 유학을 간대. 부럽다. 근데, 나 시인이 유학 가면 너무 슬플 것 같아. "
시인이를 본 적 있다. 딸아이가 교복을 맞추던 날, 엄마와 함께 교복을 맞추던 마르고 하얗고 예쁜 아이를
기억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 이름이 '시인'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교복을 입고 나온 딸아이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이 잔잔하고 따뜻했다. 나처럼 들뜨지 않고도 사랑을 전하기에 충분한, 소곤소곤하게 나누어지던 모녀의 모습이 어딘지 빛났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 같은 반이 되면서 시인이와 친해졌고, 그 아이의 요란하지 않은 세계를 닮아 가고 있었다.
"엄마, 시인이 엄마 '이대' 나오셨대!."
"우와, 완전 엘리트시네, 어쩐지!"
카페에서 시인이의 부모님을 몇 번 뵌 적 있다. 테이블에 앉아 책이나 노트북을 보며 각자의 일에 전념을 하고 있었다. 시인이는 혼자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역시 공부에 열심히 인 모습이었다. 가족들에겐 너무도 익숙한 일상 같았다.
얼핏, 딸아이와 나 사이에도 비슷한 모양새가 있어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 이 글을 쓰고 있는 카페가
시인이의 부모님을 뵀던 그 카페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는 시인이의 소식은 넘사벽 같은 느낌을 들게 했다. 같은 공간에서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이질감, '부럽다'는 딸아이의 말이 마음에 콕 박혀 버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미국 유학 같은 건 보내줄 수 없을 것이다. '미국에 유학을 가려면, 얼마나 들까?' 하는 생각은 꺼내볼 필요도 없었다. 몸이 회복되어 취업을 하면, 허리띠를 조르고 졸라 영어가 자신 없는 하늘이를 위해 어학연수 정도는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문득문득, 딸아이의 삶을 생각했다. 삼성반도체가 가까워서 친구들의 부모님 중 한 분이 삼성에 근무하시는 경우가 많았고, 대부분 아파트에 거주했다. 작은 평형의 아파트는 4-5억대, 나로선 꿈도 못 꾼다. 가끔 친구들과 하교를 할 때, 딸아이의 동선을 따라가듯 생각했다. 아파트 단지 쪽이 아닌, 학교 앞 다가구 주택으로 들어가는 딸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어릴 적 나는 우리 집이 부끄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버섯 농사를 지으려고 지었던 비닐하우스를, 집으로 살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이사를 다니다가 겨우 정착한 곳 '비닐하우스', 여름엔 덥고, 겨울에 방안의 물을 얼려버리는 곳, 농사를 그만두었어도 오랫동안 떠날 수 없었던, 비루하기만 했던 그곳이 떠올랐다. 그런 이유로 하늘이를 걱정하고 있는 것일까?
오랜만에 친구와 연락을 했다. '화성시 정남면'에서 태어나 그 지역의 농협에서 근무해 온 우직한 친구였다.
직장 근처의 시골 마을에서 전원주택에서 '전셋집'에서 아이들을 낳고 터를 잡았다.
" 진짜 너무 바빠서 얼굴 본 지도 오래됐다. 요즘 집을 짓고 있어서 더 바쁘네. "
" 우와! 너무 좋겠다. 축하해"
카톡으로 사진이 날아왔다. 외관이 거의 완성된 전원주택,
아파트보단 주택을 선호하는 나로선 살아보고 싶은 꿈의 집이었다.
" 이제 내부만 하면 끝나. 돈이 없어서 비싼 건 못하고, 겨우 인테리어 하고 있어 "
1000에 80짜리 월세, 주방을 꾸미며 나는 얼마나 들떴던가. 친구가 보내온 사진을 한 장이 내 마음에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 안의 주방이 저절로 눈에 그려졌다. 커다란 창문 밖으로 논과 밭이 보이는, 탁 트인 푸른 들판이 펼쳐질 것이다. 그런 곳은 주방이 어떤 톤이어도 어울릴 것 같다. 수납공간이 가득한 드넓은 주방, 세련된 빌트인 가전제품과 가구들만으로 인테리어가 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샐러드와 마시는 커피는 황홀하기까지 할 것 같았다.
"아, 진짜 ㅠㅠ 부럽다 ㅠㅠ"
그렇다고 해서 내 주방이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 하마터면 정글이 될 뻔한 웃음 가득한 인테리어, 오늘도 그곳에서 음식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한다. 아직 청소기조차 구입하지 않은 것은 걸레를 빨아서 엎드려 바닥을 닦으며, 내 공간이 빛나는 걸 보면, 행복하다.
나는 이곳을 사랑하는구나. 친구의 전원주택이, 친구의 주방이 제아무리 신식이고 빛날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건 내 작은 주방, 내 공간이다.
하늘아, 너도 그렇지? 그런 거지? 딸에게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