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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Nov 09. 2021

<개똥철학> 진실로, 진실을 원하시나요?

 진실, 그 씁쓸함에 대하여

동생은 자주 회사 일을 이야기한다. 흔히 대화의 소재가 되는 것들은 대게는 몸을 담고 시간을 보내는 곳이나, 대상이기 마련이다. 해외 영업팀에서 일을 하는 동생의 부서는 4명으로 이뤄져 있고, 과장 둘, 대리 둘이 각각의 거래처를 맡아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주요 거래처는 세계 전역에 법인을 둔 대기업이며 각 법인에서 들어오는 수주의 견적과 출하를 하는 것인데,

함께 일하는 여자 대리의 잦고도 엄청난 업무 실수와 근무 태만에 관한 것이었다.



연차가 서로 다른 과장 중 한 명이 팀장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따끔하게 그 직원의 태도를 짚고 넘어가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직원은 예고 없이 아프다며 한 달에 한두 번씩 꼬박꼬박 예고도 없이 결근하는 등 근태도 엉망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회사의 창립 임원 중 한 분이 경쟁사로 옮겨갔다가 다시 오게 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그분의 이상한 명성들을 ‘카더라 통신’을 통해서 곳곳에서 들으며 동생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후 소문대로 그 임원은 상무라는 직함으로 회사에 다시 돌아왔고, 그 팀의 수장이 되었다. 함께 일하는 그 여자 대리는 그동안 팀워크가 좋았다며 이제 좋은 시절은 다 갔다고 말했다고 한다.



상무가 동생과 여자 대리의 뒤에 앉게 되자, 그 둘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느낌의 회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다 평소 업무시간에 이어폰을 착용하고 개인적인 일들을 너무 대 놓고 했던 그 대리의 행동이 직접적으로 지적을 받게 되었다. 평소 그녀의 그런 행동은 팀 내에서도 업무 공유를 놓쳐 버리거나, 실수하는 등의 문제로 불거지고 있었지만, 누구도 따끔하게 짚고 넘어가지 못했던 영역이었다.



지적을 받게 되자, 그녀는 몇만 원의 거금을 들여 모니터에 사생활 방지 필름을 붙이는 것으로 상사의 눈을 피했고, 그러기를 두 달 후, 상무가 그녀를 따로 불렀다고 한다. 영업팀의 업무와 맞지 않는 것 같다며 다른 부서로의 발령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런데 영업팀에서 다른 팀으로 갈 수 있는 부서는 없으니 그 말은 그만두라는 사실상 해고와 다름없는 말이라고 다. “상무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라고 동생은 말을 하며, 회사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며 답답한 마음을 내비쳤다.



그녀가 아무리 상사의 눈을 피해 사생활 방지 필름을 붙이는 행동을 하고, 여름휴가를 열흘이나 갔다 왔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사람을 해고하는 것은 누가 봐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무는 회사를 배신했다가 다시 들어온 사람이었으니. 것도 모자라, 상무와 함께 경쟁사로 갔던 OO 차장의 복귀 소식도 더해졌다. 이야기는 결국, 상무가 OO 차장을 영입하기 위해 여자 대리를 해고했다는 결론으로 내려졌고, 동생은 치를 떨었다. 당사자인 그 여자 대리는 노동법, 고용부 등을 연락을 취하며 부당한 대우에 대해 자신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했다며 몹시 분노했다고 한다.



그 이후, 부서의 분위기는 이미 그 대리가 그만둔다는 것이 사실처럼 되기 시작했고, 그 시작은 그녀의 더욱 심해진 그녀의 업무 태만으로 인한 것 같았다. 그 피해는 주변 사람들, 특히 동생이 보고 있다며 하소연을 했다.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운 시기 같았다.



며칠 전, 동생에게 업무시간에 카톡이 왔다.



“헐!! 언니!! 대박!! 알고 보니, 그 여자 대리를 해고한 게 상무가 아니었어!! 팀장이었어~진짜 무섭다! 근데 그 대리는 몰라. 아무도 말하지 말라는 것 같아! ”



“그럼, 그 여자애는 상무가 자기를 해고했고, 여전히 자기는 피해자라고 생각할 거 아냐?”



“상무는 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전달만 한 거래. 갑자기 상무가 다시 보인다. 헐!”



놀랍게도 그녀의 해고는 평소 여러 차례 따뜻한 조언으로 그녀의 태도를 변화시키려 한 팀장이 휘두른 칼날이었다. 그녀는 업무의 실수로 금전적인 손해를 끼치고도 몇 차례나 같은 실수를 반복했으며, 자리에 앉아 온종일 카톡을 하느라, 업무에는 관심도 두지 않아 그녀로 인해 번번이 그 업무는 다른 사람들이 몰빵 하여 업무를 맡게 되기도 하고, 심지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조차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다른 사람이 수습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피해자 코스프레, 상무가 다른 사람을 영입하기 위해서 자신을 해고한 것으로 여전히 오해하고, 그에 대한 억울함으로 출근해서는 대부분의 일을 손에서 놓고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녀는 평소에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밥먹듯이 해 왔으며 결국 그녀는 자신의 소망대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서 과거의 내 모습도 보았고, 현재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기도 했다.






그녀는 진실을 알고 싶을까? 진실을 알게 된다면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그녀에게 진실은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진실은 진실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만 전해지는 법이니까.

그녀는 진실을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회사에 피해를 끼치고, 업무 태만이라는 잘 못을 해서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것을 모르는 게 편할 것이다. 그래야 마음껏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누군가는 그녀에게 사실을 전해 주었으면 한다. 진실은 마냥 친절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진실에 눈을 감으면, 상황에 갇힐 수밖에 없다. 그녀는 그 회사를 그만두고서도 한동안 어딘가에서 억울함을 호소할 것이다. 자신의 잘 못을 알지 못하니, 자신은 변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 다른 곳에서 비슷한 상황이 시작될 것이다. 삶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될 것이다. 어느 순간, 어떤 상황을 통해, 그 속에 갇힌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녀를 보며 숱하게 반복해온 어리석은 과거가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면 어리석음인지도 몰랐던 나를 일깨워준 사람들은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이었다. ‘원수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제발 이것만 아니면 되겠다했던 상황과 사람들’이었다.



삶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동원하여 우리를 가르친다. 그리고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실들은 고통이라는 포장지에 싸여서 삶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 안에 ‘진실’이 담겨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포장지조차 열어보지 않고, 거부하거나 내팽개쳐 버린다. 다행스럽게도(그다지 반갑지는 않지만) 삶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를 가르친다.




나는 어디쯤에 있을까,

나는 고통을 모른척하고 있을까,

나는 지금 무엇을 배워야 할까.

문득, 두려울 만큼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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