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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Nov 09. 2021

10.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받아야 하는 가치가 물질보다 작아지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다른 존재와의 소통이야말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다. 사랑했던 존재의 소멸은 그 존재와 나눴던 나의 일부가 소멸하는 것이기도 했다. 삶에서 만나는 모든 일이 나라는 존재의 성장을 위해 일어난 일들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기간 그곳에 머물러있었다. 그리고 내게 머물다간 그들의 죽음 앞에 이제 한 인간으로서 겸허해진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루루’라는 베스트 프렌드가 생겼다. 시골에서 한 집에서 한 마리씩 키우는 전형적인 똥개였던 루루는 꼬리가 없는 것이 특징이었다. 짧아서 보이지도 않는 꼬리를 바짝 세우고 허리까지 흔들어대는 귀여운 루루가 우리 집에 처음 오던 날, 문밖에서 끙끙거리는 루루를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서 밤잠을 설쳤다.



늦잠꾸러기인 내가 새벽같이 일어나 루루의 존재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루루와 함께 온 산을 뛰어다녔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만큼 즐거웠다. 학교에 가기 싫을 정도였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다다를 무렵, 멀리서 발소리를 듣고 미끄러지듯 언덕을 뛰어 내려오는 루루 덕분에, 집에 오는 것마저 즐거웠다. 엄마에게 혼나서 밖으로 쫓겨나 울고 있을 때도 얼굴에 침 범벅을 해 놓던 루루는 고달팠던 삶에 한 줄기 빛 같은 그런 존재였다.    


 

그런 루루가 사계절을 함께 하고, 두 번의 계절이 바뀌던 그때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여느 때처럼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언덕에서 득달같이 달려오던 루루가 마중을 나오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에 밤이 늦도록 울며 온 동네를 찾아다녔다. 결국, 루루는 찾을 수 없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꺼이꺼이 울면서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도 내내 루루를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종례가 끝나기가 무섭게 루루와 자주 놀던 뒷동산으로 달려갔다.     


 “루루야~ 루루야~ 루루야~!!”      



아무리 불러도 루루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충격적인 사실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루루가 이웃집에 식용으로 팔렸다는 소식이었다. 소중했던 친구가 누군가에게 식용으로 팔린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었다. 단돈 5만 원 때문에 빛과 같은 존재가 영영 사라져야 한다는 사실은 어린 나에게 엄청난 공포와 슬픔으로 다가왔다. 며칠을 아무것도 못 하고 울기만 했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비극이었다. 처음 느껴 보는 슬픔이었다. 거기서 헤어 나오기까지 언니와 동생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내 모습을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는 혀를 끌끌 찼다.


“네 어미가 죽어도 그렇게 울지는 않겠다. 쯧!!”     



 ‘그날, 학교에 가지 않았다면, 과연 루루를 지킬 수 있었을까.’


머릿속에서 루루의 죽음을 반복하고 있었다. 루루가 너무 보고 싶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녀석을 안아 볼 수 있다면…'  








 시간이 흘러 루루가 있던 자리에 새로운 식구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 메리와 캐리였다. 텅 빈 루루의 빈자리가 다른 존재들로 인해서 채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따금씩 녀석들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했다. 절대로 메리와 캐리는 팔지 않겠다고 단단히 약속했지만, 믿음과는 상관없이 올라오는 불안을 막을 수는 없었다.


꼭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당시 시골 마을에서는 집을 지키기 위한 용도와 ‘식용’으로 개를 사육하는 집들이 많았다. 외지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개를 훔치는 도둑들도 많았다. 그들은 쥐약을 묻힌 명태를 일부러 흘려 개들이 먹게 한 다음, 죽거나 힘을 잃었을 때 쥐도 새로 모르게 개를 훔쳐 갔다. 마을에서는 자주 피해를 본 이웃들의 소식이 종종 들려오곤 했다. 그런 잔인한 ‘이별’이 너무 두려웠다.    


  

메리는 루루처럼 누런색 털을 가진 수컷이었고, 캐리는 암컷이었다. 캐리는 어릴 때는 털이 까맣다가 성견이 되어갈수록 회색빛으로 변했다. 늑대를 닮은 모습이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천방지축인 메리와는 달리, 캐리는 주인인 우리 가족에게만 꼬리를 흔들었다. 낯선 사람들에게 등허리를 구부리고 으르렁거리면, 사람들은 정말 늑대라도 만난 듯이 캐리를 두려워했다. 그런 캐리가 너무 든든했다.



우리 집 화장실은 조금 떨어진 곳의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방 안에 있는 요강이 꽉 차서 넘치거나, 대변이 마려우면, 한밤중이나 새벽에도 밖으로 나와야 했다. 곤히 잠든 식구들을 깨울 수 없어 혼자 밖으로 나오면 세상의 어둠이 집어삼킬 듯 느껴졌다.


그런데 아무 때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도 벌떡 일어나 주변을 밝혀주는 캐리와 메리는 어두운 밤에 불빛이었고,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아빠의 웃음소리에 잠에서 깬 새벽, 캐리의 출산 소식이 들려왔다. 5마리의 새끼가 태어났다. 한 마리는 죽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출산 후 매우 예민해서 새끼를 물어 죽일 수도 있으니 캐리가 밖으로 나오면 새끼를 보라고 말씀하셨다.


 얼핏 들여다본 캐리의 작은 집안엔 꼬물대는 작은 녀석들과 주변을 경계하듯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눈빛의 캐리가 보였다. 우리 집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다. 잔칫상은 없었지만 거대한 잔치라도 치르는 느낌이었다.



무뚝뚝한 엄마도 캐리의 출산에 며칠 동안 북엇국을 끓이느라 집안의 냄새는 비리고 고약했지만, 캐리를 위한 것이라서 나쁘지 않았다. 아빠의 말씀대로 나올 때부터 비실비실하던 녀석은 몇 시간을 못 버티고 끝내는 빛을 보지 못했다. 우리는 너무도 아쉬워 뒷산에 묻어주고 작은 십자가를 만들어 주었다.      



 새끼들이 눈을 뜨고 통통하게 성장할수록 카리스마가 번뜩이던 캐리의 모습은 사라졌다. 비쩍 말라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났다. 탐스럽던 털은 뭉텅뭉텅 빠졌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동물들에게도 자신의 일부를 내어 주는 것 같았다. 캐리의 달라진 모습도 마음이 아팠지만, 부모님이 4마리를 다 키울 수 없다고 했다. 일찍이 캐리의 출산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이웃 마을의 아저씨가 2마리의 새끼를 데려가면서, 마음속에서 다시 상실의 두려움이 움트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오라는 이름의 캐리의 새끼가 갑자기 식음을 전폐했다. 촉촉하던 검은 코에 물기가 마른 채, 배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불안한 캐리는 레오의 귀와 항문을 핥아주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갔을 땐, 동생이 가슴에 레오를 안고 울고 있었다. “언니 레오가 죽을 것 같아” 레오는 해 질 무렵 우리의 극진한 보살핌에도 세상을 떠났다. 기생충이 온몸에 퍼져 레오의 배꼽으로 빠져나오는 모습을 우리는 마주해야 했다. 한 생명이 그 빛을 다하는 모습을 잠자코 지켜볼 뿐이었다. 처음 캐리의 새끼를 묻었던 뒷산에 레오를 묻어주고 오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당시 시골은 마을에 잔치가 있는 날이면 뒷산에서 공공연하게 도축이 이루어지곤 했다. 처음 그 도축을 목격하던 날, 눈앞에서 엄청나게 커다랗고 큰 힘을 가진 돼지 한 마리가 무참히 생을 마감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한동안 돼지고기는 입에도 댈 수 없었다. 마을 전체가 떠나갈 듯 울부짖는 돼지의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돼지의 커다란 몸은 여러 부위로 잘려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렇게 돼지의 육체가 눈앞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 버렸다. 구역질 나는 피비린내 마저 희미해질 무렵, 불현듯 파고드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온몸이 경직되는 것 같았다.     


루루의 죽음 앞에 루루가 우리가 함께 보냈던 순간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지, 그 의미를 찾으려고 할 때마다 삶이라는 게 너무 하찮고 보잘것없이 느껴져 서글퍼졌다.     



 메리와 캐리가 우리 집에서 또다시 사라지던 날, 마음 저 밑바닥에서 용솟음쳐 오르는 광기 어린 분노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산속에서 그들을 불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이 잔인하고 어처구니없는 이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해가 저물면, 발등에 등불이 되어 주변을 밝혀 줄 것만 같았던 그들은 이제 더는 찾아오지 못할 먼 곳으로 영영 떠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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