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진 Nov 19. 2021

2-5. 마음의 주인은 너야(자유의지의 법칙,주인의식)

누구나 자기만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성장의 속도도 배움의 속도도 감정을 추구하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 정형화된 사회라는 틀에서 살아가려면,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 당연한 만큼, 행복하기 위해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의문’을 품어 보아야 한다.


작지만, 그곳에 ‘공간’이 주어진다. 그‘공간’ 안에 진정한 ‘자유’가 있다.      



엄마라는 사실이 신기할 때가 있다. 그 조그맣던 아기가 훌쩍 자라 정수리에서 사춘기 호르몬 냄새를 풍기고, 가늘고 긴 팔과 다리를 보면, 신비함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가끔 거울을 보며 “엄마 갑자기 눈동자가 신기해. 코로 냄새 맡는 것도 신기해. 엄마, 밤이 되면 사람들이 집으로 들어가잖아. 그것도 너무 신기해”라고 말할 때, 대답한다. “그렇게 말하는 네가 더 신기하다.”라고. 삶이 신비스럽기 시작할 때부터 삶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음을 알았을 때 많은 것들이 신비로움으로 다가왔다.  


하늘이는 나를 닮아 동물을 좋아하고 감성이 풍부하며 눈물도 많은 아이였다. 백일 무렵부터 다니던 어린이집 생활이 얼핏 보기에는 잘 적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 작은 아이가 감당하기에도 이 세상살이는 매우 낯설고 불편했을 것이다. 엄마의 자궁에서 나와 아이가 처음 겪은 세상살이에서 아이는 잠을 자는 것조차 불편해서 심한 잠투정을 했다. 24시간 아이를 안거나 업고 생활해야 했다. 깊이 자는 것 같다가도 바닥에 눕히면 등에 센서가 달렸는지 바로 울어댔다.


4살이 되면서 단지 내, 작은 어린이집으로부터 더 많이 활동하고 배울 수 있도록 큰 어린이집으로 갈 것을 권유받았다. 더 큰 세상으로 나가게 되었다. 당시 나는 매우 바쁘고 야근도 많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아이가 잘 때 출근을 해서 집에 오면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볼 때가 많았다. 일찍 퇴근하거나, 쉬는 날엔 아이를 데리고 교외로 나가 스킨십도 많이 하면서 좋은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가끔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쓴 적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아이는 상황에 순응하는 편이었다.     


5살이 되면서 담임 선생님이 바뀌었다. 새 학기 상담에서 선생님은 아이가 눈물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라고 하셨다. 선생님의 작은 반응에도 너무 자주 울음을 터트려서 선생님조차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눈물이 많은 것은 알았지만, 나와 함께 있을 때는 그래도 빨리 그치는 편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자주 울음을 터트릴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엄마는 딸을 잘 키우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하늘이에 대한 각별한 마음이 더 해졌다. 주변 사람들은 엄마인 나보다 할머니를 양육자로서 더 인정했다. 하지만, 유독 아이들이 우는 것을 싫어하고 눈물이 빨리 그치기를 바라는 관습이 베인 할머니가 하늘이의 눈물을 너그럽게 봐주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성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펴기보다, 순응하는 편인 하늘이에게 훨씬 더 많은 아이와 생활해야 하는 대형 어린이집 생활 역시, 감정적인 욕구를 억압해야 했을 때가 많았을 것이다.         

때마침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처지가 되어 좀 더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게 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해진 동안 선생님이 말한 대로 툭하면 우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하늘이의 주요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은 ‘눈물’이었다. 엄마의 관점에서 그 ‘눈물’은 차라리 떼를 쓰거나, 화를 내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는 잔뜩 주눅 들어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하늘이의 모습을 볼 때면, 답답하고 괴로웠다.



무언가를 가지고 싶을 때, 무언가가 먹기 싫을 때, 누군가가 자신의 행동을 저지할 때, 큰 목소리로 안 된다고 할 때, 주위 사람으로 거부당한다고 느낄 때, 입기 싫은 옷을 입고 나갈 때도, 하늘이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고 가만히 울며 서 있었다.


 그 모습은 어린 시절의 나와 붕어빵처럼 똑같은 모습이었다.     


하늘이가 그렇게 눈물을 흘릴 때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옆에서 울지 못하게 아이를 다그치고 있었다.


“그런 걸로 우는 거 아니야.”

“무슨 애가 눈물이 그렇게 많아? 툭하면 울어?”

“착한 애는 그렇게 안 울지? 뚝 그쳐, 뚝! ”

“또 우니? 또 울어?”     


예상한 대로 엄마와 양육 문제로 종종 마찰을 빚었다. 엄마로서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엄마가 하늘이를 대하는 모습에서 종종 어린 시절의 내가 올라왔다.  “너는 내가 네 새끼를 잡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다.”라며 몹시 서운해했다. 나 역시 노력해도 잘 안 되는 부분이었다.     


상황도 불안정했다. 6개월 만에 승진하고, 월급도 올랐지만, 사업부가 어려워졌다. 여러 가지 문제로 불편해져 회사를 그만둔 상황이었다. 구직활동을 해야 하는 얼마간이라도 아이의 안정을 위해 자유롭게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나와 함께 있는 것에 익숙해져 가뜩이나 가기 싫은 어린이집을 보내기 힘들어질까 봐 엄마는 무조건 제시간에 어린이집으로 보내길 바라셨다. 엄마의 도움을 받으면서 맘대로 육아 문제를 결정할 순 없었다. 그것 역시 답은 아니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했다. 평소보다 일찍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매일매일 등 뒤에 하늘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숨기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장난감이 들어 있는 달걀 모양 초콜릿 같은 작고 소소한 것들이었다. 선생님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와, 한달음에 달려오는 아이에게 “짠!!!” 하고 꺼낼 때마다 아이는 무척 기뻐했다. 엄마와 함께 하는 등원과 조금 빨라진 하원, 소소한 이벤트만으로 아이는 매우 행복해했다.           



다시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내일의 걱정은 내일로 넘겨버렸다. ‘자야 할 시간’에도 아이가 나가고 싶어 하면, 밖으로 나왔다. 거의 집 앞 공원이었지만, 가끔은 차를 타고 가야만 하는 호수 공원으로 나갔다. 인적이 드문 시각, 낮에 한껏 달궈진 바닥분수로 달려가 아이는 발을 담그며 뛰어 다녔다. 그 모습에서 행복, 그 이상의 자유가 느껴졌다. 나 역시 공원의 야경을 감상하며 힘든 일상 속, 짜릿한 자유를 느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알 수 없는 ‘내일’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Mack Kamp 님의 사진, 출처: Pexels




하늘이의 눈물은 쉬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이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애써 삼키며 서 있었다. 거부당하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들면, 그 감정에 침몰되어 눈물 외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전혀 표현하지 못했다.     


“하늘아, 울고 싶을 땐 그냥 실컷 울어도 돼."


아이가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도 어릴 때는 하늘이처럼 울보였다? 아닌 것 같지?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엄청나게 혼났어. 엄마도 너무 속상했어. 하늘이도 울기 싫은데 계속 눈물이 나오지? 엄마도 알아. 엄마도 그랬어.”     


아이는 무엇이 그리도 서러운지, 울고 또 울었다.     


“엄마는 하늘이가 울보라도 너무 사랑해. 울고 싶을 땐 엄마한테 울고 싶다고 얘기해. 엄마가 언제든

 이렇게 하늘이를 안아 줄게. 그리고 다 울 때까지 기다려 줄게. 엄마는 하늘이가 웃을 때도 예쁘고, 울고 있을 때도 예뻐”     


어떤 날은 한 시간도 넘게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 하늘아, 엄마는 하늘이가 우는 모습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이상하게 어른들은 아이들이 우는 것을 안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울지 않으면 아이가 아닌데 말이야.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

어린이집에서도 울고 싶을 때 엄마가 옆에서 안아 주면 좋은데,  그렇게 못 해줘서 미안해.

대신 엄마가 하늘이랑 함께 있을 땐 언제든 이렇게 마음껏 울게 해 줄게.”


나는 아이가 울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가, 서러움을 눈물과 함께 흘려보내고 가벼워진 아이와 함께 그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감정에 사로잡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거나, 상황을 왜곡하고 있었다. 아이의 마음에는 기본적으로 존재에 대한 거부가 깔려 있었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거부당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 옷은 추워서 안 돼”라는 말속에서 입고 싶은 옷을 입지 못하는 이유가 저절로 자신에 대한 비하로 이어지며 상황을 왜곡하고 있었다. 상황을 왜곡함으로써 원하는 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먹기 싫은 음식이 있을 땐, 이건 못 먹겠어요. 힘들어요. 하고 얘기해도 돼”     


“입고 싶은 옷이 있을 땐, 저는 이게 입고 싶어요.라고 말하면 돼. 할 수 있겠어?”     


“할머니가 안 된다고 하면, 엄마가 할머니한테 미리 꼭 말해 놓을게. 걱정하지 마”     


“하늘아, 할머니가 화를 낸 것은 하늘이가 방금 의자에서 장난을 치다가, 뒤로 넘어져서 다칠까 봐, 할머니도 깜짝 놀라서 그런 거야. 하늘이가 아프면 할머니 마음이 아프니까”     


“언니가 하늘이랑 바로 놀아주지 못한 것은 우리가 언니의 친구보다 늦게 여기에 도착해서 그런 거야. 조금 기다려 보자.”      


마음껏 울고 나면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아졌다. 새로운 힘을 회복했다.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하늘이의 눈에 눈물이 마르기 시작할 무렵, 하늘이가 “엄마, 나 울고 싶어”라고 말하며 내 손을 잡아끌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이의 눈에는 눈물을 머금고 있지 않았다.


“하늘아, 울고 나면 시원해지니까 계속 울고 싶지?”


아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아, 우는 것도 좋지만, 울지 않고도 마음이 좋아질 수도 있어.

하늘이가 울기 싫은데 계속 눈물이 나올 때,

그럴 때 하늘이가 울지 않기를 선택할 수가 있어. 

울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가만히 마음을 지켜봐.

엄마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땐 엄마가 하늘이를 위로해 주지만,

 어린이집에서는 해줄 수가 없잖아. 그렇지?

그럴 땐 하늘이가 하늘이의 마음을 지켜보면 돼.

울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눈을 더 크게 뜨고 하늘이의 마음에 집중해봐.

그리고 울지 안 울지, 참았다가 엄마를 안고 울지를 결정하면 돼.

하늘이가 ‘하늘이 마음의 주인’이야.”   

  

처음엔 잘 안된다고 했던 아이는 스스로 무슨 말인지를 터득해 냈다. 그리고 내가 없을 때 힘들었던 감정들이 있으면 잠깐 삼켜두었다가, 내가 돌아오면 “엄마 나 울고 싶어”라며 손을 잡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마음에 남았던 상황을 이야기하며 실컷 울고는, 다시 방긋 웃었다. 울고 난 후엔 스스로 그 상황을 이해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 선생님이 처음에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고 했던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엄마, 그 친구가 나를 못 본 것 같아”      


오래 지나지 않아 하늘이는 눈에 띄게 밝아졌다. 마르지 않던 샘처럼 고이고 또 고이던 눈물샘도 안정을 찾아갔다. 어린이집에서도 하늘이가 아주 밝아졌다고 했다. 비슷한 상황에도 울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도 하고,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칭찬해주셨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늘이는 단단하게 자라났다. 워낙 섬세하고, 두려움이 많은 아이였다.


“엄마, 나는 어떤 고민이 있어도, 엄마랑 같이 울고 얘기하고 나면 다 괜찮아져. 하나도 겁나지 않아”라고 말하며 세상의 신비를 즐기기 시작했다.     


나 역시 하늘이처럼 마음에 마르지 않는 눈물샘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유난히 눈물이 많은 나, 어릴 때부터 유독 눈물이 많았다. 눈물이 많은 내가 싫었다. 울 때마다 보기 싫다고 혼나서 울지 않으려고 했다. 그럴수록 어두워져 갔다.


그렇게 자란 나는 정작 울지 말아야 할 순간에 분통과 함께 울분을 터트렸고,  정작 울어야 할 순간엔 울지 못하는 감정의 결여 상태가 되었다.      




'하늘아, 엄마도 아직 울 일이 너무 많아. 다시 직장을 구해야 하거든. 이번에도 최선을 다했는데

  엄마가 회사에서 그만 실수를 했어. 엄마도 하늘이처럼 마음껏 울고 다시 일어날게.'          





이미지 출처 : Brett Sayles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엮인 글

https://brunch.co.kr/@hyehye314/27


작가의 이전글 2-4. 어느 싱글맘의 이상한 육아법(동시성의 법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