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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Nov 22. 2021

2-6. 어느 싱글맘의 인생의 기준(사랑의 법칙)

 사랑은 두려움을 이긴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한다. 삶이라는 것은 크고 작은 선택의 연속이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가만히 마음을 지켜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우리가 갈등하는 선택들에는 사랑과 두려움이 동시에 내재되어 있다.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두려움인가? 사랑인가?”     




2년 차 암 검진, 말로만 듣던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던 암이라는 병이 나에게 찾아 왔다. 싱글 맘 11년 차,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가족들을 비롯한 친구들 지인들도 처음엔 한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하고 자꾸만 옮겨 다니는 나를 한심해하다가, 나중에는 동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학창시절을 함께 해 온 친구들은 끈기라고는 없는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한심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졸지에 싱글 맘이 되어 달라진 것 같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 모습에 ‘내가 없을 땐’ 무슨 말이 오갔을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나서 다른 삶을 살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남편과 함께 살았던 1년 2개월이라는 시간은 부모님의 긴 결혼 생활의 축소판이었다. 나는 온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닫고, 철저히 이기적인 엄마를 그대로 닮아있었다. 욱하고 터트려버리는 아버지의 분노는 나를 삼켜버렸다.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에 나 자신이 두려웠다. 내 아이를 나처럼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늘이, 하늘이는 이름처럼 정말 하늘이 되어 주었다. 삶이라는 게 뭔지 모르고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를 위해 하늘이 보내주신 선물 같았다. 정말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절로 잘 살고 싶게 만들었다. 부모님을 통해 삶을 배운 것처럼, 나를 보며 삶을 배워갈 하늘이를 위해,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삶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갑자기 그렇게 결심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아니, 그전보다 더 힘들고 아픈 일이 많이 생겼다. 세상은 마치 나를 시험하듯, 행복하게 살기로 다짐했던 사실들을 알고, 불행으로 끌어 내리려고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어딜 가든 열심히 일했다. 일머리가 있어서 가르쳐 주지 않아도 찾아서 더 많은 것을 해내곤 했다. 그런데 나를 인정해 주고 잘되기를 바랐던 회사들은 부도가 나거나, 예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대부분의 회사는 입사하는 시점에서부터 학력과 주부 사원으로 평가되었다. 입사 시점 약속하기로 한 것들을 번번이 어기곤 했다. 오래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는 직장이라 판단했더니, 온종일 사무실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HACCP 문서를 가짜로 작성하게 했다.    

  

사람들은 놀면서 꼬박꼬박 월급을 주는데 왜 그걸 못하는지 이해 못 했다. 열심히 일하고 인정받고 싶었다. 열심히 한 만큼 대우받고, 학력이 아니라 나 자체로 인정받고 싶었지만, 수많은 회사 중에서 그런 곳을 만나기 어려웠다.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났다. 어떤 날은 정말 너무 힘들어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엉엉 울었다. 차를 몰고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나가, 차 안에서 실컷 소리를 질렀다. 더는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그럴 때마다 하늘이를 보며, 하늘이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하늘이가 없었으면 분명 하늘을 원망했겠지만, 하늘이가 있어서 하늘을 뜻을 헤아려야만 했다.      



rovenimages.com 님의 사진, 출처: Pexels





함께 일했던 팀장님의 소개로 마흔이 넘은 나이, 반도체 회사의 신입사원으로 입사를 했다. 

회사에서는 3개월을 지켜보고 처우를 판단해 주겠다고 했고, 스무살도 더 어린 친구들이 '사원님'하고 나를 불렀다.  


 반도체의 문외한이었던 내가 입사한 팀은 자재 팀이었다. 업무를 시작하면서 자재 창고와 자재 리스트가 전혀 맞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한겨울 내내 자재 창고에 틀어박혀 전자제품 내부에서나 본 적 있는 각양각색의 부품들의 수량 및 위치를 파악하고, 자재 리스트를 만들었다. 

자재를 전혀 모른 채로 담당자로서 어떤 업무도 할 수 없었다. BOM과 연동하니 손쉽게 자재를 찾아 출고할 수 있었다.      


다시 영업팀으로 발령이 났다. 그 부서 역시 기본 데이터도 안 되어 있었다. 자료를 끌어모아 매출 데이터를 바로잡았다. 알고 있는 지식을 모두 동원해 일별, 주별, 월별 자동정산 보고서를 구축했다. 회사에서도 인정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만두겠다고 하자, 구매팀의 업무를 제안했다. 구매팀 팀장 석에서 업무를 시작했지만, 정식으로 발령은 나지 않았다.


통장엔 협의가 되지 않은 월급 20만 원이 올라 입금되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사원인 내가 구축해 놓은 자료들은 ‘직급을 달고’ 늦게 입사한 12살이나 어린 '주임님'에게 인수인계해줘야 했다. 허무하고,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막상 나가면 또다시 이직해야 했다. 취업도 쉽지 않았다. 다시 시작할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사람들은 그 정도면 여러 가지 면에서 괜찮은 회사라고, 너는 싱글 맘이니 그냥 다니라고 했다.      






하지만 나의 기준은 그것이 될 수 없었다. 나의 기준은 하늘이었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잘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존재, 그 존재를 향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야 했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에서 벗어나 ‘오직 나라는 존재를 위한 선택’으로 추려졌다. 하늘이를 존중해주지 않는 곳에 둘 수 없듯이, 나를 존중해 주지 않는 곳에 둘 수 없었다. 나는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행복해지고 싶었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하늘이도 행복할 수 없었다.  

   

“엄마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겠어?”라고 하늘이가 묻는다면,

 "하늘아, 하늘이의 마음에 손을 얹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되면

그건 하늘이의 잘못이 아닌 거야.

그리고, 그 길은 너의 길이 아닌 거야.

다시 도전하면 돼. 언젠가는 너를 인정해주는 곳이 나타날 거야.

많이 힘들었지? 그동안 고생했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렇게 지치고 상처받은 자신을 위로 하며, 그곳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곧바로 괜찮은 연봉과 좋은 조건, 수많은 경험을 높이 평가해 주는 좋은 회사를 만났다. 그런데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번 아웃[ Burnout syndrome ]이었다.


한동안 지인의 회사에서 현미경으로 부품을 조립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섰을 땐, 암이 찾아 왔다.      



‘감기도 잘 안걸 리는 내가 암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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