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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Nov 23. 2021

2-7.죽음을 경험한지 몇시간도 못 되어(감사의 법칙)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에는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섭리가 담겨 있다. 전체가 움직이고 있는 이 광활한 우주에, 나라는 작은 별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진짜 기적이다.




몇 년 동안, 감기 한번 걸리지 않던 내가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뿐 아니라 가족들, 친구들, 지인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다. 졸지에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도 모자라, 온갖 고생을 다 하다 불치병에 걸린 팔자 사나운 여자가 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이런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나 싶었다. 쏟아지는 관심이 기분 좋았다. ‘아! 이런 마음 때문에 사람들이 병을 놓지 못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번쩍 들었다. 찾아온 병을 인정하되, 그 자체로 여기려고 노력했다.


나는 병원을 유독 싫어한다. 중학교 2학년 때 허벅지에 붉은 반점 하나가 온몸으로 퍼져 ‘건선’이라는 난치성 피부질환을 진단받았다. 수년 동안 병원에서 약을 먹고 연고를 쓰다가 결국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온몸이 붓고 살이 터지고, 오랜 기간 이름 모를 염증에 시달렸다. 그 이후, 약보다는 자연치유력을 선호하게 되었다. 감기 역시 며칠 잘 먹고 비타민을 평소보다 많이 섭취하면 컨디션이 금방 회복됐다. 어느 순간 정말 아프지 않은 이상은 병원은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 의료보험 공단에서 진행하는 건강검진을 통해, 왼쪽 가슴에 암세포가 자리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부의 의료복지가 아니었다면, 암세포가 점점 커져 가슴을 얼마만큼 차지했을 때, 병원을 방문했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암의 발견은 천운이었다.      


검진을 받은 병원으로부터 큰 병원 방문을 권유받고, 소견서를 가지고 대학병원으로 갔다.     


“이 정도면 가슴에 만져지는 것을 알 법도 한데 정말 몰랐어요?”라고 물어보셨다.


“사실, 두 달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라고 실토를 했다. 선생님은 “이런 게 있었으면 빨리 병원에 왔어야죠? 암일 확률 99%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셨다. 조직검사를 하고, MRI를 비롯한 많은 검사를 마쳤다. 결과까지 약 2주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제야 ‘암’이라는 병의 무시무시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암’ 자체 보다, ‘암’에 대한 생각과 두려움이 가진 에너지의 크기가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죽고 싶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때도 있었다. 이제 겨우 삶의 즐거움을 깨닫기 시작했다. 게다가 한 아이의 엄마로서 그 아이의 인생을 책임져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죽음에게 ‘지금은 아니야’라고 말해야 했다. 하필 주변에서 암으로 죽음을 맞이한 분들을 적잖이 볼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을 병마와 싸우다 괜찮다 졌다는 소식도 잠시, 결국은 암보다 치료로 인한 합병증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만약에 암에 걸리면, 항암치료는 절대 받지 않을 거야.’라고.


많은 사람이 항암으로 인한 부작용을 말했다. 누군가는 그것으로 그 병을 이겨 냈지만, 누군가는 그것으로 인해 서서히 죽어갔다고 했다. 주변에는 후자가 더 많았다. 막상 그 상황이 되고 나니, 선택의 권한이 없어 보였다. 모두 결과가 나와 봐야 정확하다고, 암이 아닐 수도 있다며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음은 불확실한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차라리, 빨리 받아들이는 편이 모든 면에서 나았다. 결과를 기다리며 치료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항암치료로 인한 머리카락을 포함한 온몸의 체모가 빠질 것을 대비했다. 눈썹 문신을 했다. 머리카락도 그렇지만, 얼굴에 눈썹이 모조리 빠진 느낌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암 진단 이전 급격히 체중이 5㎏이나 빠졌다.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체력관리도 시작했다. 병마와 싸우려면 영양 보충이 우선이었다. 같은 경험을 한 친구가 이곳저곳으로 데려가 맛있는 음식도 사주었다.





그 2주간의 시간 동안, 모든 것을 받아들인 듯 아무렇지도 않은척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보면 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갑자기 증상이 악화하곤 하던데, 그것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어느 밤 극심한 가슴 통증으로 위장에 있는 것들을 여러 차례 게워냈다.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내가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몸까지 아프니 강렬하게 죽음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왔다. 살아온 삶이 떠올랐다. 삶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온 대가가 겨우 이 정도라니, 곁에서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니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얼마나 울었을까… 한참을 울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자연의 섭리 앞에 결국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것도 하늘의 뜻이라면 받아들이자.’


다음날, 운전을 하면서 바라본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자연을 좋아하고 하늘을 좋아하고, 하늘과 자연이 맞닿은 풍경을 좋아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하늘이 더 푸르고 빛이 났다. 차가 신호에 걸려 자주 다니던 다리 밑에 정차했다. 라디오에서 이현우의 음악 앨범이 나오고 있었다. 이현우의 멘트가 끝나고, 낯익은 팝송 한 곡이 유유히 흘러나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문득, 시선이 닿은 곳에 오래전에 묶어 놓아 끈도 다 낡아버린 빛바랜 족자가 하나 보였다. 족자는 불어오는 바람에 떨어질 듯 말 듯 자유로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런데 맙소사!! 세상의 빛깔이 달라져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고요한 세상 속에서 족자는 그대로 펄럭이며 자기만의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그 신비스러운 빛이 사라질까 봐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상은 언제나 이렇게 아름다웠다는 듯, 고유한 빛깔로 빛나고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이곳에서 살고 싶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pexels.com/ko-kr/photo/462118/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여전히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사실만으로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만나기로 했던 친구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진아, 방금 세상이 멈췄던 것 같아. 너희 집 가는 길에 다리 밑에 광고 스티커 같은 것이 막 붙어 있잖아. 거기에 무슨 부동산 광고 족자가 막 펄럭이고 있었거든. 그런데 갑자기 막 빛이 나더니, 세상이 조용해지는 거야!! 나 미쳤었나? 왜 그러지??!!”     

며칠 후 검사 결과가 나왔다. 선생님은 웃으시며, 내 마음 다 안다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마음고생 많았죠? 다행히 1기네요. 수술 날짜 잡고, 항암은 잘하면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와우, 1기래!! ”


지인 중 누군가가 말했다.     


“야, 너처럼 암에 걸리고 좋아하는 사람도 없을 거다~!”     







배경 이미지 출처 : cottonbro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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