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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Nov 24. 2021

<삶>내가 정말 세상을 떠난다면

죽음 명상,  작지만 찬란한 영혼의 기억


“이곳은 병원입니다. 나는 지금 하얀 침대에 누워있습니다. 오늘은 내가 죽는 날입니다. 그 사실을 나뿐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옆을 보니 내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습니다. 모두 내가 죽는 것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나는 죽습니다. 내가 없어도 태양은 지고, 또 뜨겠지만 나는 이곳에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가야 합니다. 지금 나의 마음을 느껴봅니다. 그리고, 지금 침대 옆에서 나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가족들의 마음을 느껴봅니다.”


명상 홀은 눈물바다가 되어, 통곡의 강이 되었다. 그때 종소리가 울린다. 하나, 둘, 셋, 하면! 나는 영혼으로 변한다.



“하나 둘 셋! 하면 나는 몸에서 빠져나옵니다. 침대에는 내가 누워있습니다. 나는 영혼이 되어 나의 육체를 보고 있습니다. 내 가족들은 나의 죽음을 확인하고, 애통해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떤 모습인가요? 삶을 뒤돌아봅니다. 사느라, 살아내느라 나는 바쁘고 힘들었습니다. 나는 너무 애통합니다. ”



지리산 명상센터, 프로그램에는 ‘죽음 명상’이 있었다. 눈을 감고 마스터의 멘트를 따라 상상하며, 마음으로 죽음을 체험하는 것이다. 처음 그곳에서 죽음 명상을 했을 땐, 나의 마음이 멘트를 조금도 따라가지 못했다. 나의 소멸과 상실, 가족들의 슬픔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멘트를 따라, 마치 진짜 죽음을 대면이라도 한 것처럼 여기저기에서 비명도 들리고 통곡했지만, 아무리 쥐어짜도 눈물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한 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삶 또한 생각해 보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산다는 것은 ‘삶과 죽음’이라는 떼어놓을 수 없는 진실 앞에서 더 절실해진다는 것을.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으면서 “그렇지, 영원한 것은 없어.”라고 말하지만, 실은 자신이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그런 탓에 죽음을 마음으로 체험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빌딩에서 떨어져도 살아남았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 같은 것 때문에?



몇 번의 명상을 경험하며, 멘트를 따라가다 에너지의 휩쓸린 것인지 마음의 시선이 가족들에게 머물렀다. 슬픔으로 일그러진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명상 속에서 엄마는 내가 죽었다는 슬픔에 내장이 파열된 고통을 느끼는 듯 배를 움켜쥐고 통곡을 하고 있었다. ‘우리 엄마가 내가 죽는다고 저렇게 운다고.?’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절절한 슬픔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명상 속에서 나의 임종을 지켜보던 가족과 친구들도 모두 통곡을 했지만, 엄마의 슬픔은 죄책감과 비통함 그리움이 뒤섞인 몸부림에 가까웠다. 한 명 한 명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생전 나를 향했던 그들의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생각으로 알 수 없는, 매우 낯선 느낌이었다.


명상 홀에서 흐르는 음악은 ‘이건 사실이 아니야’라는 것을 말해줌과 동시에 마음을 더욱더 깊은 곳으로 인도했다.



상상 속에서 몸을 빠져나가 침대 위에 놓인 ‘가여운 나의 육체’를 보고 있으니 그녀가 살아온 삶이 떠올랐다. 그리고, 엄마의 침대 곁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다니고 있는 귀여운 아기 하늘이의 모습에서 참을 수 없는 슬픔과 애통함이 몰려들어 한참을 오열했다.





Alex Andrews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어쨌든 나는 명상 속에서 생을 마친, 영혼이 되었다. 내 아이가 있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영혼이었다. 명상 홀의 음악은 바뀌고, 나는 음악이 흐르는 곳을 따라 과거로 여행을 시작했다. 태어나 죽기 전까지의 일들, 삶의 이슈를 떠올리면, 영혼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그곳으로 달려가, 시간 여행을 했다. 용서하지 못했던 기억들에는 용서를, 그동안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기억들에는 고맙다, 미안하다고 마음을 전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해”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모든 기억과, 이 지구에서 겪은 모든 일을 그대로 둔 채, 모든 기억에, 사람들에, 사건들에, 폭탄을 설치했다. 내가 살아온 지구 전체에도 폭탄을 설치했다. 영혼은 지구 밖으로 멀리 날아가 스위치를 눌렀다. 엄청난 굉음을 내며 지구에서 경험한 모든 것들이 산산조각을 내며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기억이 모두 사라진 그 자리에서, 질문했다.



“나는 누구인가?”


“ 침묵 ”






이런 명상을 했다고, 사람이 갑자기 변하거나, 삶이 갑자기 소중해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삶을 돌아볼수록 나를 이해하게 되었고, 인생에서 아킬레스건 같았던 엄마와의 관계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행복이 무엇인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명상 속에서 과거로 돌아가 삶의 이슈들을 만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이유는 명상에서조차 앙금이 클 경우, 자기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한이 맺히면 눈도 감지 못하고 죽는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래서 삶에 영향을 미친 사건들이 마음이 남지 않을 만큼 모든 생각과 감정을 다루곤 했는데, 그것은 모두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 즉 용서하는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또한,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들은 후회로 남아 최선을 다해 살지 못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내 마음이라는 거울을 닦으며 살아내는 일인 것 같다. 그저 남들처럼 되기 위해, 성공하기 위한 최선은 나의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


내 삶은 내가 기대한 것만큼 화려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은, “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이런 말을 남길 것이다.


 삶을 통해 깨닫게 된 가장 아름다운 행복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었노라고,

 


 삶에서 가장 큰 행복은 누군가와 진실한 마음을 나누는 것이에요.
나는 예전에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하지 않는 척을 했고,
어렸을 때 죽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었어요.
알고 보니 그것 때문에 삶이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누군가를 사랑할 땐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죽고 싶다는 말을 할 땐,
내가 얼마나 삶을 행복하게 살고 싶은지를,
 어떻게 행복해지는지 몰라서 그렇게 말할 뿐이라는 것을,
자신에게 고백해야 해요.

그렇게 하면,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그 말을 듣고,
세상의 모든 것을 동원해서,
삶의 진실을 알려주기 시작할 거예요.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삶은 결국 흘러가는 것이니까요. ”




Eunice Lui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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