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진 Nov 24. 2021

2-8. 진실과 허풍사이의 거리

진실과 거짓, 있음과 없음 

적당한 거리에서 상황을 보면 공간이 생겨나고 공간은 우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마구잡이로 들어오는 정보의 홍수와, 사회에서 부여한 여러 가지 틀 속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어느 날,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어린이집에서 친구가 하늘이 아빠 없다고 놀렸단다. 애가 얼마나 참고 있었는지, 집에 오면서 그 얘기하면서 울더라고! 아휴… 어떤 엄마가 애 듣는 데서 그런 말을 했으니까 애들이 그 소릴 듣고 했겠지. 애들이 뭘 알겠어? 쯧! 정말 큰일이다.”     


엄마는 하늘이가 마음에 상처 받았을까 봐 마음 아프다고 하소연을 하셨다. 가장 우려하던 일이었는데, 그것이 정말 현실로 일어났다. 어린이집 상담 때마다 항상 선생님께 아이가 그런 부분에서 상처 입지 않도록 배려를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요즈음은 한 반에 한 부모 가정 아이들이 꽤 있다고 하셨다. 반에도 하늘이 외에 다른 아이들이 더 있고, 요즘은 원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해 배우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아이가 행여 아이들이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라도 입지 않을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늘아, 친구가 하늘이 아빠 없다고 놀렸어??”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하늘이 진짜 속상했겠다. 그렇지?”     


아이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내 훌쩍훌쩍 울며 나에게 안겼다.

나는 품에 아이를 꼭 안고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서러운 눈물이 잔잔해졌을 무렵, 아이에게 물었다.     


“근데, 하늘아, 하늘이 아빠 없어???”     


나의 질문에 울고 있던 하늘이가 고개를 들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냐’라는 표정이었다.     


“하늘이 아빠 있는데, 친구가 왜 그랬지? 잘 몰랐나 보다! 그렇지? 하늘아~ 하늘이 아빠 있잖아?”     

아이의 눈을 가만히 마주 보며 동의를 구한다는 의미의 눈빛을 보내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늘아, 이 세상에 아빠가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는데?! 엄마랑 아빠가 있으니까 하늘이가

  이렇게 엄마 딸로 태어난 거야~ 아빠랑 함께 살지 않는다고 아빠가 없는 건 아니잖아? 그렇지?


  엄마랑 떨어져서 사는 아이도 있고, 할머니랑 떨어져서 사는 아이도 있어. 삼촌이랑 떨어져 사는

  아이는 엄청 많아. 하늘이는 삼촌도 같이 살고, 할머니, 할아버지 다 함께 살잖아.


  하늘아,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 그래서 정말 안타깝게도 엄마가 하늘나라에

  계신 친구도 있고, 아빠가 하늘나라에 계신 친구도 있어…”     


품에 안겨, 잠자코 그 말을 듣고 있는 하늘이의 눈동자가 별빛처럼 일렁였다.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강렬하게 각인이 되어, 어느 때고 쓸 든든한 무기로 자리 잡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생이 된 하늘이가 무기를 사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5교시이던 어느 점심시간, 친구들과 교실에서 수다를 떨며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고 한다. 한 친구가 “나 아빠 얼굴 그려야지~ 우리 아빠 곰돌이 닮았으니까 곰돌이처럼 그려야겠다.”라고 말을 하면서, 주제가 일제히 ‘아빠 그리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cottonbro 님의 사진, 출처: Pexels

하늘이도 덩달아 “나도 아빠 그려야지, 우리 아빠는 돼지같이 생겼으니까 돼지처럼 그려야 하나?”

라고 웃으며 말을 했고,

그걸 듣고 있던 한 친구가,

“넌 아빠 얼굴도 모르는데, 그림을 어떻게 그려?”라며 반문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하늘이가 그 친구를 향해 당당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우리 아빠 얼굴을 모르겠어? 같이 안 산다고 아빠 얼굴도 모르지는 않아!”


옆에서 보고 있던 하늘이의 절친이 그렇게 물어보는 친구를 나무라며,


“야! 너 친구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라고 하면서, 상황은 종료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세상을 당당히 살고 있는 하늘이가 대견하기도 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날 밤 나는 마음으로 울었다. 하늘이는 친구들 앞에서 울음을 터트렸을 법도 한데, 울지 않고 참았다가 화장실에서 문을 잠그고 혼자 울었다고 한다. 우리는 각자 다른 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아픈 마음을 달랬지만, 마음은 한 뼘 더 성장했다.     


“하늘아, 그 상황에서 그 말이 어떻게 떠올랐어?”


“엄마가 그렇게 말해줬잖아. 그리고, 나 아빠 얼굴 아는데?”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말을 이었다.     


“엄마, 그런데 친구가 나 놀리려고 그런 거 아니야. 그 친구는 정말 내가 아빠 얼굴 모른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그릴 지를 물어본 거야. 내 마음이 그 당시엔 좀 그랬던 것 같아.”


아이는 상황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고 있었다.     


 “그래도 친구가 다른 애들 앞에서 그렇게 물어봐서 밉지 않아?”     


 “아니, 전혀. 놀리려고 그런 것도 아니잖아.”





이미지 출처 : Anna Shvets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엮인 글 1


https://brunch.co.kr/@hyehye314/27



https://brunch.co.kr/@hyehye314/29


작가의 이전글 <삶>내가 정말 세상을 떠난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