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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Dec 02. 2021

2-11. 기적은 우리가 함께 있는 '지금'이다.

                                         

기적은 내가 있고, 당신이 있고, 우리가 있는 지금이다. 그 사실을 일상에서 깨달을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행복해질지, 풍요로워질지, 기쁨으로 차오를지, 감사하게 될지, 사랑이 넘쳐날지,     




며칠째, 아버지께서 복통을 호소하셨다. 약국에서 약을 사드시다 차도가 없으셨는지, 병원을 다녀오셨다며 약을 드시고 누워계셨다. 워낙 병원을 싫어하시는 아버지께서 제 발로 병원을 찾아가신 것을 보면, 탈이 나셔도 단단히 나신 것 같았다. 그래도 병원에 다녀오셨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퇴근했을 때도 아버지는 회복이 덜 되어 출근도 못 하셨다고 하셨다.


 “내일이면 괜찮겠지”라고 말씀하셨지만, 간헐적으로 느껴지는 복부의 통증으로 앉았다, 일어섰다 반복하고 계셨다. “아빠 응급실이라도 가실래요?”라고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괜찮아. 답답해서 그래”라고 하셨다.      

사실 아버지께 응급실에 가실래요?라고 묻기 전부터,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실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직전 회사에서 번 아웃이 온 이후, 마음을 추스르고 나니 취업이 안 되어, 서울에 있는 모 외제 차 고객센터까지 진출했다. 수원에서 서울까지 버스와 지하철, 도보를 총동원해서 출근해야 했다. 아버지를 모시고 응급실에 다녀오면 다음 날 몹시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갈아입고, 세수하려고 욕실로 들어갔다.


소변을 보고 일어서서 바지를 올리는데, 머릿속에 환영 같은 것이 번뜩 떠올랐다. 아버지께서 누워계신 모습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얼굴이 검 푸른빛이었다. 그 모습을 일부러 떠올린 것이 아니라, 누군가, “지금 당장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고 가지 않으면, 이런 모습이 될 거야!”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아빠. 얼른 옷 입으셔. 병원에 가자. 엄마도 준비해.”라고 말하고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그래, 당신 얼른 옷 입어. 네 아빠, 내가 아까도 그렇게 가자고 하는데, 고집을 엄청나게 부린다. 종일 저러고 아프다고 하면서” 엄마도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거들었다. 정작 아버지는 괜찮다며 고집을 부리시다가, 간헐적으로 오는 복부 통증이 순간적으로 심해졌는지, 가슴을 움켜쥐셨다. 그리고 통증이 가라앉자마자 몸을 일으키셨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도 아버지는 “숨이 답답해서 그렇지, 다른 데는 다 괜찮아. 병원에 안 가도 되는데…”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아빠, 숨이 답답한 게 젤 무서운 거지, 그러다 숨 끊어지면 어떻게 되는데!”

답답한 마음에 언성을 높이자, 뒷자리에 동승한 하늘이가 할아버지를 위로했다.

“맞아요. 할아버지. 병원에 다 왔으니까 괜찮아지실 거예요.”     


접수하는 동안,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 조금 후 얼굴이 하얗게 질린 엄마가 밖으로 나왔다. “아빠 큰 병원으로 옮긴다. 10분, 15분만 늦었어도 너희 아빠 저세상으로 갔단다.”라며 울먹이셨다. 듣고 있던 하늘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아버지는 구급차로 가까운 가톨릭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셨다. 급성 심근 경색이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병원에 도착해, 바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한 의사는 “아버님, 아버님은 정말 하늘이 도우신 거예요. 제가 원래 수원에 없는 날이었어요. 지방에 갔다가 일정이 취소되어 바로 올라왔는데, 때마침 연락이 온 거예요.”라고 했다고 한다.      


만약 그때 병원으로 아버지를 모시지 않았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가족들은 모두 슬픔에 빠졌을 것이고, 나는 평생 아버지께 못나고 아픈 손가락으로 사는 불효만 보이다가, 출근길을 걱정하느라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지 않은 것을 평생 후회하며 괴로워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기적이었다. 우리 집 근처 5분 거리에 대학병원이 있었다. 그런데 그곳으로 가지 않고, 집에서 두 배 거리인 중형병원으로 갔다는 것도 그랬다. 응급실 의사의 얘기로는 대학 병원의 응급실로 먼저 가셨으면, 대기 중에 진료도 못 보고 돌아가셨을 가능성이 컸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기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깨닫는다. 소중한 사람과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짜 기적이라는 것을     




“아빠, 기적처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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