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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Dec 01. 2021

<삶>11살 딸아이의 자서전

아이가 학교에서 자서전을 썼다고 했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여자아이의 자서전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있을까,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며칠 후 아이는 자서전에 있는 내용을 친구와 함께 돌아가며 발표를 했다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 두 가지를 극복한 것을  는 거였거든.  선생님이 다 하고 나서 나를 따로 부르셨어."


따로 부르셨다는 것은 자서전의 내용이 특별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왜, 부르셨는데?"


"선생님께서 하늘이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라고 말씀하셨어."라고 말하는 하늘이의 눈빛과 말투엔

확신 같은 것이 서려있었다.


"뭐라고 썼길래?"


"한 가지는 아빠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그리움을 이겨낸 거랑,

또 한 가지는 엄마가 암에 걸렸을 때, 엄마가 잘못될까 봐 두려운 마음을 극복했던 거"


"아이고, 우리 하늘이 그걸 썼어?"


나 역시 기특하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늘이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에선 '뭘 그렇게 진지하게 써. 그렇게까지 쓸 것 없잖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랬다. 브런치 작가 승인 후, 출판사에 투고 중이었던 원고를 브런치에 올리고 얼마 되지 않아 글이 다음 메인에 걸리면서 조회수가 폭발하는 일이 생겼다. 그동안 출판사에서 오는 소식이라고는 반려 메일이 전부였는데, 그간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내 글에 공감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도 큰 의미가 있었다. 올라가는 조회수만큼이나 위로받는 느낌에 눈시울이 시큰해 잠도 오지 않았다.


그 이후, 며칠이 지나도 꾸준히 내 글이 읽히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 글을 구독해주시는 분들이 생겼고, 댓글로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나의 글엔 나의 어두웠던 과거가 '있는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동안 처절하게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작업을 해왔다. 내면 깊은 곳에서 축축한 상처를 꺼내어 햇볕에 말리는 작업을 했고, 나를 상처에서 벗어나게 했던 그 울림들은 글이 되었다. 그 글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길 바랬다. 그것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였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불특정 다수와 특정 다수들이 글을 본다는 체감이 들자, 전에 없던 마음의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햇볕에 말리려고 꺼내어 놓은 축축한 내장에 때 아닌 서리가 내린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하늘이의 자서전의 내용은 가볍기를 바랐다. 유난히 또래보다 몸과 마음이 성숙하고, 사춘기에 접어든 여자아이라서 더 그렇기를 바랐다.

지극히도 평범한 이슈들이 내 아이의 자서전에 실렸으면 했다.


가령 5살 때 엄마가 옷을 사주고 입지 않는다고 처음으로 차에서 소리를 질러서 놀랐던 사건이거나, 6살 때 말레이시아 이모집에 다녀온 사이, 절친이 다른 어린이집으로 가버린 사건이거나, 여름철에만 생기는 얼굴 아토피 때문에 먹고 싶은 음식을 참아야 했던 사건, 그런 내용들을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하늘이의 11살 인생 안에 들어있는 자서전은 아이의 나이에 비해 가볍지 않았다. 아이는 제법 담담하게 자신의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 두 가지를 써 내려갔고 친구와 그것을 나누어 낭독했다. 첫 번째는 자신의 기억에 단 한 번 마주한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었고, 두 번째는 엄마의 암수술이었다.


이 아이는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갔을까,

이 아이는 친구에게 자신의 자서전을 보여주고,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자신의 모든 것을 들켜버린 것 같은 생각이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며

소스라치게 놀라지는 않았을까.


나는 그랬는데,  

벌거벗은 채로 거리에 서 있는 기분이었는데,

그래서 나 자신에게

멀 그렇게까지 했느냐고,

굳이 스무 살, 그 일까지 꺼낼 필요가 있었느냐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고,

그렇게 해서 네가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느냐고, 묻고, 또 묻고, 또 물어야 했는데,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이렇게 묻고 있는 이유가

그 이유는 아니라고,

되뇌고 또 되뇌며 나를 속이고 있었는데.


그래서 아이에게 너도 그러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하는 짓이 나와 너무도 똑같은 11살짜리 딸아이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글들을 쓰고,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누구보다 하늘이를 알건대, 아이는 선생님이 내주시는 수업에 진심이었다. 자신과 자신의 삶에 진심이기에 선생님이 내주시는 수업과 과제에도 진심 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아이는 자신의 가장 커다란 아픔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방에 꽁꽁 숨겨 두기 시작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 때마다, 누군가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 방에 있는 아픔들이 자주 건드려질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왜 아픈지 알지 못할 것이다.


이는 자신의 아픔을 방안에 숨기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의 주인이 되어있었고,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엄마, 자서전을 쓰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겼어! 나, 심리학자가 될 거야. 심리학자가 돼서,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벌써 열번도 훨씬 넘게 달라졌지만)



그렇게 언제나 그렇듯, 내 삶의 최고의 스승을 통해 답을 얻었다.

상처가 내게서 드러나지 않았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서 그것이 쏟아져 나온 순간,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야말로 길가에 벌거벗은 채 서 있다 할지라도 나를 지탱하는 힘이었고,

결국 이렇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글을 쓴다.





이미지 출처 PhotoMIX Company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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