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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Nov 12. 2021

14.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엄마도 개똥 밟은 적 있어?”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이사야 1장 18절〉 우주에는 크고 작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 엄마도 개똥 밟은 적 있어?” 


산책을 하던 중,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과거, 하늘이 개똥 사건의 전말〉


하늘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가 체육 시간에 친구들과 놀다가 갑자기 울면서 화장실로 뛰어갔다고 한다. 그 후로 눈물을 그치지 않고,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아도 대답을 피하고 울기만 했다고 한다.




교무실로 따로 불러 이유를 물어보니, 그제야 모레 놀이를 하다가 물컹한 것이 만져져서 진흙인 줄 알고 뭉갰는데. ‘개똥’이였다고 털어 놓았다고 한다. 너무 놀라 화장실로 달려가 손을 12번이나 씻었는데, 아무리 씻어도 손에 똥이 남아 있을까 봐 두렵다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핸드크림을 발라주시고는 12번이나 비누로 씻었다면 절대로 손에 개똥이 남아 있지 않을 거라고 안심을 시키셨는데,


아이는 여전히 근심이 남아 있는 얼굴로“선생님, 제가 손으로 똥을 만진 것은 절대로 친구들한테 비밀로 해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며, 집에서도 하늘이와 대화를 해보라고 말씀하셨다.      



퇴근해서 ‘하늘이가 개똥 만진 사건’에 대해 얘길 꺼냈을 때, 하늘이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엄마, 학교에서 손을 12번을 씻고 집에서도 씻었는데 손에서 아직도 똥냄새가 나는 것 같아.

그것도 너무 싫은데 친구들이 나 똥 만진 것 알고 나랑 놀지 않으면 어쩌지?”     


나는 하늘이의 손을 내 코에 대고 킁킁거리며 과장된 말투로 말했다.     


“하늘아, 하늘이 손에서 꽃향기가 나는걸? 우리 핸드크림 냄새가 이렇게 좋았었나? 킁 킁 킁 킁”     


“내가 손을 많이 씻어서 냄새가 다 없어졌나 봐. 다행이다!”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인 듯,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할머니를 향해 소리쳤다.     


“할머니! 이제 손에 냄새가 안 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엄마, 나 이 사실을 친구들이 알게 될까 봐 너무 걱정돼. 애들이 내가 똥 만졌다는 것을 알면 더럽다고 할 텐데… 애들이 놀리면 어떻게 하지?”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진 아이의 모습이 무척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하늘아, 똥이 손에 묻었을 땐 더러운 게 손에 묻었으니, 손이 잠깐 더러워질 수 있지만

씻으면 이렇게 바로 깨끗해지잖아. 이제 하늘이의 손은 이렇게 깨끗하고 향기로운데??”     


아이는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다시 얼굴이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두워졌다.


“아니야! 엄마, 나는 똥을 손으로 만졌었어! 그 똥이 얼마나 물컹하고 기분이 나빴는지 몰라.

  냄새는 얼마나 지독했다고. ㅠㅠ 아이들이 내가 그렇게 더운 것을 만졌다는 사실을 알면

  나를 놀릴 거야! 분명히 더럽다고 할 거야! 엄마. ㅠㅠ”


아이는 자신이 똥을 만졌다는 사실에 정말 괴로워하고 있었다.

    

“하늘아, 엄마도 똥 만진 적 많아. 하늘이 아기 때는 엄마가 하늘이 기저귀를 갈다가 손에 하늘이의 똥이 묻은 게 한두 번이 아닌데? 그리고 엄마가 초등학교 때 길에서 사람 똥을 밟은 적도 있어. 하늘이를 낳기 전에는 키우던 강아지 깜이가 길에서 똥을 주워 먹어서 엄마가 손으로 빼준 적도 있어. 큰이모는 있잖아. 하하하. 예전에는 지금 같은 화장실이 아니었거든. 재래식 화장실이라고, 그 안에 똥이 그대로 있었거든. 거기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다가 화장실에 풍덩 빠진 적도 있어. 다리 전체에 똥이 범벅이 됐다니깐 그때 진짜 엄청 더러웠는데, 엄청나게 웃기기도 했고! 하하하 ”     

 

“정말???”     


 하늘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정말이야. 더러운 것은 묻으면 씻으면 그만이야. 아무리 더러운 것이 우리한테 묻어도 씻고 나면 다 깨끗해져. 하늘이가 똥을 만졌다고 해도 하늘이의 손이 잠깐 더러운 것이 묻었을 뿐이지, 하늘이가 더러워지는 것은 아니야. 무슨 말인지 알지??”


하늘이의 두 손을 잡고 내 볼에 비비며 웃었다. 하늘이도 따라 웃었다.     


      





우리는 그때를 회상하며 재잘대며 동네의 둘레 길을 따라 걸었다.    

 

“엄마는 사람 똥도 밟았었어. 사람 똥이 냄새 더 지독한 거 알지? 장난 아니야!”


“그래서 어떻게 했어? 그 신발 버렸어?”


“아니, 집에 가서 물로 씻은 다음 빨아서 다시 신었지. 정말 멀쩡한 운동화였거든.

  근데 하늘아, 너 2학년 때 개똥 만지고 엄청나게 울어서 선생님이 엄마한테 전화까지 했었는데 기억나?”


“당연하지, 그때 나 12번이나 손을 씻었잖아. 으흐흐”


“그때 엄마가 뭐라고 했었는지도 기억나?”


“엄마가 더러운 게 묻으면 씻으면 된다고 했잖아.

  근데 그때는 12번이나 손을 씻어도 계속 냄새가 나는 것 같았어.”


“맞아 그랬지. 네가 막 친구들이 더럽다고 너랑 안 놀까 봐 걱정된다고 했을 때도

  엄마가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엄마도 기억이 잘 안 나서…”


“아! 그때 엄마가 그랬잖아! 더러운 건 묻으면 씻으면 된다고 하면서 깨끗해지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맞아. 엄마가 그랬지, 그래! 하늘아 맞아~ 더러운 게 묻었다고 하늘이가 더러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 잠깐 더러운 게 묻었을 뿐이니까. 지나가다가 똥이 있는 줄 모르고 밟았으면??

(‘모르니까 밟은 거지, 알았으면 당연히 피해 갔겠지? 하필 똥이 그곳에 있었던 거야!!’)

  열심히 빨아서 다시 신으면 되는 거였네??

  그럼 깨끗해지는 거였네?”    

 


 ‘어 이상하다? 그런데 왜 그동안 그 똥이 나라고 생각했을까…’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음 깊은 곳 어딘 가에서 뜨거운 눈물이 조용히 흘러나와 눈 아래까지 바짝 올려 쓴 마스크 안쪽으로 흘러내렸다.     


“눈에 뭐가 들어갔나 봐. 왜 눈물이 나지?”     


산책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했다. 이 간단한 사실을 왜 이제야 깨닫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아직도 내가 저 아래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속삭이는 생각들이 남아, 나를 수면 아래로 끌어내리려 하는 것 같았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지만, 만약에, 아주 만약에 하늘이가 그런 일을 겪고 와서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면?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아이를 위로해 주어야 할까? 하늘이를 어떤 시선으로 보게 될까? 라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이 명료해졌다.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해서 하늘이의 존재는 절대로 달라지지 않는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상처받은 몸과 마음은 새살이 날 때까지 치료하면 된다. 절대로 하늘이가 달라지거나 더럽혀지거나 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씻고 나면 다 깨끗해져. 하늘이가 똥을 만졌다고 해도 하늘이의 손이 잠깐 더러운 것이 묻었을 뿐이지, 하늘이가 더러워지는 것은 아니야!!”      


나는 아이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알아들을 때까지 외치고, 또 외칠 것이다. 내 안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 그보다도 찬란한 존재의 빛을 발견했다.     





너를 만나기 위해, 내가 이렇게 많이 아팠나 봐
네가 나에게로 오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날, 그곳에 머물러있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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