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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Nov 12. 2021

<개똥철학>그냥, 똥 마렵다고 말할 걸

진실 그 씁쓸함에 대하여 2 (후기) / 우리에겐 진실이 필요하다.

몇 달 전 가족들과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찾지 않아 지역 자체가 황폐해진 지방 도시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한때는 온천 명소로 많은 사람이 붐비던 그곳엔, 문 닫은 호텔과 숙박 시설, 상가 등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문을 열고 영업을 지속하는 리조트들은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사이트에 올라 와 있었다.


새로운 에너지를 느끼기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나는 편이다.  여행지에서 보내는 밤은 언제나 특별하고, 아이들은 밤이 늦도록 흥에 겹다.  지역색이 느껴지는 낯선 거리의 카페에선 원하는 커피맛이 아니더라도  괜찮은 기분을 유지할 수 있다.


여느 때처럼 바비큐를 굽고, 즐거운 하룻밤을 보내고, 엄마와 함께 이른 새벽 산책하러 나갔다. 맑고 깨끗한 공기와 하천을 따라 이어지는 긴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걷다 보니 작은 시내와 마을을 모두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꽤 먼 길을 걷게 되었다.




갑자기 배가 부글부글거렸다. 대장의 운동이 급속도로 활발해지는 느낌과 함께 전날 먹었던 음식들이 뇌리를 스쳤다. 아랫배와 하체 전체가 급속도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긴급상황이었다.


넓은 들녘으로 숙소가 보이긴 했지만, 보이는 것보다 훨씬 멀리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엄마와 황급히 화장실을 찾았다. 건물마다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더 이상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환풍구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 곳을 발견했다. 영업 중인 온천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운터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손님을 받는 모습이 보였다. 눈이 마주쳤지만, 양해를 구할 틈도 없을 만큼 급한 나머지 화장실로 먼저 뛰어 들어가 볼일을 해결했다. 일을 끝내고 시원한 마음으로 나와보니, 엄마가 카운터에서 중년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나를 보자마자 엄마는 “가자”라고 말하며, 그 여성분에게 “이따 애들이랑 올게요.”라고 말을 했고, 중년 여성은 우리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언짢은 얼굴이었다.


“엄마, 뭐라고 했어?”


 “아니, 가격 얼만지 물어봤어.”


“왜 그랬어? 난 죄송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ㅠ 화장실이 급해서 왔다고 하지. 솔직하게 말하면 될 걸 굳이 손님인 척을 했어?”




가게 주인은 그 사람이 물건을 구매할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를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카운터에서 목욕 손님에게 타월을 내어 주며, 나의 다급한 등장을 본 주인이(주인이 아니더라도) 용건이 화장실이었음을 모를 리가 없다.



“엄마, 엄마도 가게 해봐서 알잖아. 저 아줌마, 우리 다시 안 올 거 알아. 손님인 척해도 안 믿는 거야. ”



그냥 화장실이 급한 행인으로서의 솔직한 감정으로 감사함과 미안함을 표시했다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인척한다는 것은 나의 마음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 손님도 아니면서 화장실을 빌려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숨기면서 손님 비슷한 대우를 받겠다는 ‘심산’인 것이다.(아마도 무시당할까 봐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중년 여성으로선 기분이 언짢은 일일 수 있다. 화장실을 빌려 써서가 아닌 것이다.



“지나가는 길에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어쩔 수 없이 썼어요. 죄송합니다. 하마터면 쌀 뻔했네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중년 여성은 누군가를 도운 것이 되어 자신의 마음을 따로 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손님인 척을 했기에, 내키지도 않는 손님에 대한 마음을 일부러 꺼내야 했을 것이다.

나는 급한 볼일을 해결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시원하고 감사했을 것이다.


 



우리는 크고 작게, 그런 척을 하며 상대를 대하곤 한다. 무엇 때문에 이런 사소한 일에도 진실을 말하고, 마음 하나 내는 것을 힘들어할까.



결국, 동생의 회사의 여 대리는 진실을 확인하지 못하고, 퇴사 결정이 내려졌다고 한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팀장은 자신이 여 대리의 퇴사를 주도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여 대리는 여러 가지 정황상 새로 온 상무가 내린 결정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팀원들은 모든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아무도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두려워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언젠가부터 우리는 진실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내보이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진실한 마음을 내었을 경우, 상처를 받았던 어느 기억들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가면이 생겨났다. 진실은 숨긴 채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 대부분이 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가면은 진실을 가리고, 해결책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두터운 가면을 뚫고 들어가 진실을 확인하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쓴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그 용기가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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