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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Nov 13. 2021

2-1. 이혼할 사주팔자(운명)

운명이란 뽑을 수 없을 만큼 깊숙이 박힌 거대한 뿌리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부모, 형제, 태어난 날과 시간, 자녀, 태어나서 자란 환경 등은 바꿀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우리의 삶에 저절로 주어진 것들이다. 그것을 운명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운명 안에도, 각기 다른 공간이 펼쳐져 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운명과 싸우는 것을 멈추고, 다른 공간을 선택하는 것이다.


운명이 당신을 아프게 하거든, 담담히 걸어 들어가라. 머지않아 같은 자리에서 다른 공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임시직으로 시작했던 일을 그만두고, 다시 직장을 구해야 했다. 마음은 극도로 고통스러웠지만, 다시 살아내야 했다. 아이의 분유를 사고, 기저귀를 사고, 입히고 해야 할 비용이 필요했다. 남편은 함께 살면서 생긴 빚으로 인해 아파트 전세금 중 대출액을 제외한 비용을 은행에 갚고 나면 빚을 상환해야 한다며 당분간은 양육비를 지급할 수 없다고 했다. 친정에 들어오긴 했지만, 친정 부모님께 손을 벌릴 처지도 형편도 아니었다.


막상 이혼을 하고나니 혼자서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피부에 와닿기 시작했다. 아이 아빠 없이 가족사진이 포함된 200일 사진을 찍으러 가야 했다. 아이를 출산했던 병원과 연계되어 있던 사진관에서 아이의 성장 앨범을 계약했었다.      


50일, 100일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 아기자기한 스튜디오에서 여러 가지 콘셉트에 맞춰 아기가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함께 감탄하고 기뻐하던 때가 생각났다. 50일에는 몸이 회복되지 않아 시부모님도 함께 스튜디오에 갔었다. 그때 시부모님이 아이한테 관심을 두는 것이 유별나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가 내심 불편했었다. 그런데, 그때보다 훨씬 불편한 상황이 되어, 사진작가와 스태프에게 '아이 아빠가 가족사진을 찍으러 오지 못한 이유'로 둘러댈 말을 생각해 내고 있었다. ‘차라리 가지 말까?’ 이미 돌 사진 비용까지 다 지급하였던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아이의 성장 앨범을 찍어주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친정엄마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스튜디오로 갔다.   

  

50일, 100일 촬영에도 함께 촬영을 진행했던 스태프들이 이번에도 과도하게 아이를 반기며 우리를 맞이했다. 바로 아이 아빠에 관해 물었다.


“어머님, 아버님은 언제 오세요? 오늘 가족사진도 한 컷 정도 넣어 드리려고 하는데 아버님 오시면 진행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잠시, 친정엄마가 말한 대로 ‘아이 아빠가 외국으로 출장을 갔어요.’라고 말할까 생각하다, 평소 스타일대로 “저희 헤어졌어요… 가족사진은 괜찮아요.”라고 말해버렸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몹시 떨렸다. 거울을 보지는 않았지만 내 표정이 어땠을지도 스태프의 태도를 보며 알 수 있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머뭇거리다가, “아… 네”라고 대답하고는, 서둘러 방을 나갔다. 조금 후, 그 스태프가 다시 들어와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짧은 위로를 건넸다.


“죄송합니다. 힘드실 텐데…”

“아녜요. 당연히 물어보셔야 하는 건데요.”     


사진을 찍는 내내 스튜디오에는 상실감과 적막함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꿈틀거렸다. 그제야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리석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어리석게 살아온 나 자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결혼도, 이혼도, 임신도, 엄마가 된다는 것도, 나라는 존재의 인생조차도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삶이었다. 그로 인해 삶의 결과물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과 숙제가 되어있었다.     


그것을 깨닫고 마지막으로 그를 만나 손 내밀었을 때, 그는 이미 채무를 위해 아파트를 정리한 후였다. 그의 대답은 ‘단칸방 같은 곳에서 삶을 살고 싶지 않다’였다. 사람들은 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을 것이라고 했다. 그곳에 묶여 있을 여유가 없었다. 얼마 후 임시직을 제안했던 팀장님의 추천으로 송파의 오피스텔 대행사의 사무 행정직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수원에서 송파로 출퇴근을 하면서 맹목적 삶의 의지로 출근과 퇴근, 육아를 병행하며 우리를 지켜내고 있었다.






     

10여 년을 넘게 살았던 동네에서 ‘운명, 사주, 택일’이라는 간판에 눈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평소 그 길을 지나면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무언가에 이끌리듯 안으로 들어갔다. 이 동네로 이사 오기 훨씬 전부터 있던 곳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베인 2층 건물이었다. 1층엔 ‘oo 필방’ 흐릿하게 자국만 남아 있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내부는 쓰이지 않는 듯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벽면 중앙에 커다란 달마도가 걸려 있었다.     


 70대로 보이는 뿔테 안경을 쓴 노인 한 분이 인기척을 듣고 밖으로 나왔다. “선생님 저 사주 좀 보려고 하는데, 지금 괜찮을까요?” 노인은 안으로 들어오라며 안내했다. 노인이 내민 종이에 생년월일을 적으며, “생시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새벽 2~3시쯤 태어난 것으로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축시네”라고 말하며 노인은 흰 종이에 사주팔자 여덟 글자와 운의 흐름을 천천히 풀어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으니 10년 전쯤 친구들과 사주카페에서 재미 삼아 사주를 봤던 것이 생각났다. 살아가면서 고생을 많이 하게 되지만 결국 자수성가할 사주라고 했었다. 그리고 어디서든지 살아남는 ‘강한 생활력’이 있다는 말에 친구들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비웃었다.   “얘가 요?, 에이 그럴 리가…”     

  



노인은 사주를 다 풀었다는 듯, 쓰고 있던 뿔테 안경을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많이 떠돌아다니는 사주네, 안정을 찾기가 힘들어. 남자 복도 없고.”


그 말을 듣고, 결정적으로 남자 복이 없다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왠지 노인이 인생에 무언가 정확한 답을 제시해 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 결혼은 최대한 늦게 해. 이혼할 사주야.”


몹시 놀랐다. 그 말만으로 무언가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어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선생님, 제가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이혼했어요.”


“그렇지, 그랬을 것 같더라. 이 사주는 남편이 없는 사주야. 주변에 남자는 수두룩한데, 내 것은 없네. 지금도 주변에 아가씨를 지켜보는 남자는 많아.”


노인의 말에‘나를 지켜보는 남자? 그럴 리가 없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는 부모 형제가 다 도움이 안 되네. 쯧.”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언제 좀 괜찮아지나요?”


“지금 특히 운이 너무 안 좋아. 앞으로 10년 동안은 정말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아야 해”


“지금도 너무 힘든데, 10년이 나요? 아…ㅠㅠ”


“아가씨 이름 좀 한자로 적어봐.”     


이름을 한자로 또박또박 적어 노인에게 내밀었다.


“내가 성명학 박사라 성명학으로는 유명해. 그러니 여기서 20년도 넘게 철학관을 할 수 있는 거고, 가만있자… 아가씨는 이름도 문제네. 이 이름은 누가 아가씨한테 ‘장혜진 혜진’이라고 부를 때마다‘너 죽어라, 너 죽어라.’ 하는 이름이야.”


내가 무언가를 대답하거나, 물어볼 틈도 없이 노인이 연이어 말했다.     


“근데 아가씨는 이름만 바꿔서는 약해, 사주가 너무 안 좋아. 사주를 바꿔야 해. 어지간한 사람은

  이름만 바꿔도 되는데…”     


노인의 말을 들으니, 잠시 혼란스러웠다.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노인의 말투와 이야기들, 무엇보다 내가 이 철학관에 오게 된 이유도 오랜 세월 같은 자리에서 철학관이 운영되고 있는 사실이었다.     


“선생님 사주가 바뀌나요? 어떻게 해야 사주가 바뀌죠?”


“그럼, 당연히 쉽지는 않지만, 방법이 있어.”


“어떻게 해야 하나요?”


“300만 원이야.”


“네??? 300만 원이요? 너무 비싸요! 제가 지금 아이를 혼자 키우게 돼서요,

  양육비도 못 받고 있고요, 너무 큰 금액이에요. 선생님”


“사주를 바꾸려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얼마나 정성이 많이 필요한데

  아가씨는 사주 안 바꾸면 더 힘들어.”


“그럼 만약에 제가 300을 드리고 하게 되면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는 건가요?

  저도 뭔가를 해야 하나요?”     


노인의 눈이 반짝하고 빛이 났다.     


“새벽에 일어나서 정성을 주로 들이고, 보름달이 뜨는 밤에 산에 올라가서 부적도 태우고,

  땅에도 묻고, 여러 가지 의식을 많이 해. 한두 가지가 아니야.”


“아… 그럼 사주가 바뀌는구나. 그런데요. 선생님 그럼 사주만 바꾸면, 이름은 안 바꿔도 되나요?”

 노인이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듯하더니 말했다.


“사주가 이름보다 더 중요한 거니까”


“선생님 제가 진짜 너무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요, 저는 왜 이런 사주를 가지고 태어난 걸까요?”


“전생에 죄가 많아서 그래.”


“제가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을까요?”


“남편 밥도 안 차려 주고, 남자를 너무 무시하고… 음… 자기 멋대로 …”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선생님, 저 안 되겠어요! 괜히 사주를 지금 바꿨다가 다음 생에 더 이상한 사주로 태어날까 봐

  무서워요. 그냥 저는 이생에서 전생에 지은 죄, 다 갚으며 살겠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무척 언짢은 듯 얼굴을 찌푸리더니 획! 하고 돌아앉았다. 테이블에 3만 원을 올려 두고 밖으로 나왔다.

8월의 태양빛이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Brett Sayles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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