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들려오는 불편한 소식들 속에는 마주 하고 싶지 않은 진실이 들어있다. 진실을 맞닥뜨려야 하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문을 통과하지 않고서, 우리는 나아갈 수 없다. 진실의 문으로 들어가라. 행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발견할 것이다.
이혼 후, 1년여 동안 그의 소식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그의 소식이 들려왔다. 나의 언니였다. 이혼 후 아이조차 찾지 않는 그를 궁금해했다. 언니는 CSI보다 더 빠르게 커뮤니티, 타인의 SNS 등으로 빠른 수사를 해내는 재능이 있었다. 언니의 재능이 발휘되어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OOO 결혼한대! 12월 00일 날”
“다음 달이네…”
그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결혼 생활 중 생긴 빚을 갚고, 생활이 조금 안정되면 아이를 주기적으로 만나고, 양육비도 지급하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혼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새 출발을 한다면? 그 약속이 지켜질지 의문이었다. 어쩌면, 모든 것을 예상했는지도 몰랐다.
아이에게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었다.
언니는 이따금 그의 상황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전화를 걸어 상황을 생중계하며 험담을 늘어놓았다. 그의 신부가 될 사람의 키가 어떻고, 얼굴이 어떻고, 어디서 만났으며 하는 등의 사소한 얘기까지 전해 들으니 점점 그의 결혼이 점점 신경 쓰였다.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Jonathan Borba 님의 사진, 출처: Pexels
12월의 어느 토요일, 출근한 나는 언니에게서 굳이 보고 싶지 않은 그의 결혼사진 몇 장을 전송받았다. 그가 식장으로 입장하는 모습, 하얀 드레스를 입은 그녀와 나란히 하객들 앞에서 웃고 있는 모습, 그리고 직계 가족들,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 내외가 한복을 차려입은 모습, 막상 그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니 온갖 감정이 들고 일어났다.
상상 속에서 아이를 데리고 그의 결혼식에 찾아가 결혼식을 박살 내기도 하고, 네가 사람이냐고 멱살을 움켜쥐기도 했다. 턱시도를 입은 그의 옆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에게 질투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다니던 회사도 이직하고 감쪽같이 새 삶을 시작하는 반면, 결혼은커녕 연애도 어려운 싱글, 워킹맘인 현실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런 사진을 무슨 의도로 보내냐며, 앞으로 그의 소식을 전하지 말라고 애꿎은 언니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알 수 없는 감정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날, 퇴근길은 유난히 길었다. 사실 그의 결혼 소식 듣고, 결혼식 당일까지 줄곧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뒤엉켜있었다. 그 감정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막막했다.
멍하니 전방을 주시하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그의 결혼사진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와 함께했었던 짧은 결혼 생활이 떠올랐다. 결국 파국으로 끝나게 된 6층 아파트에서 우리는 즐거웠던 시간도 많았다. 낡은 아파트를 인테리어 한답시고, 월차를 내어 온종일 시트지를 붙였다. 함께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걸어 놓으며 함께 웃었다. 내가 끓여준 김치찌개가 제일 맛있다며 퇴근 후 부리나케 달려 들어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대하듯 먹어 주었다. 생일날 명품 가방 하나 없는 내가 늘 마음에 걸려서 큰맘 먹고 준비했다며 백화점에서 산 신상 명품 가방을 내밀며 해맑게 웃었다.
“카드를 쓰긴 했지만 자기 걱정 안 시킬게”
크리스마스엔 온종일 정성껏 만든 음식으로 파티를 준비 해 놓았다.
임시직으로 일하던 어느 주말, 특근을 하고 돌아오니 그는 아이와 함께 잠이 들어 있었다. 퇴근해서 돌아온 나를 보고는 일어나 머리를 긁적였다. “자기 오기 전에 저녁 준비해 놓으려고 했는데 너무 피곤해서 잠들었었네.”라며, 주방으로 가던 그가 떠올랐다.
언젠가부터 그가 노력하는 모습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선물해 준 명품 가방을 받으며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는 몹시 서운해했다.
어느 날엔가 그가 화가 잔뜩 난 나를 위해 꽃다발을 사 들고 일찍 퇴근했다. 서슬 퍼런 눈빛으로 설거지를 하는 내게 그동안 미안했다며, 수줍은 미소를 가득 머금고 꽃다발을 내밀었다. 나는 꽃다발을 가지고 온 그의 마음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꽃다발을 사 온 돈이 너무 아까웠다. 그리고 밥 먹듯이 해대던 그놈의 미안하다는 소리에 대한 분노와 그가 조금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굳은 믿음으로 꽃다발을 받아 들지도 않았다.
평일엔 자주 늦어서 미안하다며 주말이면 청소와 집안일, 아기를 케어 하는 모든 가사 일을 자기가 하겠다고, 청소하고 반찬을 만들던 때에도 술마시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조금도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술에 취해 들어온 그를 마구 때려 상처를 입혔다.
cottonbro 님의 사진, 출처: Pexels
하필 그의 결혼식 날, 퇴근하는 차 안에서 그런 나를 마주해야 했다. 나만큼 아파하고 나로 인해 상처받은 한 남자가 보였다. 뜨거운 눈물이 양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운전대를 잡은 두 손이 거세게 떨려 하마터면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풀릴 뻔했다.
상처로 얼룩진 나의 마음만큼이나 그 역시 상처로 얼룩져 있었다. 지옥 버스를 타고 퇴근해서 돌아오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차갑고 의도적인 무관심에 몇 번이고 상처 입으면서도 내색할 수 없었다. 갈수록 거칠어지고 무서워지는 나를 많이도 두려워했었다. 살얼음을 걷듯 눈치를 보아 온 그를 알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화해를 위해 꽃다발을 사 오던 날, 거실 구석 자리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꽃다발을 보고 그는 절망하며 마음으로 울었다. 나에게 가시가 나 있는지 몰랐던 탓에 가시에 누군가 상처 입는 사실을 몰랐다. 그가 울며 애원하며, 무섭고 아프니 제발 그 가시를 거두어 달라고 말했을 때도 우리의 불화가 오직 그로 인한 것인 줄 알았다.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그에 대한 미움이 들 때마다 마지막 그날 밤이 떠올라 비참했다. 그에 대한 미움을 버리고 그를 용서하고 싶었다. 하지만, 용서해야 할 대상도 용서받아야 할 대상도 없음을 알아 버렸다. 나를 진짜 아프게 했던 것은 그가 아니라, 나의 지독한 결핍이라는 것도 알아 버렸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그때의 나로선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만약에 나에게 결핍이 없었다면 어쩌면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그를 기다리지 못하고 아이를 재우다 아이와 함께 잠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버스를 타고 서서 출근하는 남편을 보고“어제 몇 시에 왔어? 술 많이 마셨어? 몸 상해… 오늘은 일찍 들어 올 거지? 우리 아기가 아빠 기다리는 것 같더라…”라고 말하며 따뜻한 꿀물이라도 타줬을지도 모른다.
생일날 특별한 마음을 담은 명품가방을 선물 받고 기쁨을 숨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이거 카드값 한참 갚아야겠네.”라고 말하며 걱정거리를 함께 나누고, 그에게 안겼을지도 모른다. 화가 난 아내를 위해 꽃을 사 들고 뒤에 숨기고 들어온 날엔,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도 잠시 잊고, 형형색색의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에 취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평범한 어떤 일상처럼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오면 “왔어? 오늘도 버스에 사람 많았어?”라며 눈을 보고 인사를 건넸을지도 모른다.
회한의 눈물과 함께 실컷 울고 나니, 신기하게도 무거운 짐 하나가 내려가는 것 같았다. 현실이 마냥 어둡고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소중한 아이의 아빠인 그가 잘 지내기를 바란다. 그에게 전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진심이다. 그리고 나에게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아이의 아빠로서 건강하고 자랑스럽게 이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나도 아이와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