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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Dec 03. 2021

2-12. 당신이 낳은 아이의, 아이라는 이유로

 그런 이유로 사랑한다는 것.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빅터 위고

 

사랑을 확신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하늘과 땅 차이다. 사랑을 확신할 때, 꽃이 나를 위해 피고 진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사랑에 확신이 없으면 꽃의 존재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것이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모르는것과 같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꽃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느끼는 삶은 그 자체로 즐거우며, 실패의 순간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암 진단을 받고,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우리 엄마였다. 엄마의 눈물을 본 적이 별로 없다. 기억 속 엄마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사람이었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듯한 엄마의 음성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암 수술을 하던 날, 수술실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서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수술실 안쪽의 대기석에 앉아 있으면서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엄마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내 옆에서는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엄마의 품에 안겨 두려움에 떨며 울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괜찮아, 엄마가 수술하는 내내, 옆에서 있어 줄 거야”라며 아이를 계속 안심시켰다.  

    

수술을 준비하는 의료진이 수술실 밖의 엄마를 보여주려고 일부러 자주 드나 들리는 없겠지만, 하필 대기하는 내내 엄마가 수술실 앞에서 울고 있는 것을 계속 보아야 했다. 대단해 보이는 암 수술이었지만, 1센티 정도밖에 되지 않는 혹 덩어리를 절개로 제거하는 수술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수술에 대한 공포가 별로 없었다. 담당 선생님도 2시간 안에 다 끝날 것이라고 하셨고, 수술 위험도 크지 않다고 하셨다. 수술복을 입고,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비닐 캡을 쓴 내 모습이 우습고, 낯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다시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엄마가 보였다. 우리 엄마가 울고 있다. 행여나 딸이 잘못될까 봐, 안절부절못하며 울며 서 있다. 옆에서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도 울고 있다. 그리고 아이를 안고 있는 아이 엄마도 울고 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풀리기 시작했을 때, 엄마가 울면서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엄마 추워”라고 말하자, 엄마가 따뜻한 얼굴로 이불을 덮어주며 말했다.

“혜진아, 괜찮니?”

“어, 근데 너무 추워”

겨우 대답을 하고는 , 덜덜덜 떨고 있는 나를 엄마가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엄마의 눈빛에서, 엄마의 손길에서, 처음으로 따뜻한 사랑을 느꼈다.


마흔이 넘은 나이, 암 수술을 받으며 처음으로 엄마의 따뜻한 사랑을 느꼈다.      


“엄마, 나의 아이를 '당신이 낳은 아이의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늘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 알아요.

  알면서 모른 척했어요. 엄마.

  엄마가 종종 그러셨죠? 나는 그래도 내 새끼가 먼저라고,


  엄마,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엄마… ”     




어린 날의 기억 속, 그토록 무섭고 쌀쌀맞던 엄마가 하늘이에겐 따뜻한 할머니가 되어, 어디든 하늘이와 웃으며 손을 잡고 다니셨다. 내 친구들의 이름은 아직도 잘 모르는 엄마가 어린이집 친구들부터 시작해서 입학해서는 학교 친구들 이름까지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셨다. 동네에서는 하늘이 할머니로 유명했다. 오랜만에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하늘이를 데리러 가면, 사람들은 나를 몰랐다. “하늘이 엄마예요? 할머니가 하늘이랑 얼마나 재미있게 다니는 줄 몰라요”담임 선생님도 엄마인 나보다 언제든 발 벗고 하늘이에게 달려오는 할머니에게 연락을 주셨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빈손으로 오는 법이 거의 없으셨다. 하늘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 오시고, 겨울엔 크림 붕어빵을 사 오셨다. 밖에 나가서도 하늘이를 떠올렸다. “이건 우리 하늘이가 좋아하는 건데”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나에게는 표현한 적도 없는 “사랑해”라는 말을 하늘이에겐 아낌없이 쓰셨다.


“하늘아, 할머니는 하늘이가 있어서 너무 좋아. 하늘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 모습을 보며 우리 엄마가 그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늘이와 친정으로 들어가기 전, 부모님의 사이는 휴전상태였다. 대화가 단절된 지 오래였다. 결혼 생활 중 친정에 가면, 냉랭한 두 분 사이에서 양쪽의 하소연을 들어줘야 했다. 그럴 때마다 무척 짜증이 났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온 이후, 서서히 웃음꽃이 피어났다. 냉랭했던 부모님의 사이는 ‘하늘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놓고 대화가 오고 갔다. 마치 사이좋은 신혼부부에게 찾아온 첫아이를 대하듯, 부모님은 과거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하늘이 역시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잘 따랐다.      


어린 날의 기억 속, 삶에 찌들어 인상을 잔뜩 쓰고 다니며 나를 구박하고 화만 내던 엄마는 더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늘이가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우리 엄마 덕분이다. 팔순의 나이에도 새벽 출근하시고 직장과 밭일을 겸하시며, “나는 놀면 병나”라고 말씀하시며,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놓지 않으셨던 아버지, 오랫동안 흔들리고 있는 나에게 한 번도 싫은 내색 하지 않으시고, 울타리를 만들어 주셨다. 든든한 우리 아버지 덕분에 나약하고 끈기라곤 없던 내가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오니, 하늘이가 예쁜 그림으로 장식한 편지를 전해주며 나에게 안겼다.


“엄마, 병원에서 링거 맞고 주사 맞느라 힘드셨죠. 고생하셨어요.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주셔서 고맙고 행복해요.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요. 사랑해요. 저의 엄마가 돼주셔서 고맙습니다. 엄마는 너무 예뻐요, 엄마 최고!!”      




행복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배경 이미지출처 : Andreas Wohlfahrt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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