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도전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서 벗어나 어제와는 다른 내가 되어있고,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타인과 나는 애초에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시작점도 교차점도 반환점도 모두 다르다. 나는 오로지 과거의 나와 나를 비교할 뿐이다.
수술이 끝나고, 방사선 치료와 호르몬 치료가 시작되었다. 40여 일의 방사선 치료는 부위가 가슴에 집중되어 있어 별다른 부작용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40대 초반에 주사와 알약으로 여성호르몬을 강제로 차단하여, 갱년기를 맞는 것은 조금 달랐다. 즉시 생리가 중지되고, 주기적으로 가슴 중앙을 쥐어짜며 시작되어 몸 전체로 퍼지는 열감, 홍조, 뼈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바깥 기온과는 상관없이 온몸이 아무 때나 땀범벅이 됐다. 그로 인한 불면의 밤도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그런 상태가 적응되겠지만, 갑작스럽게 폐경을 맞이한 몸이 낯설고 힘들었다. 10년 전 항우울제를 복용했을 때도 느꼈었지만, 약물의 효과라는 정확하고 대단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런 상태로 지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기간을 보내고 나면, 자연적으로 갱년기를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슬펐다.
착각으로 시작되긴 했지만, 죽음의 공포를 맛보고 나라는 존재의 소멸을 마음으로 경험한 이후,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었다. 삶에서 그것을 우선순위에 두기로 했었다. 눈앞에서 펄럭이던 낡은 족자의 빛깔을 잊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폐경이 된 몸과 친해지기 전까지 어느 정도 진통을 겪긴 했지만, 어느 순간 몸에 악성종양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생활하게 되었다.
방사선을 마치고 앞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직장 생활보단 ‘나의 일’이 하고 싶었다. 마침 보험회사로부터 받은 진단비와 언젠가부터 나를 지지해 주는 든든한 지원군 중, 남동생이 모자란 비용을 선뜻 내주었다. 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여동생은 함께 가게를 보러 다니며 도와주었다.
인테리어 업체를 선정하고, 발품을 팔아 사 온 거울, 커튼, 소품 등을 동원해 함께 내부를 장식했다. 원두 납품 업체를 선정하고, 기본 레시피를 토대로 우리만의 레시피도 만들어졌다. 나에게는 타로카드라는 특기가 있었다. 그것을 본격적으로 사용할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오픈 이벤트 방문 고객, 타로 상담 무료>라고 적힌 입간판을 세워 두고, 2019년의 어느 봄날, 작은 공원 앞에 카페를 오픈했다. 오픈 첫날부터 지인부터 손님들까지 많은 사람이 카페를 찾았다. 동생이 메인으로 커피를 내리고, 음료를 만들었다. 나는 함께 음료를 준비하다, 타로 상담을 원하는 손님들이 있으면 테이블에 동석해 타로 상담을 했다. 타로를 본 손님들은 매우 즐거워했다. 지인들도 대동하고 다시 카페를 찾았다.
그 덕에 한동안 바쁜 날들을 보냈다. 오픈 빨 이 수그러들면서 동생도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점차 고정적으로 타로를 보러 오는 단골들도 생기고, 주기적으로 커피를 마시러 오시는 분들도 생겼다. 혼자 커피와 음료를 준비하고, 타로 상담도 하느라 하루가 분주하고 바빴다. 손님이 뜸한 브레이크 타임엔 귀여운 사내아이를 품에 안고 카페를 찾는 아기 엄마와 ‘수호천사’와의 시간은 또 하나의 일상이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오랜 인연들도 카페를 통해 다시 만났다.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함께 교회에 다니던 오빠도 SNS를 통해 카페를 찾아왔고, 여고 1학년 때 길거리에서 찹쌀떡을 팔아 성경책을 선물해 주었던 잊지 못할 친구도 꽃다발을 안고 찾아왔다. 오래전, 버스킹 공연을 통해 가수와 팬으로서 인연이 되었던 ‘블리스 데이’의 도영님도 웨딩홀에 축가를 부르러 왔다가, 모자 쓴 스투키를 안고 오랜 인연의 끈을 이어 주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만날 수 없던 오랜 인연들도 틈이 날 때면 카페로 찾아왔다. 이혼 후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위로가 돼주었던 당시 아가씨였던 그녀도 아이 엄마가 되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
가볍게 생각했던 타로가 예상외의 결과를 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료로 진행하던 타로를 소정의 금액을 받고 진행하게 되었다. 무료상담에도 한 분, 한 분 손님들을 맞이할 때마다 진심으로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점차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사람들은 점점 많은 것을 듣고 싶어 했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내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잠들기 전,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낮에 사람들과 나눈 대화와 테이블에 펼쳐지던 카드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행여 내 말이 경솔하지 않았는지 실수는 없었는지를 점검하며 두려워해야 했다.
카페가 늦가을로 접어들면서 공원이 비수기에 들어섰다. 손님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테이크아웃으로 판매되었던 수익이 운영에 크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출이 크게 줄었지만, 단골손님들은 꾸준히 카페를 찾아주었다. 그런대로 운영해가며, 카페는 새로운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