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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Dec 07. 2021

3-2. 그런데, 진짜 의처증이 있는 건가요?

사실과 사실 아닌 것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일, 이 정도면 괜찮을 거라고 예상했던 일, 그것을 달성하려고 다짐했던 나의 계획과 의지조차도, 경험이라는 문을 통과하기 전까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삶이란 경험을 통해 자신을 알아 가고, 삶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인생에서 경험만큼 값진 것은 없다.



 

어느 날, 3년 전 이혼을 했다는 50대 남자 손님이 방문했다. 개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이벤트 타로를 열심히 봐주고 있을 때였다. 그는 이혼한 아내와 재결합을 할 수 있는지를 타로로 봐달라고 했다. 내가 타로를 보기 전, 하는 말이 있었다.           


“제가 배운 타로는 어떤 의미에서는 점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점이 아니기도 해요. 타로는 내 안에 있는 무의식을 보여주는 도구거든요. 무의식적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 방향성을 파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타로예요. 저는 무의식의 방향성을 보고 긍정인지, 부정인지를 파악하고, 뽑혀 나오는 카드의 의미를 해석해 줄 뿐이에요. 결국, 선택은 질문자의 몫이니까요.”     


카드의 흐름으로 전 아내분은 이미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 바쁘게 지내고 계신 것으로 보인다고 말씀드렸다.      

“사장님, 제가 의처증이 왜 생겼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내가 그걸 너무 힘들어했거든요”     


개그로 던졌는데, 다큐멘터리로 받아치는 느낌이었다. 이벤트 타로의 질문으로는 너무 무거웠다.     


“타로로는 어떤 질문도 가능하긴 하지만, 제가 얼마큼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나는 뽑혀 나오는 카드의 의미만으로 해석하겠다는 말을 재차 강조했다. 카드를 펼친 순간, 카드의 조합이 도저히 이해 가지 않았다. 당연했다. 타로만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말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오류였다. 그래도 타로 리더로서 어떤 말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사실 뽑혀 나온 카드의 조합이 너무 뒤죽박죽이라, 말씀드리기 모호한 부분이 많아요.

결론 카드를 보고 말씀드리면, 컵을 든 이 소년은 어린아이거든요. 이 소년이 손에 든 컵은 타로에서는 감정을 뜻해요. 소년이 든 컵 속엔 물고기가 들어있는데 그 의미는 소년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일 수도 있고, 소년이 좋아하는 대상일 수도 있어요. 잘은 모르지만, 어릴 때 소년이 느끼고 기대했던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손님에게 결과에 관해 말하고 있는 도중,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진짜로 의처증이 있는 건가요? 왜냐하면, 의처증이 왜 생겼을까?”라는 질문 자체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내가 의처증이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봤는데, 아내가 나에게 의처증이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내가 의처증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잘 모르겠군요.”     


손님이 돌아가고,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모른다고 할 걸 그랬나.’ 싶었다.




그분은 카페가 문 닫을 시간에 동창분들을 대동하고 일부러 멀리서 찾아오기도 하고, 예쁘게 생긴 두 따님과 자전거 하이킹을 나왔다가 들르기도 했다. 오실 때마다 타로도 보고 잠깐이지만 대화를 나누고 돌아가셨다. 어느 날은 손님이 많아 기다리시다가 토마토 주스를 한잔 드시고는 일어나셨다.     


카페 앞 공원의 나무들이 앙상해지고, 차가운 겨울 저녁엔 공원엔 발길이 점점 끊어졌다. 거리엔 지나가는 사람들보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심각하게 타로 상담과 명리를 배워 주업으로 삼을까를 고민했다. 사람들과 타로로 소통하는 것이 재밌었다. 하지만 타로라는 것의 한계가 있었다.      


내가 타로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연애를 시작하고, 이별을 경험한 직후였다. 싸움 한 번 없이 잘 지내던 사람과 사소한 다툼이 이별로 이어졌다. 주말이면 하늘이와 함께 공원 나들이도 하고, 놀이동산에도 갔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새롭고 행복한 일상이 되어 주었다. 싱글인 그가 주말 데이트 때 아이를 데리고 데이트에 나오는 나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는 항상 특유의 재치로 우리를 배꼽 잡게 했다.


운명의 장난인지, 그 사람 역시 나와 비슷한 좌절을 오랫동안 맛보고 있었던 때였다.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자신의 직업에도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그 문제로 그토록 힘들어하는 줄 몰랐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그는 자신의 현실 때문에 나와의 관계를 놓았고, 나 역시 현실 때문에 그를 놓아버렸다.      


힘들었던 그때, 몰입하게 만들어 주었던 도구가 바로 타로였다. 그와 헤어지고, 어느 카페에서 타로를 보고 족집게처럼 상황을 술술 읽어주던 타로 리더 덕분에 위로와 신비에 빠졌다. 타로를 배우면서 그 사람을 잊어갔다. 타로를 배우고 나서 타로는 신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타로를 읽는 리더의 경험과 소통 능력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 한계를 극명하게 체험했다.


명리학 역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측면은 많아 보였지만, 성격상 사람들의 운명을 논하며 비용을 받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상담을 하고 나면, 그 ‘한계’라는 것이 나를 두렵게 했다.     






Brooke Lewis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칼바람이 부는 스산한 겨울 저녁, 스스로를 의처증이라고 생각하는 손님이 다시 카페로 들어왔다. 심화 상담을 싶다고 하셨다. 심화 상담은 영혼 타로와 무제한 셔플 상담으로 구성된 상담이었다. 그분의 영혼 타로를 꺼내놓고, 기본적인 기질 등을 하나하나 얘기하며, 타로에 담긴 수비 학적 의미를 설명했다. 손님은 잠자코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설명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했다.     


“사장님 이건 타로랑 상관이 없는 얘길 수도 있는데요, 제가 이혼한 지 2~3년이 되었는데 주변에서

이혼한 사실을 몰라요. 지금 직장동료들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래요. 그런데 내가 이걸 말을 안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랑 잘 섞이지 않더라고요.”     


 언제나 타로카드에게 던질 질문을 만들어 주었던 것처럼 그분에게 의사를 물어보았다.



“그럼 앞으로 그분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타로로 봐 드릴까요?”     


“아니, 이혼했다는 사실을 말 안 하고 있으니까 마음이 너무 불편해서요.”     


난감했다. 타로로 볼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분 역시 타로를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생님 제가 우리 하늘이가 어릴 때 이혼을 했거든요. 그래서 지금 10년이 다 되어 가요.

저도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괜히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상대를

속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처음엔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먼저 “저 이혼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저는 그게 솔직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상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굳이 먼저 말할 필요는 없잖아요. 아내분이 있을 때에도 굳이 “나는 아내가 있어요.”라고 먼저 말씀하시지 않으셨듯이, 이혼했다고 “나는 이혼을 했어요.”라고 먼저 말할 필요도 없는 거죠.     


이혼했다는 것은 단지 하나의 사실일 뿐이니까요. 자랑도 아니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잖아요. 지금은 누가 물어보거나, 지금처럼 필요한 경우에 이혼해서 딸아이와 부모님과 함께 산다고 말해요. 물어보지 않으면 굳이 말할 필요는 못 느껴요. 시간이 지나면, 오래 관계를 맺을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 사람은 다 알고 있고, 눈치채고 있더라고요. 지내시다 보면 분명 누군가가 가족에 관한 사항을 물어보거나, 구체적으로 얘기해 줘야 할 때가 올 거예요. 그때 선생님이 얘기하고 싶으시면, 그때 얘기하시면 돼요. 이혼 사실을 말을 안 했다고 해서 얘기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누군가를 속이거나 그런 것은 아니잖아요.”     



손님은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하셨다. 얼굴에 화색이 도셨다. “물어보면, 그때 얘기해라, 이거죠?”라고 되묻고는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돌아가셨다. 타로카드는 만져 보지도 않으셨다.     


타로를 펼치며 카드의 조합으로 미래를 예측해 드릴 때보다 훨씬 편안해 보이셨다.



다시 카페를 찾았을 땐, 회사에 마음에 드는 이성이 생기셨다고 했다. 오랫동안 아내와의 헤어짐을 자책하며 방황할 때마다 그만 잊으시라고, 따님들도 다 컸으니 선생님도 좋은 친구분 만나셔서 즐겁게 지내시라고 말씀드렸었다.


 그분을 통해 경험으로부터 터득한 삶의 배움이, 알 수 없는 미래를 추측하는 것보다, 누군가에게는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지 출처 : Brett Jordan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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