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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Dec 10. 2021

<삶>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짪고 강렬한 만남을 통해 배우다.

우리가 녀석을 안고 들어가자, 일제히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

"꺅~~~~!"

"우아, 너무 귀여워~~!"


아이들은 그 작은 존재의 등장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우와, 우리가 키우는 거야?"


"아니야. 길에서 위험해 보여서 일단 데리고 온 거야."


"너무 귀여워!!!"


미용실에 다녀오던 동생이 공원 초입에서 망부석처럼 앉아있는 녀석을 발견했다.


"언니, 어떡하지? 아무래도 이 녀석 여기 두고 가면 위험할 것 같은데,

움직이지도 않고, 지나는 개들도 막 달려들려고 하는데도 가만히 있어.

날씨도 추운데, 엄마는 없는 것 같아."


"일단 데려고 와."


작은 존재가 집안에 들어 선 순간, 실내는 다른 빛깔의 불을 밝혀 놓은 것처럼  환해졌다. 여섯 개의 눈동자도 꼬마전구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 아이들은 앞으로 그 존재와 가족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넘어, 그토록 원하던 반려동물이 생겼다는 오랜 소망을  다 이룬 것처럼 기뻐했다.



그런데, 복병이 있었다. 녀석들의 '할머니' 바로, 우리 엄마였다. '동물'을 '동물'이라 부르지 않고, '짐승'이라고 부르는 사람, 짐승과는 집안에서 함께 살 수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1인이었다.




할머니를 설득하라!


"엄마, 우리가 고양이 키우는 거 맞지? 너무 귀여워. 우리가 키우자!! 응?? 제발, 엄마, 제발, 응??"


"고양이는 가족들이 모두 찬성해야 키울 수 있어.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고양이도 힘들고 가족들도 다 힘들어. 할머니가 너희들과 제일 오래 집에 계시는데, 반대하면 다 힘들 거야."


"너무 키우고 싶다, 너무 귀여워!! 진짜 너무 키우고 싶어"


아이들은 일제히 우리가 고양이를 키우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이미 할머니의 1차 반대로 '동네 생활'에 입양 글을 게시하긴 했지만, 나 역시 키우고 싶었다. 아이들의 눈동자에서 그 존재만이 줄 수 있는 행복이 일렁이기 시작했고, 그것만으로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이유는 충분했다.


나는 마치 골목대장이라도 된 듯, 아이들을 모아놓고 어떻게 하면 할머니를 설득할 수 있는지,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잘 들어봐, 어차피 고양이는 2층에서 키울 거잖아! 젤 중요한 건 2층에서 키우는 고양이로 인해 할머니가 불편한 게 없어야 해. 아니, 오히려 고양이가 우리 집에 오고 나서 할머니가 더 편해졌다는 느낌을 갖게 하면 좋고! 그러니까, 고양이가 와서 할머니가 오히려 편해졌다는 느낌이 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말을 잘 들어야 해요!"


"그렇지, 바로 그거야. 그렇다고 말 잘 듣는 척을 하지는 말고, 그저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행동하면 돼."


'동네 생활'에서는 벌써 고양이를 입양할 의사가 있다는 분이 리플이 달렸지만, 동생이 일단 녀석의 건강에 꼭 필요한 검사와 예방접종을 마친 후에 결정하자고 했다. 외국에서 고양이를 키웠던 경험이 있던  동생은 필요한 물품구입과 동물 약국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모두가 혹시나, 하는 기대를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작전명 복 냥이


그 녀석의 이름은 '작전명 복 냥이'가 되었다. 순전히 할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급조해 낸 '작전명'이었지만, 녀석에게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엄마, 쟤 복덩이 인가 봐. 저 녀석이 오고 나니까, 좋은 일이 계속 생기네!!"라며 내가 너스레를 떨었다.


"얘 이름, '복 덩이'이라고 부르자"


"그러네!! 언니 말이 맞네, 그런데 복덩이는 좀 촌스럽고, 복 냥이로 하자!!"


집으로 굴러온 '복 냥이'를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복을 내보내는 것과 같다는 암시를 주려는 의도였다.  


복 냥이가 오면서 아이들은 의도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변했다. 6살 막내 조카는 잠시도 심심함을 못 참고 떼를 쓰는 일이 줄었다. 심지어 집을 잠깐 비워야 했을 때 함께 나가자고 하니, 언니들이 학원에서 돌아올 때까지 스스로 복 냥이와 함께 있겠다며 외출을 사양했다. 보기 힘든 의젓한 모습이었다. 10살 첫째 조카는 복 냥이의 배설물을 치우며 평소 제일 싫어하던 나눔과 봉사를 실천했다.


하늘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2층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학교에 갔다 와서도 인사를 하고는 2층에서 생활했으며, 1층에서 얼굴을 보기 힘들 정도였다.


또한, 복 냥이는 '고양이 죽은 듯' 아무 소리 내지 않고, 1층 식구들에게는 아무런 존재감도 알리지 않았다. 원래 집고양이였던 것처럼 온순하고, 아기 고양이 다운 명랑함을 지니고 있었다.



이 정도면, 함께 살아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발견 한 다음날 복냥





다행히 엄마는 고양이가 있어도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하니,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간중간

낮은 톤으로 "1층으로 내려오는 건 절대 허용 못한다."라고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리고, 2층으로 발길을 뚝 끊었다. 누군가는 뻔질나게 2층을 오르락 내리락 하고, 누군가는 발길을 뚝 끊었다.


"고양이가 1층으로 내려놓지만 않으면 되겠네"

공기가 통하도록 2층으로 열려있던 문은 굳게 닫혔다.


1차 접속을 마치고, 그사이 집에 올 때보다 제법 자라난 녀석은 움직임이 더 왕성해졌다. 아이들의 무릎 위를 돌아가며 오르락내리락했으며, 화분의 흙을 파거나 이파리를 뜯어서 흩어 놓았다. 아이들의 행복도 그만큼 깊어졌다.




 할머니의 입장만이 변하지 않고 있었다. '1층으로 내려오는 것은 볼 수 없다는 것, '  움직임과 호기심이 왕성하고 유연한 고양이가 1층에 한 번도 내려오지 않을 확률은? 없다. 고양이라는 동물은 문고리도 열고 나오는 신출귀몰한 녀석들 아니던가.


고양이가 1층으로 내려왔을 경우, 엄마의 반응은? 아마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를 것이다.  반사적으로 발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나와 동생은 한 겨울 추위에 집안으로 찾아들었던 작은 강아지들을 향해 연탄집게라는 도구를 이용하던 엄마를 잊지 못했다. 깨갱깨갱깨갱하며 울어대던 강아지의 울음소리가 공 엄마의 반대와 함께 재생됐다. 연탄집게에 충격을 입은 것은 강아지들 뿐 아니라, 어리고 약한 우리 마음도 그랬다.


집안은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이상한 곳으로 변할 것이다. 아이들은 혼란스러울 것이고, 괜한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복 냥이 또한, 인간과 함께하는 삶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런 삶들이 지속된다는 것, 그것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때마침 대전에서 이모까지 집으로 놀러 오셔서 간곡하게 엄마를 설득했다. 그러나 결국, 더 좋은 곳으로 입양을 보내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아이들이 그토록 원하는데, 여전히 자기밖에 모르는 엄마에 대한 감정이 아득하게 피어올랐다.


'역시 사람은 안 변하는구나'





"엄마!! 복 냥이 데려간대 ㅠㅠㅠㅠㅠ엄마, 어떡해 ㅠㅠㅠ 너무 슬퍼 ㅠㅠㅠ"


아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며 대성통곡을 했다. 한 지역 카페에 입양 공고를 올리자마자 집사를 자청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2층에서도 통곡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늘이는 한동안 온몸으로 이별의 슬픔을 뿜어 냈고, 아이를 안고 있으니 내면 깊은 곳에서 잠겨 있던  이별의 아픔이 건드려졌다. 이별의 통증, 그 잔인함을 함께 느끼며 부둥켜 앉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잠시 후, 눈물 콧물이 범벅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내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알았으니 그만 울어,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시켜주면 되잖아"


어이없는 멘트에  잠시 "픽, "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가, 아이는 다시 슬픔 속으로 잠겨 들었다. 그렇게 연이어 몇 번의 슬픔과, 웃음이 오가다 눈물은 잦아들었다.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아이스크림 시켰지롱~~"


그렇게 대성통곡을 할 때는 언제고, 한밤중에 먹는 아몬드 봉봉의 맛에 푹 빠져 버렸다. 시원하게 울고 났더니

더욱 맛있었다.


"할머니 밉지 않아?


"아니, 왜?"


"할머니가 반대해서 못 키우는 거잖아."


"엄마, 어차피 한 사람만 반대해도 복 냥이는 못 키워. 내가 반대했어도 그랬을 거잖아.

이번이 할머니였던 것뿐인 거고"



허걱! 이 녀석, 정말 어른 스럽게 자랐구나, 코끝이 찡해졌다. 마음에 남았던 아스라한 원망들이 아몬드 봉봉처럼  사라져 버렸다.


며칠 후(이별의 기간을 갖고), 복 냥이가 오기 만을 가족 모두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좋은 집사의 품으로 복 냥이는 떠났다. 복 냥이는 자신의 이름처럼 복 냥이였다.


이별의 기간 동안, 중간중간 울음을 터트렸던 아이들은 복 냥이가 가는 날은 짧은 울음을 끝으로 이별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복 냥이의 새로운 집사님이 선물해주신 케이크를 먹으며 우리는 복 냥이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했다.


" 좋은 곳에서 잘 살아, 복냥아."  






우리의 아이들은

함께 할 때 마음껏 사랑하고,

헤어짐에 슬피 울 줄 알며,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 멋진 마음을 그대로 지키며 살아가기를

관계를 통해 삶이 주는 모든 충만한 행복들을 누리고 경험하는

두려운 없는 마음을 지키며 살아가기를, 하고 바래본다.

 

새로운 가족들을 만난 복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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