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거나. 매일 마시던 공기에서 다른 감촉이 느껴질 때면, 감상에 젖곤 한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노래가 우연히 기억의 한 조각을 건드릴 때, 가끔 예전의 인연들이 하나둘 생각나곤 했다. 그러고 보면, 싱글맘이었음에도 내게는 연애의 기회가 많았다. 꾸준히 사회생활을 해서 사람을 만날 기회도 있었고, 나이보다 동안인 외모 덕인지 ‘두 번 다시는 징글징글해서 연애는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을 때도 전혀 예상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의 대시를 받는 일도 있었다.
몇년 전 아이와 함께 재혼까지 생각하던 사람과 이별 후, 두 번 다시는 남자에게 맘을 열지 않기로 결심했다. 여러 가지로 불안정했던 시기였다. 지인의 소개로 반도체 구매팀에 입사하고, 자재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 유독 나에게 친절했던 상사가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3살이나 아래였고,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 게다가 따뜻한 미소와 말투로 뭇 사원들의 선망이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업무를 시작한, 자재창고는 전임자 외에는 아무도 자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엉망이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어렵게 입사, 회사는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었으므로 열정을 품고, 혼신을 다하고 있었다. 한겨울 자재창고에 박혀, 수많은 부품의 수량을 파악하고 리스트를 만들 때, 과장은 자주 창고로 내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회사 이야기, 영화 이야기,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 등이었는데, 이 과장의 방문이 불편했다. 이상하게도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전 남자 친구가 생각났고, 일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할 일이 산더미였는데, 쓸데없는 이야기들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까웠다. 하지만, 과장은 거의 매일,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이나 내가 있는 자재창고로 찾아왔다.
나에게 관심이 있어서인가?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긴 했지만, 설마 … 하고 생각했다. 과장이 왜 나를? 그럴 리가 없었다. 나는 마흔이 넘은 아줌마었고, 그는 결혼 적령기를 조금 넘긴,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그에 걸맞은, 혹은 더 괜찮은 여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혹시라도 나에게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당시엔 그에게 전혀 끌리지 않았다.
과장은 여러 가지 면에서 나를 세심하게 배려해주었다. 내가 영업부로 발령이 나며 자주 야근을 하게 되면서 회사에서 저녁을 먹을 일이 많았는데, 그는 나와 함께 저녁을 먹으려고 일부러 기다렸다. 어느 순간, 그와 내가 회사에서 ‘둘이 친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당연히 둘이 매우 친한 사이일 뿐, 우리를 연관 짓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도 무언가 어색해 보였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회사 근처에 맛있는 곱창집이 있으니, 언제 저녁을 먹자고 했다.
친한 사이였지만, 밖에서 단둘이 만나는 것은 어색했지만, 어떤 타이밍에 의해 그가 말한 곱창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소주도 한잔하게 되었다. 한병 두병, 세 병, 술을 마시며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보기와는 다르게 그는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로 인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재산만 믿고 한량이었던 아버지는 재산을 놀음으로 날렸다고 한다. 그 이후 가족들은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으며 직장에 다니면서 야간대를 졸업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니 사람은 역시 겉모습으로만 평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곱창집을 나와 흥에 겨워 함께 노래방에 갔고, 노래도 부르고 춤을 추며 신나게 놀았다.
노래방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가 갑자기 나에게 다가오더니 키스를 했다.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내가 그걸 예상했다면 곱창집에서 파김치를 세 접시나 비우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헤어진 그를 마음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에게 호감이 있었다고 했다.
나는 너무 놀라, “과장님이? 나를? 왜요? 왜 나를?”이라고 물었고, 그는 그렇게 말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눈치 빠른 내가 그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단지 적당히 푼수 같은 아줌마인 내가 편해서라고 생각했다. 남자와 단둘이 노래방에 와서 거리낌 없이 춤을 추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는 나였으니.
다음날, 나는 관계가 어색해지는 것이 싫다며 사귀자는 그의 고백을 거부했다. 하지만 점점 그가 좋아지기 시작했고, 그의 관심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지만, 관계는 내가 회사를 그만둠과 동시에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를 만나기 전, 수많은 좌절은 경험들이 결정적으로 그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번아웃이 왔다.
10년 전 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 나 스스로 통제되지 않았던 어떤 결핍된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자연스럽게 서로 달라진 일상에서 자신의 삶을 지키고자 했던 그를 이기적으로 몰아붙이며, 이별을 요구했고 수차례 요구 끝에 그는 더는 자신이 없다며 떠나갔다.
시간이 지나니 그의 연애 방식과 사랑이 이해가 갔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연애는 안 하는지 묻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지금 좋다고 대답한다. 진짜로 그렇다. 하지만 이따금 계절이 바뀔 때면, 문득문득 지난 사랑의 잔상들이 떠오르곤 한다.
최근 인스타그램을 통해 누군가를 알게 되었다. 내가 카페를 할 때 같은 동네에서 간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한동네이다 보니, 지나면서 나를 자주 봤었다며 어느 날, 메시지를 보내왔었다. 메시지를 받던 날, 인스타 계정에 내가 아이를 홀로 키우며 겪은 일화를 게시했었고, 그 글을 보니, 마음이 먹먹했다는 내용이었다. 언제고 카페로 방문하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1년이 훨씬 지나면서 그 사람의 계정에는 영업적인 글과 가끔은 일상의 글이 올라오곤 했는데, 인스타그램에서 그의 이미지는 성실하고 건전하게 살아가는 청년사업가의 이미지였다. 나 역시 최근 인스타그램에 예전보다 더 많이 일상을 공개하며 얼마 전 그에게 다시 명함과 함께 메시지가 날아왔고, 그러다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아이를 홀로 키우며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특별한 인상을 받았고 그 자체만으로 자신에게는 힐링이 되었다고 했다. 밥 한 끼 하자는 제안에 기꺼이 그러기로 했다. 그런데 그와 만나기로 한 날,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마음에서는 그동안 잠자고 있던 연애 세포들이 깨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그 깨어났던 세포들이 다시 오그라드는 데에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지만.
9살이라는 나이 차이, 나보다 9살이나 어린 친구였다. 영광스럽게도(?) 그 친구는 호감이 있다고 했다. 겁도 없이! 하지만 9살이라는 나이의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인 갭이 분명해 보였다. 무엇보다 지금의 평화로운 느낌에 갑자기 ‘연애’ 세포는 조금도 도움이 될 리 없었다.
35살 남자의 속도와 40대 중반 싱글맘의 속도와 방향은 분명 다를 테니까. 솔직하게 나의 의견을 전달했다. 그렇게 ‘신선한 한 끼의 식사’를 함께한 것으로 어린 친구와의 관계는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 마음들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깨어난 연애 세포들이 그대로 오그라들기에는 아쉬웠던 모양인지,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남자들에게 시선이 갔다. 어제 회사에 연차를 내고, 2년 반 차 암 검진을 받기 위해 아주대 병원을 방문했다.
초음파, 엑스레이, 피검사, 등 예정된 검사를 받으며 오전 내, 마지막 검사를 받으러 MRI 검사실로 갔다. 젊은 남자 간호사 선생님 한 분이 혼자 접수를 하고, 안내하고, 조영제를 투입할 수 있는 주삿바늘까지 꽂고 있었다. 혼자서 하기엔 벅차 보였는데, 나름 프로페셔널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대략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 되는 나이 같았고, 목소리나 말투에 앳된 느낌이 그대로 있었다.
조금 일찍 도착했고, 하필 스마트 폰을 집에 두고 와서 달리 할 것도 없어 차례를 기다리며 선생님이 환자를 안내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내 차례가 되었다. 동의서에 사인하고, 선생님이 설명해주는 조영제 관련 주의사항을 들었다. 다음은 두꺼운 바늘을 혈관에 꽂을 차례였다. 내가 혈관이 얇은 건 알았지만, 그동안 이렇게 멀쩡한 혈관을 여러 차례 쑤셔 놓은 선생님은 없었다.
선생님은 능숙하게 바늘을 꽂더니 침착하게 혈관에 집어넣으려 천천히 바늘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통증이 심해졌다. “으악, 선생님 이거 원래 이렇게 아픈 건가요?” 선생님은 죄송하다며 다시 바늘을 뽑고는 “죄송한데, 한 번 더 찾아보겠습니다. 아프시죠 ㅠㅠ”라며 파란 의료용 장갑을 벗었다.
그리고 맨손으로 내 팔을 이리저리 살피며 어쩔 줄 몰라했다. 두 번째, 겨우 찾은 혈관에도 주삿바늘을 밀어 넣는 것에 실패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은 재차 사과하며“주사실로 갈게요.”라며 벌떡 일어나 주사실을 향해 황급히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