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감정은 통제돼야 한다. 생각과 감정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인 에너지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생겨난다. 경험한 모든 조각들을 모아 ‘나’라는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태어나 두렵고 슬픈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자신에 대한 보호막을 치고, 자아의 정체성은 두터워 진다.
자신을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정의한다. 급기야 그것에서 파생된 생각과 감정에도 나라는 정체성이 부여된다. 모든 것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자아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생각과 감정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의문을 품게 된 계기는 짧지만 강력했던 결혼생활이라는 것을 경험하면서였다.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날뛰는 생각과 감정들에게 실컷 난도질을 당하고 나서 어느 아침, “ 방금 뭐가 다녀갔냐??!! ”라는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깨어나 싱글맘이 되어 있음을 확인했을 때, 강력하게 의식의 전환이 일어났다.
그동안 살아온 것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무엇인가에 빙의되어 있는 것처럼 미쳐 날뛰는 그 생각과 감정 안에는, 참으로 다양한 것들이 들어 있었다. 엄마의 모습도 있었고, 아빠의 모습도 있었다. 어린 시절 나도 있었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내가 되고자 하는 나도 있었다. 그동안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에너지의 거대한 집합체가 삶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그것이 나인 줄로만 알았었다. “나도 나를 어떻게 하지 못하겠어.”라고 말을 했지만, 그 말속에 답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 ‘나’라는 에너지가 조금씩 빠지기 시작한 것은, 그것을 나라고 믿지 않기로 결심을 하고 나서였다. 모든 불행은 내가 의도했던 일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부부싸움이 일어났던 그다음 날, 내 얼굴의 반쪽은 부어올라,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붓기와 멍이 있었다. 긴 머리를 풀어서 얼굴을 가리고 남편을 폭행죄로 고소한다고 협박을 하기 위해 병원에 진단서를 받으러 갔다. 오래전 끊었던 담배를 다시 사서 피울 만큼 몸과 마음의 상태는 엉망징창이었다. 나의 감정은 고통 그 자체였다. 슬픔, 원망, 분노, 두려움, 이기심, 등 끌어다 모을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똘똘 뭉쳐 어느 하나의 감정이다,라고 정의할 수 없는 그런 상태였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담배를 한 개비 물어 피우고 있는데 연예인이 탈법한 밴이 한 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연예인인가?’라고 생각하며 차를 주시하고 있는데, 차에서 가수 부활 '김태원과 정동하 그리고 베이스를 담당하는 멤버'가 차에서 내리는 게 보였다. 얼른 담뱃불을 끄고는 병원으로 들어갔다. 평일 낮이라 병원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좌석에 부활 멤버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병원 직원들과 내방객들이 힐끗힐끗 그들을 지켜보며 웅성거리고 있을 뿐, 다가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당시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프로에서 ‘남자의 자격’이라는 코너를 통해 김태원의 인기가 치솟고 있던 때였다.
진단서를 받으러 왔다고 접수를 하며, 원무과 직원에게 사인펜 하나만 빌려달라고 했다. 가방에서 다이어리를 꺼내 들고, 빈 페이지를 펼쳐 들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저, 바쁘지 않으시면 싸인 하나만 해주시겠어요?”
“보시다시피, 전혀 바쁘지 않습니다.”
김태원이 특유의 말투로 대답을 하고는, 다이어리에 사인을 해주었다. 사실, 목적은 따로 있었다. 김태원이 아니라 정동하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 죄송한데 싸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
정동하는 아무 말도 하지는 않았지만, 기꺼이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는 듯이 싸인을 한 다음, 다이어리를 내밀었다. 나는 재빨리 다음장을 펼친 다음, “한 장만 더…” 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 사이, 어느새 사람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얼마나 기쁘고 신이 났는지 이걸 누구한테 자랑해야 제일 부러워할지를 생각했다. 싸인을 자랑할 생각에 잔뜩 들떠 있었다. 진료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장혜진 님”
순식간에 감정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뚝 떨어졌다. 진료실로 들어가, 의사에게 눈물까지 찔끔하며, 2주면 충분하다는 진단을 3주짜리로 끊어달라고 했다. 부 끌 부 끌 끌어 오르는 분노와 서러움, 현실에 대한 슬픔,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져 입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10만 원이나 주고 진단서를 받으며, 정동하의 사인을 받은 다이어리 사이에 꽂으며 도대체 내가 누군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사인을 받으며 설레던 감정들은 다 어디로 가고, 아무리 싸인을 다시 들여다 보아도 종이 위에 흘려 쓴 글자로 보일 뿐, 아무런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남편한테 두들겨 맞고, 진단서를 받으러 온 처량한 신세가 아니던가. 서로 눈치만 보느라 아무도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데, 얼굴 반쪽이 멍이 들어 진단서를 받겠다고 온 사실은 까맣고 잊고 연예인의 사인이나 받겠다고 사인펜을 빌리던 여자는 미친 여자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정동하에겐 두장이나 작정하고 받아냈다. 다시 기분이 엉망이 되는 데에는 단 몇 분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 일은 두고두고 화두가 되었다. 지인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며 배꼽을 잡기도 했지만, 순식간에 기분이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지켜보며 울림 같은 것이 있었다. 상황과 감정이 서로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 그 첫 번째였다. 잠깐이지만 그 지독한 고통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나 있었다는 사실은 큰 울림이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왜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거금을 들여 수행터를 찾기도 했다. 그 감정을 짊어지고 삶을 살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과 감정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가 그것에 속는 이유는, 우리 안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뿌리 깊은 생각이 정체성을 입고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현실을 경험하며, 끊임없이 생각과 감정이 올라오는 것이 이미 시스템화 되어 있었다. 자신이 노란색 안경을 쓰고 있다고, 믿으면 세상이 온통 노란색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그 안경이라는 것 자체가 과거에서 경험한 것들로부터 비롯된다. 생각과 감정에 사로 잡혀 있을 때는 현재에 머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혼 후, 지인의 소개로 한 분양대행사 행정직 직원으로 일을 했었다. 회사에는 대표자가 두 명이었다. 그중 한 분은 사무실에서 나와 함께 근무를 했고, 한분은 외부에서 활동을 해서 얼굴을 볼일이 많지 않았다. 함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대표는 경상도 말씨에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말수도 적어서 업무적인 일이 있을 때만 나를 불렀고, 그 외에는 함께 있을 때에도 사무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일도 많은 편도 아니었고, 일에 비해 급여도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이분과 함께 있는 것이 정말 고통스러웠다. 특히 나를 부를 때 특유의 경상도 말투로 “장 과장!!” 하고 부르면 분노와 짜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돌도 안된 딸아이를 데리고 이혼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어서 하루하루가 몸이 타들어갈 것처럼 괴로웠다
그러다 “장 과장”하고 부를 때 내 안에서 솟구치듯 올라오는 분노와 짜증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분의 말투와 무뚝뚝한 태도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을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그분은 다른 직원들과 다르게 나에겐 잘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함께 고급 뷔페식당에서 단 둘이 회식을 한 적도 있었다. 말 한마디 없이.
'감정은 거부하거나 집착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감정은 에너지로서 인정하고 느껴주면 나를 통하여 지나간다는 간다. 빛이 있어 어둠이 있듯이 우주의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존재한다.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감정이 금방 지나가는 이유는 내가 그것을 환영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이고,
부정적인 감정이 머물러 있거나 쌓여있는 이유는 그것을 억압하여 흐르지 못하게 막고 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나쁘다는 판단을 멈추고,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그 자체로 허용하기로 했다. 물론 너무 고통스러웠다. 눈알이 뒤집힐 것 같은 분노를 환영하고 느끼면서 그 안에서 정신을 차리기가 때론 쉽지 않았다. 쌍심지를 켜고 상대에게 대든 적도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가 보는 현실이 단단히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대표님의 본모습이 아니라, 엄마였다. 헛웃음이 나왔던 건 하필 그 무뚝뚝하고 투박한 경상도 말씨가 어린 시절 엄마가 나를 부르던 그 말투와 똑같았다. 엄마가 나를 부를 땐 언제나 일거리가 있었는데, 회사에서 사장님이 일을 지시하는 당연한 행위를 왜곡해서 생각하고 느끼고 있었다. 진짜 상황을 알고 나니, 더는 그 분노와 짜증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분을 다시 보게 되었다.
모든 것이 그런 식이 었다. 비단 고통을 주는 대상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방식 전체가 왜곡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뿌리 깊은 생각과 감정에 있었다. '사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었다. 그 거대한 뿌리에서 파생되어 잔가지를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