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는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을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목표를 위해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세요. 모두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세상에 안 되는 일은 없습니다. by 어떤 성공한 사람
성공한 사람들은 이런 자신의 이야기를 책을 쓰고, 유튜브에 떠들면서 저처럼 성공하고 싶다면 이렇게 하세요!라고 한다. 물론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배우고 따라가다 보면 성공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이런 성공담으로부터 자극받아 마음을 다져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한 방법을 하나씩 지키지 못할 때마다 패배감과 무력감이 쌓였다.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그저 남이 보기에 성공한 자의 모습을 좇으며 나는 텅 비어 갔다. 지금 뒤돌아 생각해 보건대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지보다 어떻게 하면 망하지 않고 중간은 갈 수 있는지 아는 게 중요한 것 같다.
1. 방향성 없는 '열심', '목표', '인내'는 게으름 보다 죄악이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다 보면 꼭 브레이크가 걸리는 순간이 있다. 그때 해야 할 일은 '더 열심히'가 아니라 잠시 멈춰서 그 일의 목적, 목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내가 학위과정 동안 바이블처럼 여겼던 책은 '마스터리 법칙'이라는 책이다. 수년~수십 년에 걸쳐 열심히 노력한 수많은 거장들의 성공스토리에 대한 책이다.
책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는 이 책에서 성공의 '방법'만을 차용했다. 어떻게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부당한 것들을 어떻게 참고 견뎠는지를 마음에 새겼고 성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마음속에선 계속 회의가 들었다. 왜 열심히 하는 거지? 나 이거 재미없는데 왜 계속하고 있지?라는 생각들이 잠깐씩 스치기도 했지만, 열심히 사는 인생에 잠깐씩 찾아오는 방해꾼으로 생각했다. 오히려 나태해졌다고 생각해 스스로를 몰아치기도 했다.
어느새 노력의 이유를 잃어버린 채 '노력'이라는 행위만이 남아 나를 갉아먹었다.
그때 나는 정말이지 논문 쓰기가 지옥 같이 여겨졌다. 이딴 재미없는걸 평생 해야 하다니라고 생각하며 논문을 읽고 썼다. 마음이 지옥이었다. 단순히 논문 쓰기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일을 하면서 더 이상 재미를 찾을 수 없었다.
사실 내 마음은 '재미없어' 그만둬' '더 재미있는 일을 찾아봐' 라며 울부짖고 있었다. 하지만 듣지 않았다. 귀 기울이지 않았다. 잠깐의 슬럼프 혹은 힘듦 때문이라고 자부하며 참고 또 견뎠다. 그리고 10여 년이 흘렀다. 물론 외력으로 더 이상 학위를 못하게 되었지만 놀랍게도 난 너무나도 후련하고 학문에 대한 미련이 하나도 없다. 아쉬움도 없다. 그 당시 내가 학문을 하는 이유를 찾으려 노력했다면, 내가 이 이걸 계속해야 하는 이유에 조금 더 집중했다면 더 빨리 포기할 수 있었을 텐데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2. 주변에 조언을 구하지 않는다 (feat. 내 생각이 정답).
때때로 주변의 조언을 구하는 것은 좋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어떤 일의 전문가에게 그 일이 더 잘 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때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A를 할까요? B를 할까요? 같은 문제로 주변에 조언을 구한다.
- 의사를 할까요? 변호사를 할까요?
- 박사학위를 계속할까요? 하지 말까요?
- 이직을 할까요? 현직장에 남을까요?
이러한 문제는 정답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남들한테 물어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답은 내 안에 있다. 주변에 백날 조언을 구해봤자 하는 말도 다 다르고 오히려 선택에 방해만 된다. 오히려 내 마음에 집중하여 선택을 내리는 게 후회도 미련도 남지 않는다. 주변에서 덧붙이는 말들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애써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동안 지난하게 시간만 흐른다. 내상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고 그 인생을 사는 사람도 나다.
나는 그동안 프로 한탄러, 프로 의지러였다. 매일 주변의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한탄하며, 사람들이 해주는 조언을 짜깁기하여 내 의견이라 여겼다. 그렇게 내 인생은 산으로 갔다. 내가 학위를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을 때마다 고맙게도(?) 그만둘 수 없도록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줬다. 조금만 더, 아까워서 등등 많은 이유를 들어가며 나를 포기하지 않게 도와줬다.
그런데 나는 나에게 물어봤는가? 너의 진짜 생각은 어떤지를
3.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다.
내가 학위과정 중에 만난 A박사는 내가 만난 최악의 사람이었다. 실질적인 지도교수의 역할을 하면서 나를 쥐고 흔들었다. 술 취한 밤에 전화하기, 술자리 불러내기, 성추행, 성희롱, 밤새우기, 물건 집어던지기, 폭언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처음엔 학문적으로 박식하고 좋은 연구결과들을 내는 모습에 저 사람 같은 박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들이 약점처럼 보였는지 나를 무척이나 함부로 대했다. 성공의 열망에 취해있던 나는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씩 이겨내야 하는 퀘스트처럼 여겨졌다.
나한테 이런 시련이 오는 걸 보니 더 큰 성공이 기다리는 모양이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이겨냈다. 처음 2년은 이겨내졌다. 그런데 점점 도를 넘는 그 사람의 행동과 말들이 나를 위축시키고 괴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도망가지 못했다. 그 사람에게 오랫동안 길들여져 생긴 무기력이 나를 벗어나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아무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눈밖에 나는 것이 무서웠다. 그 사람 말을 듣지 않으면 아무도 내 논문을 봐주지 않을 것이라는 이상항 망상 속에 빠져 있었다(실제로 그 사람은 내 논문을 봐주지 않았음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2년이나 했는데, 3년이나 했는데..., 4년이나 지났는데 이걸 어떻게 다 버리고 도망갈 수 있어? 그렇게 10년이 갔다.
그동안 그 사람의 가스라이팅과 무례함이 나를 병들게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학문적으로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똥이었고 나는 그 똥을 피했어야 했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나'라는 속담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결국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보고 똥인지 판별할 때까지 그 사람과의 인연을 질질 끌었다. 내가 똥의 더러움을 어렴풋이 느꼈을 때, 그때 도망갔었어야 했다. 그동안의 실적을 핑계로 우물쭈물하고 인내심의 끝까지 참고 난 뒤 남은 건 대단한 논문이 아니라 우울증과 공황장애뿐이었다.
뒤돌아 생각해 봤을 때, '내 인생을 망친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나를 들여다보지 않은 것이 가장 문제였다. 내가 어떤 생각인지, 지금 기분이 어떤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같은 것들을 늘 살폈어야 했다. 내 인생의 이정표 한가운데 나를 두고 늘 나에게 묻고 나를 돌봤어야 했다. 나에게 해를 가하는 것들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했어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 인생을 망한 이유를 찾았다는 것이다. 내 인생이 망한 이유를 남으로 돌리면 또 새로운 남이 찾아와 내 인생을 망치려 들것이다. 이제 다 괜찮다. 아직 벌떡 일어날 힘은 없지만 그래도 끝없이 뿌옇던 안개에서 반 발 정도는 벗어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