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망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을 볼 때

feat. 이제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해

by 혜현

학위과정을 시작한 지 어언 10년이 지나간다.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겠지만, 빠른 사람들은 석박사를 마치고 임용을 했어도 5년 차가 되는 엄청난 시간이다. 같은 시간이 흘렀지만 누군가는 교수, 연구원이 되어 있고, 나는 패배자가 되어있다. 학위과정을 한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나 친척들은 내가 벌써 박사학위를 마치고 어엿한 박사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할머니 기일을 맞아 친척들이 모였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사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 집안 어른이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좋으시겠네. 조카, 조카사위, 조카며느리가 이렇게 다들 성공해서. 공무원, 대기업, 공기업, 전문직에 이렇게 박사님까지 있으니 할머니가 얼마나 뿌듯하실까?


정말 그랬다. 그동안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내 가까이에도 정말 한자리(?)하는 성공(?)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난 박사님이었다. 내가 "난 박사님 아니야!"라고 아무리 정정해도 "그 정도 했으면 그냥 박사님이라고 해도 돼~" 해서 그냥 난 박사님이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난 가짜 박사였다. 그리고 진짜 성공한 사람들 사이에 성공한냥 서있으려니 쑥스럽고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혼자서는 '난 이렇고 저래서 박사 과정을 끝까지 할 수 없었어'라고 정리하며 충분히 나 자신도 납득할 만큼 오랜 정리의 시간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동안의 모든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진짜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주눅 드는구나.


진짜들을 만나고 난 뒤, 생각했다.


난 성공한 사람이 부럽지 않아. 난 성공할 수도 있었는데, 주변 사람을 잘 못 만났고, 그리고 공부도 내 적성이 아니었어. 내가 괜찮은 교수를 만나고 나한테 더 흥미 있는 학문을 골랐다면 난 끝까지 해서 대단한 학자가 될 수 있었을 거야.


오랜 고민 끝에 진짜가 되기 위한 길을 멈췄다. 후련함과 해방감이 찾아왔지만, 말을 하면 할수록 모든 게 변명같이 느껴지고 묘한 패배감, 상실감, 방어적인 태도 역시 남았다. 나는 나를 이해했지만, 주변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 내가 진짜를 봤을 때 오는 공허함은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숙제다.


내가 아직 끝마치치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 남은 걸까? 아니면 단순한 상실감일까?


뭐가 됐든 난 이미 그만뒀고, 마인드컨트롤은 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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