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흔한 대학생의 착각
나는 사범대학을 졸업했다.
동기들의 반 이상은 4학년이 되자 슬슬 임용고사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중 왕왕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학원가의 강사로 취업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모두들 진로 고민으로 머리를 싸매던 시간이었다. 친구들끼리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시답지 않은 미래 고민으로 밤새 신새한탄을 하였다. 그리고 봄꽃이 피는 4월 나는 진로를 결정짓는 일생일대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사범대 4학년생들은 대부분 4월에 교생실습을 가게 된다. 나도 모교로 교생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교생들은 담당인 반의 학생들과 어울리고 수업하며 약 1달의 시간 동안 예비 교사로서의 생활을 미리 체험해 볼 수 있다. 별생각 없이 갔던 교생실습에서 깔끔하게 선생님의 길을 포기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학교는 사람이 너무 많고, 너무 시끄럽고, 하루 종일 너무 많은 말을 해야 하고, 너무 많은 말을 들어야 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건 너무 많은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한 마디씩만 해도 사십 마디를 들어야 하니 퇴근을 하고 집에 가면 머리가 댕댕하고 울릴 지경이었다. 대학시절 몇 번의 과외를 하며 가르치는 것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학교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나에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동안 몰랐던 나를 알게 되었다.
'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 직업은 못하겠다.'
'앞으로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 '
그렇게 교생실습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왔다. 그리고 중간고사를 준비하기 위해 책을 펼쳤는데, 책의 중간에 어느 학자의 일화가 실려져 있었다. 그 젊은 화산학자는 십수 년 동안 활화산을 쫓아다니며 화산연구를 했는데 결국에는 연구 중 폭발한 화산에 생을 마감했다. 그 글을 읽고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뜨거운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죽을 만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도대체 어떤 기분 일까?'
이십 대 초반의 나는 이런 활화산처럼 번쩍이는 자극에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할 만큼 충동적이었다. 그리고 그 길로 관심 있던 과목의 교수님에게 찾아가 대학원 진학 의사를 밝혔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연구'라는 이름으로 돈을 벌면서 일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골방에 처박혀서 재미있는 학문을 '혼자'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동기들과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이 버겁고 싫어 대학원을 선택했다. 처음 학부생으로서 대학원실에서 인턴을 했을 때는 딱 내가 생각한 이상향 그 모습 그 자체였다. 공강시간마다 대학원실에 가서 원서를 읽고 혼자 단어도 찾아보고 머릿속으로 개념도 천천히 생각해 보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 선배들, 교수님과 회의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그 이외에는 혼자 조용히 공부할 수 있었다.
내가 궁금해하는 것이 모두 연구주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그렇게 공부에, 연구에 재미를 붙였다. 4학년 졸업학기 때에는 1시간 반씩 걸리는 통학 시간이 아까워 기숙사에 머물며 낮에는 대학원실에서 저녁에는 중앙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 한 마디도 안 하는 날도 많았지만, 그게 너무 좋았다. 저녁에 중앙도서관 4층 구석에 있는 빨간 소파에 앉았다 엎드렸다 누웠다 하며 여러 가지 책을 읽었다. 쿰쿰한 오래된 책 냄새들과 낮게 깔린 먼지 냄새들이 좋았다.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한건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어'
'평생 이렇게 책만 읽고 살 수 있다니'
그때의 나는 이게 연구인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그냥 '공부'였고 '조용히 책 읽기'라는 취미생활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것, 연구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였다.
시끄러운 게 싫고, 사람이 싫어서 진학했던 대학원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