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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hyein May 19. 2023

작은 걸음도 알아차려 주는

두 다리로 걸어가는 삶

두 다리로 걸어가는 삶


"와-드디어 성공했다."


 11살이 되던 해 여름, 나는 신발 끈으로 리본을 묶는 법을 처음 터득했다. 양쪽으로 고리를 만들어 묶어버리는 리본이 아닌 무려 한쪽 고리를 만들고 다른 한쪽을 돌려 감아 만드는 리본을 말이다. 신발장에 앉은 지 30분은 지났던 때였는데 그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리본 묶기를 혼자 해냈다는 게 그렇게 뿌듯했다. 11살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성취감이었다. 31살이 된 지금 20년이나 지난 그 순간의 공기까지 기억하는 걸 보면 여간 기분이 좋았던 게 분명하다. 그날 나는 문 밖을 나와 신나는 발걸음으로 한참 리본을 보며 걸었다.


수많은 걸음을 지나 이제는 리본을 묶으면서도 별 생각을 하지 않는 어른이 되었지만 스스로 해냈다는 마음은 여전히 나를 기특하게 바라보게 한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시련의 순간을 지나 '이렇게 잘 걸어서 여기까지 왔구나'하고 의연한 생각이 드는 순간,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했던 내가 혼자 영화를 보고 서점에 가는 것이 재밌다고 느껴지느 순간,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큰 트러블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랐다는 걸 깨닫는 순간처럼 별 것 아닌 순간들에 내가 혼자서도 한발 한 발이 땅에 닿는 기분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내 삶을 내가 만든 노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이 감각이 맘에 든다.


 어쩌면 포기라고 부를지도 모르는 수많은 실패를 거치면서도 여전히 나는 내 두 다리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 나가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내가 지금까지 해낸 것들이 결코 세상의 추앙을 받을 만큼 대단한 것들은 아닐지라도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내가 했던 시행착오와 노력들을 벗 삼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아주 작은 걸음이라도 스스로는 걸었음을 알아차려주며 나아가고 싶다. 


두 다리로 걸어가는 것 ≠ 혼자가 되는 것


 두 다리로 걸어가는 삶은 다른 말로 자립이라고 하는데 사실 사람은 자립을 하기 어렵다. 좋든 싫든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사실 적어도 2.5개의 다리를 가지고 산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럼에도 두 다리로 걸어가고 싶은 이유는 나부터 단단해져야 다른 사람의 0.5개 분의 다리가 되어 줄 수 있기도 해서이다.


 2022년 나는 결혼을 했고 동시에 코딩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나 학원 다니려고'라는 말에 엄마는 '또 뭘 배워?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남았어?'라며 화들짝 놀랐다. 결혼했으니 남편한테 의지도 하면서 조금 편하게 사는 건 어떻겠냐는 걱정의 말을 건넸다. 엄마의 걱정이 이해되었지만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스스로 나아가려는 마음을 내려놓기엔 잘못 잘린 쌍쌍바 같은 부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 체육교사로 일하는 내 남편은 정말 멋진 사람이다. 어쩌면 편한 마음으로 직장에 다닐 수 있는 공무원임에도 선생님이라는, 직업인으로서의 사명을 고민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학교가 편의를 우선하고 학생들을 생각하지 않을 때 무엇을 중요시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고 누워있는 것을 제일 좋아하지만 다음 날 수업을 위해서라면 늦은 밤에도 밖에 나가 음악에 맞춰 몇 번이고 줄넘기 수업을 연습하는 수업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다. 학생들에게 하는 건네었던 말의 영향력을 알고 매일 자신이 한 말들 중 어떤 말을 고쳐나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확실히 알고 나에게 받은 사랑 덕분에 학생들을 더 따듯하게 대할 수 있다며 자신의 노력으로 주변을 추켜세우고 돌볼 줄 아는 모습이 나에게는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이렇게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이 사람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내 두 다리로 잘 살아나가야지 하는 다짐을 되새기게 되새기게 된다.


 남편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는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아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무너지는 순간에 나를 일으켜주는 건 언제나 그들이었기 때문에 내 두 다리로 잘 살아나가다 언젠가 내가 받은 도움과 사랑만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0.5개 분의 다리를 필요로 했을 때 그게 위로이든 도움이든 기쁘게 내어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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