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넘어선 얽힘, 난 너를 떠난 적 없어
『밝은 밤』은 최은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밤처럼 애상적이지만 밝고 따뜻하다. 주인공들은 서로의 슬픔을 더 큰 슬픔의 힘으로 감싸주며 위로한다. 작가는 ‘증조모-할머니-엄마-나’로 이어지는 4대의 삶을 비추며 백 년을 넘나드는 존재들의 연대를 읽어낸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루동안에도 누군가의 땀방울이 섞인 생산물 및 서비스들 덕분에 의식주를 해결했을 것이며 잠시라도 집 밖을 나섰다면 공간을 공유한 누군가와 숨결을 부딪혔을 테다. 퇴근 후 차 문이나 집 대문을 닫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쉽게 잊어버리곤 하지만 우리는 한순간도 서로를 떠난 적이 없다. 심지어 이 소설의 인물들과 같이 과거의 역사가 되어버린, 혹은 역사에 기록조차 되지 않은 수많은 인물들도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과거의 무수한 내가 모여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듯 지금의 나 또한 미래의 수많은 나와 연결될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떠난 적이 없다.
이 소설의 한 구절처럼 '언젠가 별이었을, 그리고 언젠가는 초신성의 파편이었을 우리'가 무수한 시간을 지나 무작위적 연결들을 거쳐 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살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한다면 우리는 오만한 개인성을 초월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이들과 자신을 너와 나로 더 이상 분리하지 않을 때, 사심과 편 가르기는 사라지고 과거, 현재, 미래마저 초월하여 모든 존재와 한 팀이 될 수 있다.
어쩌면 끈질기게 살아남은 위대한 고전 음악, 웅장한 건축물, 유명 미술 작품들과 고전들은 별의 파편이 지닌 근원적 연결성을, 사심 안에 갇혀 백 년 남짓의 기간 안에 금세 소멸하는 개인보다 더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오후의 햇살로 반짝이는 바다, 별들이 촘촘히 박힌 쪽빛 하늘,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산꼭대기와 같이 자연도 경이로움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언어를 넘어선 얽힘이자 연결성을 깨닫게 해 주고 있다.
우리는 바쁜 일과 속에서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이 순간 자체가 연결임을 깨달았다. 온라인 독서모임에서『밝은 밤』을 함께 읽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솔한 대화가 오고 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곁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 마음 깊이 납득하고 있던 것이었다. 또 이 연결성을 다른 이에게도 나누려는 의지가 담긴 결과가 바로 이 책이기도 하다. 『니체의 말』이라는 책 속에 가파른 경사에 놓인 난간으로 연대의 힘을 비유하는 글귀가 있다. 높은 산을 한 번이라도 올라본 이라면 등산로의 불안전해 보이는 칠 벗겨진 얇은 난간도 산행을 하는 이에게 꽤나 마음의 안정을 주는 것을 느낀 적 있을 것이다. 이 난간처럼 우리는 완벽하지 않아도, 근사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존재 자체로도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줄 수 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이 서로 보듬고 이야기 나누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삶에 따스한 변화를 일으켰듯이 우리 함께 경청하고 대화하며 서로의 난간이 되어준다면 어떤 어둠이 찾아와도 그곳은 밝은 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