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꿈(#톨스토이 #농민학교 #꿈)

by 혜인

초가을인데도 코 끝을 스치는 공기가 꽤 차가웠다. 빵을 먹으며 배가 차오르자 점점 러시아에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때부터 톨스토이는 내게 질문을 시작했는데 순간 대학교 교양 철학 강의를 수강하던 때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그가 던진 첫 질문은 '노자의 도덕경을 사회에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좋을까?'였다. 그는 '도덕경'을 읽고 노자의 탐욕도 없고 비폭력적인 태도에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현재 러시아는 재산을 충분히 많이 가진 자들이 약자들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약자들은 배움의 기회조차 제한되어 있어서 빈부 격차가 극에 달했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럼 기득권에게 탐욕을 비우고 약자에 대한 폭력을 거두라는 교육을 하면 되지 않나요?"

그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자신은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자연을 예찬하며 아름다운 풍경들만 하루 종일 묘사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도 기득권들에게 아무리 교육을 한들 그들이 이미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을 내려놓게 하기란 쉽지 않다는 말과 함께 멀리선 농촌의 풍경이 희극적으로 보여도 조금만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농민들의 비극적인 모습이 보일 텐데 귀족들은 눈이 멀었는지 그들이 지닌 욕망의 수레바퀴는 도대체 멈출 줄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문장 꽤 괜찮다며 기억해 두어야겠다고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그는 오히려 농민을 제대로 교육할 수 있도록 돕는 것에서 시작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자신이 세운 농민학교의 커리큘럼을 보여주었다.

그에게 난 소설가 톨스토이를 만나러 왔는데 알고 보니 당신은 철학자이자 사상가이자 위대한 교사라며 대단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에게 당신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칭찬과 함께 '지행합일'의 뜻도 들려주며 한자 네 글자를 선물로 적어주었다. 그는 끄덕이며 자신이 이렇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타고난 출신성분이 좋아서였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리고 문득 자신에게 이 역할을 하라고 신이 자신을 러시아 좋은 가문에 태어나게 했고, 일찍이 부모를 여의도록 했으며, 문장력을 달란트로 주시고 주색잡기와 도박으로 모든 것을 잃도록 해서 약자를 돌아보게 했다는 운명론적 생각을 가끔 한다는 말도 전했다.

출판사 내부에 스며들어있는 담배 향과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술병들을 보니 나는 아직 그가 완벽하게 술과 담배에서는 해방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내게 도덕경을 어떻게 해석했냐는 그의 질문에

"사회적으로까지 확장해서 해석하진 않았고 일단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충동을 고요히 다스리고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탐욕, 집착, 분노 등의 나만 보는 이기적인 마음 말이에요. 맑고 투명한 물처럼 자신을 정화하고 타인을 이롭게 하되, 말보다는 행동으로, 본보기로서 뜻을 전파하는 것이 참 스승이자 진짜 군주의 덕성이란 생각을 했어요. 불교의 '이심전심'과 '염화미소'의 일화처럼요. "

라고 답하고 말 대신 연꽃을 드는 행위만으로 뜻을 전한 불교계의 지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역시 사람을 예리하게 관찰하는 작가라서 그런지 그는 바로 내 대답의 의도를 알아챘다. 자신도 사회에는 떵떵거리며 목소리를 내면서도 담배와 술은 당최 끊을 수가 없다며 언젠가는 담배와 술이 주는 위로에서 벗어나 직접 내면을 다스려서 스트레스를 없애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는 노자뿐 아니라 불교도 탐독해 봐야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를 응원하며 언젠가 러시아에서 동양 철학을 번역할 이가 있다면 그분이 톨스토이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말로만 떠드는 사람이 아닌, 인간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인류애에 다가가는 마음을 삶으로 직접 실행하는 자였기에. 톨스토이는 자신을 선동가 내지는 사회를 망가뜨리는 자라고 하는 이질적인 현실 속에서 길을 잃을 뻔했는데 앞으로 진리를 영원히 사랑하며 살아갈 힘을 얻었다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고 했다. 사회에만 요구하는 모습으로 남을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삶에서도 탁한 것들, 세상과 나름 타협했던 것을 모두 걷어내고 죽는 그 순간 신에게 가장 떳떳한 모습으로 죽겠다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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