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 베리와 별 헤는 밤(#생텍쥐베리 #어린왕자)

by 혜인

별들은 얇은 구름 이불을 덮고 있었다. 우리는 구름 너머 별을 보려는 탐험가들처럼 언덕 위로 걷기 시작했다. 짭조름한 지중해 내음과 한국에 비해 산뜻한 이곳의 여름 밤공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조심조심 등불에 의지한 채 도착한 언덕 꼭대기엔 투박한 벤치 하나가 놓여있었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별들을 헤아려보았다. 왕년에 천문 동아리였던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나는 유년기 여름 방학 숙제로 종종 별자리 설명서를 만들어서 내곤 했다. 이 기억을 더듬어 그에게 여름철 별자리와 그 안에서 가장 밝은 알파별, 두 번째로 밝은 베타별을 알려줄 수 있었다. 그는 내게 별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별을 설명할 때면 생기가 넘치는 표정이라는 말과 함께. 나는 태양처럼 주변에 빛과 열을 나누어 주는 별들의 모습에서 조건 없이 주는 아가페적 사랑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도 야간비행을 할 때 달과 별들이 주는 빛이 자신에게는 등대처럼 위안이자 격려가 되었던 것을 떠올리며 내게 동의했다. 그리고 어린 왕자가 소행성에서 별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의 사랑 방식이 맞다는 것을 미리 배웠다면 장미가 아무리 툴툴거린대도 곁에서 평생 함께 했을 수도 있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결말 부분에서 어린 왕자가 다시 소행성으로 돌아간 것 아니었냐며 물었고 그는 열린 결말이라는 듯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내게 죽음이 두려운지 물었다. 처음으로 죽음이란 것을 상상해 보았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더 이상 볼 수 없고, 사람들과 교감을 하는 따스한 경험을 더 이상 못한다는 상실에 슬프긴 하겠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이유를 물었다. 이렇게 탁 트인 공간에 있어서 그런지 그동안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나눴던 사랑과 기쁨의 순간들이 떠올라서 감사하고, 내 신체는 죽음 후에도 또 자연의 일부가 되어 끝없이 순환하며 제 역할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신체도 순환할 테지만 우리에게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 역시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지 않겠냐며 어린 왕자의 죽음도 슬퍼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그가 어린 왕자를 펜 끝으로 창조한 그 순간부터 이 우주 어딘가에 작품을 제대로 읽어낸 독자들의 영혼 속에 어린 왕자의 영혼이 남아서 계속 존재할 거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어린 왕자라는 친구를 선물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이번에 그는 내게 어린 왕자의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지 물었다. 나는 그의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한 시선에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은 비판 정신을 꾹꾹 담고 예쁘게 빚어서 만들어낸 인물인데 내가 어떤 부분에서 그의 순수성을 느꼈는지 물었다. 나는 아까 말한 별들의 아낌없이 주는 아가페적 사랑을 어린왕자에게서도 느낀다고 전했다. 어린 왕자는 어떤 대상도 편견 없이, 왜곡 없이 바라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 대상이 사랑에 가깝지 않더라도 어린 왕자는 대상을 부수거나 교정하려기 보다는 관찰하고 사심 없이 진솔한 마음을 전할 뿐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가 멋지다고 느끼는 장미꽃이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때에도 어린 왕자는 그것이 지닌 존재 자체의 아름다움을 과장 없이 바라봐주고 그 안에서 순수한 경이로움, 순수한 기쁨, 순수한 행복을 느낀다. 어린 왕자는 자신이 무언가를 돌려받으려는 마음 없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어떤 해를 입힐 거라는 어떤 부정적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모두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간다. 이런 모습이 진정한 어른처럼 느껴지니 작품명을 '어른 왕자'로 바꾸며 어떻냐는 나의 유머에 그는 동감한다고 하면서도 그랬다면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응대했다. 서른 이후에야 내가 겨우 선택할 수 있었던 어린 왕자의 순수한 사랑과 조건 없이 주기만 하는 아가페적 사랑을 실현하기까지의 과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코 끝이 찡했다. 이렇게 내가 어린 왕자에게서 느낀 것을 진솔하게 전하자 생텍쥐 베리는 자신이 써낸 인물이지만 내 말을 들으니 더 대단한 인물 같다며 자기도 어른 왕자를 친구 삼아야겠다고 말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양도 크기도 색깔도 다른 밤하늘 별, 시시각각 변하는 바닷바람 안에서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반팔티,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나임에도 충만할 수 있는 까닭은 내 영혼 속에 새겨진 어린 왕자의 속삭임 덕분일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오직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앞으로도 상처에 대한 두려움 없이 마음을 활짝 열어두리라 별들에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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