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_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이름표 떼고 경계 허물기

펀치가 날아올 때는 잠깐 뒤로 물러서면 되잖아요

by 혜인

이 소설은 도입부터 강렬하다. 급행열차 한 대가 탈선하여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나고 이 대형 참사로 승객 127명 중 68명이 사망한다. 한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가족은 그때부터 자신의 삶도 멈춰버린 듯 결코 무뎌지지 않을 아픔에 갇혀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런데 이상한 소문 하나가 나돌기 시작한다. 사고가 난 곳에서 가장 가까운 역인 ‘니시유이가하마 역’에 가면 ‘유키호’란 유령이 나타나 사고 난 그날의 열차에 오르도록 도와준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딱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보고 싶었던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역으로 향한다. 시간을 사고가 일어난 날로 되돌려 열차에 오른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작별이 싫어 여느 날처럼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용서를 구하기도 하고, 끝내 전하지 못한 마음을 고백하기도 하고, 말없이 서로가 알아챌 수 있는 눈빛과 손짓을 보내기도 한다. 시간을 되돌렸음에도 예정된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다시 만나서 진솔한 마음을 주고받은 덕분에 사고의 피해자도, 유가족도 이별을 받아들인다. 또 유가족은 이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에 도착해서 다시 현실로 돌아가 살아낼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된다.

우리가 입을 모아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뽑은 것은 희생자 유가족이 오히려 기차를 운전한 기관사의 유가족을 위로한 장면이다. 우리를 갈등하게 하고 분열시키며 약해지게 하는 건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낸 흑백논리의 경계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대상에게 붙인 이름표가 우리나 타인을 죄책감 안에 구속할지도 모른다. 작품 속 주인공이 경계를 넘어서 오히려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은 편안하고 평화로웠다.

살다 보면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우리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마다 실패감을 느끼고 좌절한다면 우리는 인생에 등장하는 경사가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길에서조차 쉽게 겁을 먹게 될 것이다. 겁을 먹으면 몸이 경직된다. 펀치가 날아올 때 얼어붙고 만다. 우리가 겁먹은 채 삶의 경사에 집착하는 순간 우리 눈에는 이정표와 발끝의 돌만 담길 뿐 우리가 걷는 길에 피어있는 꽃과 다채로운 생명과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결과에 겁먹거나 집착하는 대신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평지든 삶이 주는 모든 과정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타인에게도 비경쟁적인 태도와 안정된 감정으로 평안함을 주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할 욕구도 버리기로 했다. 우연히 위협적인 펀치가 날아오는 순간 경직된 채 몸을 웅크리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는 존재에게 "펀치가 날아올 때는 잠깐 물러서면 안전할 거예요. "라고 말해주며 함께 펀치를 피하는 든든한 안전요원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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