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다시, 필름 카메라

엄마, 아빠의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꺼내 쓰며

by 혜인


아빠와 엄마의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가져왔다. 고등학교 때 미놀타를 내가 잠깐 썼던 걸 제외하면 30여 년의 시간을 거의 창고 속에 있었던 카메라들. 오빠가 쓰고 싶다고 해서 수리를 싹 해온 덕에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이번에 새로 알게 된 게, 엄마가 카메라를 샀던 게 잡지사에 면접에 합격해서였다고 한다. 결국 다니진 않았지만 우리 엄마랑 잡지사라니 처음엔 상상이 가질 않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사소한 변화도 잘 캐치하고 기억력도 섬세한 사람이니 잘 맞았을 것 같기도 하고. 내 나이보다 한참 어렸던 두 사람이 얼마나 설레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처음 손에 쥐었을지. 그때의 엄마와 아빠를 만날 수는 없지만 낡은 카메라를 통해 가늠해 볼 뿐이다. 찰칵, 무거운 소리가 정말 좋다.




공들여 찍은 두 번째 롤은 필름을 잘못 감아서 사진이 다 날아가버렸다. 아쉬웠지만 이 또한 필름 카메라의 매력이겠거니 하고 웃어넘겼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너무 쉽고 간편해진 세상에 어느덧 완전히 적응해버렸다.

이번에도 36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필름인데 15장밖에 찍히지 않았다. 나머지 21장은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 촬영과 현상의 시점 차이 때문에, 사실 내가 무얼 찍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느지막이 받은 사진에도 그저 설렌다.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사진 한 장 한 장이 이렇게 어렵고 소중한 것이었다는 걸 다시 상기한다. 핸드폰 카메라로 찍듯 필름 아까운 줄 모르고 마구 셔터를 눌러대고 있긴 하지만.

512GB의 저장 공간이 빠듯하게 사진과 영상을 보관하고 있다. 사진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사진만 따로 추리거나 정리하는 노력이 게을렀던 탓도 있다. 얼마 전 본가에서 어린 시절 앨범을 다시 보았다. 그때는 앨범도 결코 싸지 않아서인지, 앨범 한 칸에는 잘 나온 사진만 고르고 골라서 보이도록 끼워두었다. 안타깝게 맨 앞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아쉬운 사진들은 그 뒤에 겹쳐 안 보이게 숨겨두었다. 한 장 한 장을 소중히 들여다보는 정성은 필름 카메라라는 도구 때문일지 그 시대의 감성인지 모르겠다.

필름 사진은 확실히 자연스럽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입술색이 남아있는지, 얼굴에 뭐가 묻지는 않았는지 거울을 먼저 확인하곤 한다. 그런데 필름 카메라에선 그냥 헝클어진 대로, 힘을 뺀 내 모습이 왠지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눈썹도 없고 화장은커녕 목이 늘어난 티셔츠까지, 추레하지만 그 내추럴함이 더 좋게 느껴진다. 어렵사리 얻는 한 장의 사진에는 진실함이 담겨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일지.

길고 거창한 글과 달리 이번 롤도 핀도 노출도 엉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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