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꼿하고 타협 없는 월든 호숫가의 젊은 청년의 문장
<월든>을 알게 된 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할아버지 덕분이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산동네에 살며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신문 배달을 하시는 할아버지. 본인도 산동네 아주 작은 방에 거주하면서, 신문 배달로 번 한 달 20만 원 남짓한 돈을 남을 돕는데 쓰고, 음악과 책을 벗 삼아 살며, “일하는 것은 아름답다” 말씀하시던 그 충만한 눈빛과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월든> 은 할아버지가 취재진에게 이 책은 꼭 읽어야 한다고 역설하던 책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올해 속초를 가던 길에, 휴게소의 화장실 칸에서 문 안에 붙어 있는 <월든>의 한 구절을 읽었다. 그리고 속초에 도착해 좋아하는 카페의 책장에서 우연처럼 그 책을 다시 만났다. 며칠 후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친구가 최근 <월든>을 읽었다고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제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드디어 책을 읽었다.
<월든> 은 비슷한 두께의 다른 책 보다 아주 빼곡하고, 어려운 은유와 특유의 비판적이고 풍자적인 문체 때문에 재밌게 읽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로의 문장들은 아주 따끔했고, 그만큼 마음에 와닿았다.
검소하게 살고, 적게 일할 것, 유행을 좇지 않고, 많이 소유하려 하지 말 것. 적게 먹고, 소박하고 현명한 삶을 추구하고, 하루하루를 충만하고 진실되게 살 것, 늘 깨어있도록 노력할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누구나 들어봄직한 말이지만, 소로와 <월든> 이 대단한 것은 직접 숲 속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자급자족에 가까운 삶을 2년간 실천했기 때문이다. 콩밭을 가꾸고, 호수와 주변의 야생 동물을 관찰하며, 무엇보다 내면과 고결한 가치에 의식을 다하며 진짜 자기 삶을 살아낸 자의 충고는 그래서 더 따끔하다.
소로는 19세기 사람이고, 미국 독립기념일에 월든 호수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조선 말기 때다. 마틴 루터 킹, 간디와 법정 스님이 소로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고, 정말 옛날 사람이라는 것이 와닿았다. 그럼에도 <월든>의 교훈은 2021년을 살아가는 지금 더욱 유효한 것 같다. 160여 년 전의 글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반성과 감동을 준다는 사실은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로의 지향점과 더욱 멀어진 현실에 슬프기도 하다.
늘 모순을 떠안고 사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유독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진지한 태도로 요가를 수련하면서 회사원으로서의 나와, 수련자로서의 나 사이의 괴리감이 점점 크게 느껴져 힘들었다. 소비로 기쁨을 채우고, 세상의 기준에 맞춰 자꾸만 뭔가를 획득하려 살다가도 어느 순간 그것들이 무용하다는 자각에 갑자기 스스로가 무척 한심해지는 순간도 많다. 내 안의 모순이 몹시도 힘겨울 때, 꼿꼿하고 타협 없는 월든 호숫가의 젊은 청년의 문장을 다시 한번 꺼내어 읽어야겠다.
간단히 말해, 우리가 소박하고 현명하게 산다면 이 세상에서의 삶은 고된 시련이 아니라 즐거운 유희라는 것을 내 신념과 경험을 통해 확신한다. -81p
하루하루를 진실로 충만하게 사는 행위, 그것이 최고의 예술이다. 누구든 그의 정신이 가장 고양되고 명징한 시간, 자기 삶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도 관조할 가치가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중략)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깨어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중략) 나는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정말로 소중하다. - 104p
그리고 우리가 "바로 여기야, 확실해"라고 말할 수 있는, 현실이라는 견고한 바위에 발이 닿게 하자. (중략) 우리가 실제로 죽어가는 거라면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듣고 차갑게 식어가는 체온을 느끼자. 하나, 우리가 살아 있는 거라면 각자 제 할 일을 하자. 112p
나는 가장 강렬하고 정당하게 나를 매료시키는 것에 이끌리고, 그것에 자리 잡고 천착하고 싶다. (중략) 든든한 기초를 마련하기도 전에 아치를 세우기 시작하는 행위는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36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