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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Jul 28. 202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꼿꼿하고 타협 없는 월든 호숫가의 젊은 청년의 문장


<월든>을 알게 된 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할아버지 덕분이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산동네에 살며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신문 배달을 하시는 할아버지. 본인도 산동네 아주 작은 방에 거주하면서, 신문 배달로 번 한 달 20만 원 남짓한 돈을 남을 돕는데 쓰고, 음악과 책을 벗 삼아 살며, “일하는 것은 아름답다” 말씀하시던 그 충만한 눈빛과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월든> 은 할아버지가 취재진에게 이 책은 꼭 읽어야 한다고 역설하던 책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올해 속초를 가던 길에, 휴게소의 화장실 칸에서 문 안에 붙어 있는 <월든>의 한 구절을 읽었다. 그리고 속초에 도착해 좋아하는 카페의 책장에서 우연처럼 그 책을 다시 만났다. 며칠 후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친구가 최근 <월든>을 읽었다고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제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드디어 책을 읽었다.


<월든> 은 비슷한 두께의 다른 책 보다 아주 빼곡하고, 어려운 은유와 특유의 비판적이고 풍자적인 문체 때문에 재밌게 읽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로의 문장들은 아주 따끔했고, 그만큼 마음에 와닿았다.


검소하게 살고, 적게 일할 것, 유행을 좇지 않고, 많이 소유하려 하지 말 것. 적게 먹고, 소박하고 현명한 삶을 추구하고, 하루하루를 충만하고 진실되게 살 것, 늘 깨어있도록 노력할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누구나 들어봄직한 말이지만, 소로와 <월든> 이 대단한 것은 직접 숲 속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자급자족에 가까운 삶을 2년간 실천했기 때문이다. 콩밭을 가꾸고, 호수와 주변의 야생 동물을 관찰하며, 무엇보다 내면과 고결한 가치에 의식을 다하며 진짜 자기 삶을 살아낸 자의 충고는 그래서 더 따끔하다.


소로는 19세기 사람이고, 미국 독립기념일에 월든 호수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조선 말기 때다. 마틴 루터 킹, 간디와 법정 스님이 소로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고, 정말 옛날 사람이라는 것이 와닿았다. 그럼에도 <월든>의 교훈은 2021년을 살아가는 지금 더욱 유효한 것 같다. 160여 년 전의 글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반성과 감동을 준다는 사실은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로의 지향점과 더욱 멀어진 현실에 슬프기도 하다.


 모순을 떠안고 사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유독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진지한 태도로 요가를 수련하면서 회사원으로서의 나와, 수련자로서의  사이의 괴리감이 점점 크게 느껴져 힘들었다. 소비로 기쁨을 채우고, 세상의 기준에 맞춰 자꾸만 뭔가를 획득하려 살다가도 어느 순간 그것들이 무용하다는 자각에 갑자기 스스로가 무척 한심해지는 순간도 많다.  안의 모순이 몹시도 힘겨울 , 꼿꼿하고 타협 없는 월든 호숫가의 젊은 청년의 문장을 다시 한번 꺼내어 읽어야겠다.




간단히 말해, 우리가 소박하고 현명하게 산다면 이 세상에서의 삶은 고된 시련이 아니라 즐거운 유희라는 것을 내 신념과 경험을 통해 확신한다. -81p


하루하루를 진실로 충만하게 사는 행위, 그것이 최고의 예술이다. 누구든 그의 정신이 가장 고양되고 명징한 시간, 자기 삶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도 관조할 가치가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중략)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깨어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중략) 나는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정말로 소중하다. - 104p


그리고 우리가 "바로 여기야, 확실해"라고 말할 수 있는, 현실이라는 견고한 바위에 발이 닿게 하자. (중략) 우리가 실제로 죽어가는 거라면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듣고 차갑게 식어가는 체온을 느끼자. 하나, 우리가 살아 있는 거라면 각자 제 할 일을 하자. 112p


나는 가장 강렬하고 정당하게 나를 매료시키는 것에 이끌리고, 그것에 자리 잡고 천착하고 싶다. (중략) 든든한 기초를 마련하기도 전에 아치를 세우기 시작하는 행위는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3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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