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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Dec 08. 2021

어느날 갑자기 인스타그램 계정이 사라졌다.

인스타그램 계정 강제 비활성화를 겪으며



지난 금요일부터 3일간 갑자기 인스타그램 계정이 강제 비활성화되어 어떤 방법으로도 접속할 수가 없었다.


 주에는 독후감 말고는 올린 게시물이 없었고, 스토리에도 Guess my MBTI! 라는 설문 컨텐츠 하나 뿐이었다. 모든 기기에서 해당 계정이 로그아웃되고 다른 계정으로 검객하면  ‘사용자를 찾을  없음이라고 떴다. 3,000여장이 넘는 나의 기록은 어디로 간 거지?



3일간 느낀 지배적 감정은 무기력함이었다. 2단계 보안 인증, 페이스북 연동    있는 것을  해놓았고, 가이드 라인을 위반하지 않았는데 어떤 경고도 없이 일순간 계정이 잠겼다. 해킹이라면 해킹 경고 메시지를 받는데 나의 경우엔 해킹도 아니었다.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의 후기를 확인해보니 빠르면 2, 늦으면   만에 해결된 경우부터, 계정을 영영 복구하지 못한 이들도 있다는 것이 황당했다.


고객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면 모든 것은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답변한다. 보내주는 보안코드를 손글씨로 적은   얼굴과 함께  머그샷 같은 사진을 찍어 메일로 보내면, 인공지능이 나의 계정  사진을 바탕으로 신원을 확인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처리가 언제 된다는 기약이 없다보니, 포털 사이트에는 메일을 공손하게 써야한다더라, 여러번 보내야 한다더라 하는 엉망진창 추측만 가득하다.


당장 전화해서 따지고 싶었지만 의문과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사람 상담원은 없다. 갑갑한 마음에 자꾸 도움요청 버튼을 눌렀더니 유일한 소통 창구인 그 버튼마저 막혀버렸다. 즉 가만히 기다리는 방법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에서 말한것처럼, 인스타그램에게 사용자는 고객이 아닌 광고 상품이라는 것을 이번에 체감했다. 토요일 오전까지는 정말 아무 생각도 일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했다.


실재하지 않는 SNS 계정 하나 사라졌을 뿐인데 나는  이렇게 힘들었을까? 그건 내게 인스타그램이 추억 저장소 이상이기 때문이다. SNS 표면적으로는 삶을 기록하는 일기장과 비슷해보이지만,  안에는 엄연히 SNS에서만 존재하는 자아 정체성과 관계망이 있고, 어느새  부분들이 커져 실재하는 나를 새롭게 재구성해왔다는  알게 되었다. 나는 단순히 사진과 글을 잃어버릴까 아연실색했던 것이 아니라, 나의 커다란 일부가 행방불명될까봐 두려웠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나를 표현하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을 만나는 일을 좋아한다. 매일 출근해 생활하는 회사라는 공간보다, 오히려 SNS 공간에 훨씬 공을 들이고, 정을 붙이고 있다.  세계에서 미묘하게 다른 나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긴 했어도 그것을 나름 장점이라 여기고 살아왔는데, 이런 것들이  우습고  무섭게 느껴졌다. 인스타그램이 없는 진짜 나는 대체 누구인걸까?


3일 동안, 가상 공간이 나의 인생에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를 새삼 깨달았고, 또 그것이 언제든 없어질 수 있는 취약한 기반이라는 것도 절감했다.


무기력하고 허망한 시간, 나를 채워주었던  ‘실재하는 온기였다. 진심어린 위로를 건네는 남편, 반려견의 따뜻한 체온, 은은하게 비추는 맑은 겨울날의 . 그리고 커다랗게  있는 북한산을 바라보며 동네를 한바퀴 걷고 오니 마음을 겨우 추스릴  있었다. 인스타그램 중독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무엇이  중요한지를 되도록 자주 떠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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